역사이야기/영국

버마백작부인 에드위나 마운트배튼 (에드위나 애쉴리)

엘아라 2010. 9. 14. 14:28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흑..오늘은 도서관갈려고 했는데 (요즘 공립도서관에서는 국회도서관 접속이 가능하더라구요..제가 보고픈 글이 있는데 국회도서관에서는 온라인으로 볼수 있을까해서 말입니다....된다면 언제 그에 대해서 포스트를 해야겠어요..제목은 "우리동네 도서관을 알차게 이용해보자"랄까요..ㅎㅎㅎ) 고기님이 오시는 바람에 못갔습니다. (택배온다고 해서 기다렸다죠..)

 

어쨌든 밥먹고 뒹굴거리고 있있다가 찾던 정보를 찾아볼까 검색하다가 또 이상한곳으로 갔습니다..흐허헝..ㅠ.ㅠ 어디로 갔냐구요....뭐 바텐베르크 가문 성에 대해서 찾아보다가 이상하게 흘러서 에드위나 애쉴리까지 가버렸다죠...-0-;; 제가 뭐 그렇죠...

 

어쨌든 필 받은 김에 에드위나 에쉴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합니다.

 

 

 

 

에드위나 애쉴리

레이디 루이스 마운트배튼

버마백작부인 에드위나

버마백작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의 부인

Edwina Cynthia Annette Mountbatten,

(28 November 1901[1] – 21 February 1960)

 

에드위나 애쉴리는 후에 마운트 탬플 남작이 되는 윌프레드 윌리엄 애쉴리와 아말리아 메리 모드 카셀의 큰딸로 태어났습니다. 친가로는 샤프츠버리(Shaftesbury) 백작의 후손이었습니다만 에드위나가 유명해진것은 외가덕분입니다.

외할아버지인 어니스트 카셀경은 에드워드7세의 친구이자 개인 재무담당관으로 그는 유럽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부유한 인물로 알려져있었습니다. 어니스트 카셀은 원래 유대인이었지만, 부인을 따라 카톨릭으로 개종했습니다. 애드위나의 어머니 아말리아는 어니스트 카셀의 외동딸이었고, 이때문에 후에 어니스트 카셀경은 재산을 외손녀인 에드위나 애쉴리에게 물려줍니다.

 

 

에드위나의 외할아버지

어니스트 카셀 경 

 

에드위나 애쉴리는 부유한 상속녀로 1920년대 런던 사교계를 이끌어가던 여성이었습니다. 1920년대 그녀의 모습은 당시 유행하는 스타일을 잘 소화하던 무척이나 세련된 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1921년 외할아버지가 죽은후 에드위나는 역시 아버지가 사망한지 얼마 안되던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을 만납니다. 그는 그녀와의 첫만남에서 "매우 놀랐다"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둘의 결혼에 대해서 루이스의 어머니인 빅토리아는 아들의 전 여자친구가 더마음에 든다고 생각했었지만, 반대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도리어 에드위나의 엄청난 재산이 루이스의 형과 누이들에게도움이 될수 있다고 여겨서 환영했다고 합니다. 당시 루이스의 누나인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은 노처녀로 남아있었고 가족들은 루이즈가 결혼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때문에 백수 누나-0-;;;를 먹여살리는데 동생이 도움을 줄것이라고 여겼죠.

 

 

어린시절 루이스 마운트배튼경과 친척들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이 잘난척을 좀 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느정도 수긍이 된답니다.

맨 오른쪽 양복을 입은 소년이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이구요

왼쪽의 아이들은 사촌들과 조카들인데 흰옷을 입은 두 여자아이는 조카들인 그리스 공주들입니다.

그리고 세일러복을 입은 소년은 사촌인 러시아의 알렉세이 황태자입니다

아기인 두 소년은 외사촌인 헤센 대공의 아들들이구요 소녀들은 모두 사촌들인 러시아 여대공들입니다.

..나름 잘난척 할만하죠. 게다가 에드워드8세와 절친이었댑니다.-0-;;;

 

 

1920년대의 루이스와 에드위나

...전 루이스와 형 조지가 그다지 안 닮았다고 여겼었거든요..

그런데 이 사진보고 형인 조지인줄 알았습니다. -0-;;; 형이랑 정말 비슷하군요..

(....-0-그나저나 어린시절 꽃돌이 왕자님이었는데 자라니 저렇게 변한다는...-0-;;) 

 

결혼후 에드위나는 더욱더 화려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에드위나는 매우 활동적 여성이었으며, 여러가지 일들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재산은 다른이들에게 매우 관대하게 대합니다. 에드위나는 마운트배튼가문 사람들을 챙기는데 무척 힘을 썻습니다. 먼저 남편의 숙모이자 재산없이 곤궁하게 살아가던 바텐베르크의 안나 공비(몬테네그로의 안나)에게 매달 연금을 지급했으며, 남편의 누나인 앨리스 왕자비에게도 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형인 조지 마운트배튼경이 빚을 지자 거액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또 가족의 절친한 친구가 된 하녀나 시녀들과 그 가족에게도 경제적으로 도움을 줬습니다. (..ㅎㅎㅎ 정작 도움 받을것이라고 생각했던 루이즈는 스웨덴 국왕과 결혼해서 도리어 가족들에게 도움주는 입장이 됩니다.)

 

에드위나 에쉴리와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은 당시 결혼관에 매우 파격적이었던 "open marriage"상태를 유지했다고 여겨집니다. 아마 둘은 서로의 연애사건을 잘 알고 있었으며, 서로에게 피해주지 않는 한 간섭하지 않았을듯합니다.

 

에드위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애관계가 있었다고 추정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것은 바로 네루와의 관계입니다.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은 인도의 마지막 총독이었고, 에드위나 역시 남편을 따라 인도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인도에서 에드위나는 이제까지 자신이 속했던 영국 사회와 전혀 다른 사회를 알게되었다고 합니다. 에드위나는 인도를 사랑했으며 인도가 독립한후에도 인도를 방문하곤했습니다.

네루와의 관계는 대부분 사람들이 "플라토닉"한 관계로 추측합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둘의 관계가 플라토닉하지만은 않았다고 이야기하죠.

에드위나와 루이스 그리고 네루의 이야기는 "Indian Summer"라는 소설로도 나와있습니다. (2009년에 영화화하기로 되어있었지만, 인도측의 반발로 그냥 무산되었습니다.-..ㅠ.ㅠ 휴 그랜트와 케이트 블란쳇이 버마 백작부부로 나오기로 되어있었는데 말입니다...ㅠ.ㅠ-)

 

 

 

간디와 함께 있는 네루

 

에드위나에게는 두딸인 패트리샤와 파멜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조카인 그리스의 필리포스 왕자를 역시 자주 돌봐줬다고 합니다. (루이스경은 형이 죽은후 조카의 후견인으로 책임을 느꼈다고 합니다.) 에드위나는 후에 필립공에 대해 "(아들없는)우리의 친아들같다"라고 이야기할정도였습니다. 

 

에드위나는 1960년 인도에서 사망합니다. 그는 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인도에 갔는데, 그때 심한 두통을 앓았다고 합니다. 파티의 저녁때까지 남아있다가 돌아갔는데 다음날 침대에서 죽은채 발견되었습니다.

남편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은 에드위나의 유언대로 그녀를 바다에 수장합니다. 이때 네루는 그녀의 장례식을 위해 인도 구축함 두척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Alice:Princess Andrew of Greece

사진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