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엘리자베스 왕비 이야기를 해봐야겠습니다.
사실 휴고 비커스의 엘리자베스 왕비 전기를 살까말까 고민한적이 있었다죠.
요즘은 시큰둥한데 한때 휴고 비커스의 안드레아스 왕자비 전기에 빠져서 살았던것이 원인인듯합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왕비
영국의 엘리자베스 왕비
조지 6세의 왕비
레이디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Elizabeth Angela Marguerite Bowes-Lyon
(4 August 1900 – 30 March 2002)
영국의 엘리자베스 왕비는 원래 스코틀랜드 귀족인 클라우스 보우스-라이언과 그의 부인인 세실라 캐번디시-벤틴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0명의 자녀들중 아홉번째이자 막내딸이었죠. 부부는 이 아이들을 매우 사랑했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 왕비는 한때 출생문제 때문에 "소문"들이 많았습니다. 출생지가 정확히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세례받을때 기록했던 기록과 출생지의 기록이 달라서 말이 많았다고 합니다. 여권에 기록된 출생지는 영국이었지만, 아버지인 스트레이스모어 백작이 신고한 출생신고서에는 세례받은 곳을 출생지로 기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구 센서에는 등록되지 않았고요. 아마도 런던에 있던 외가의 집들중 한곳이나 아니면 병원을 향하던 앰블런스 안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필립 드 라즐로가 그린 세실라 캐번디시-벤틴크
엘리자베스 왕비의 어머니
(....위키에 올라온거라 맞는 그림인지는 쬐금 의문이라는..-0-;;)
어린시절 레이디 엘리자베스는 1차대전때 가족을 잃었습니다. 오빠중 한명은 전사했고, 다른 한명은 부상을 입은채 전쟁이 끝날때 까지 전쟁포로가 되었습니다. 이런 기억은 독일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남겨서, 후에 딸인 엘리자베스가 필립공과 결혼하겠다고 했을때 누나들이 모두 독일 왕족들과 결혼했기에 그 역시 독일인과 마찬가지라면서 심하게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921년 레이디 엘리자베스는 국왕의 둘째아들인 요크 공작에게 청혼을 받았습니다만, 말과 행동에 자유 없이 살기를 원치 않는다면서 거절합니다. 요크 공작은 어머니 메리 왕비에게 레이디 엘리자베스 말고 다른 여자와는 결혼하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기에 왕비는 결국 레이디 엘리자베스를 만나기에 이르죠. 메리 왕비는 결혼한다면 '버티를 행복하게 해줄수 있겠다'라고 했지만, 결국 청혼을 받아들이게 설득하지 못합니다. 다음해 레이디 엘리자베스는 요크 공작의 여동생인 메리 공주의 결혼식에 들러리로 참석합니다. 이때 요크 공작은 다시 청혼합니다만, 거절당하죠. 하지만 다음해인 1923년 결국 청혼을 승락했고 4월 26일 결혼합니다. 결혼후 레이디 엘리자베스는 요크 공작부인이라는 칭호를 씁니다.
1920년대의 요크 공작 부부
요크 공작과 결혼한후 요크 공작부인은 왕족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말을 더듬었기에 공적임무를 두려워하는 남편을 위해 언어치료사를 고용하는등의 적극적으로 행동하죠. 두 딸이 태어난후 해외 순방을 하기도 했고 꽤나 성공적으로 이를 수행합니다만, 아이들과 떨어져서 오랫동안 여행한것에 무척이나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아마 어딘가 순방중이셨을때일듯...
복장이 특이하네요
에드워드8세가 퇴위하고 나서 남편이 즉위하게 되자, 그녀 역시 영국의 엘리자베스 왕비이자 인도 제국의 황후가 됩니다. 엘리자베스 왕비는 시어머니인 메리 왕비와 함께 심프슨 부인을 좋아하지 않았고, 새로 윈저 공작부인이 된 심프슨 부인에게 HRH 칭호를 주지 말라는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왕비가 국민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때는 바로 2차대전때입니다. 20세기 영국 왕실을 지탱한 두명의 여성을 꼽으라면 메리 왕비와 엘리자베스 왕비를 꼽을수 있죠. 엘리자베스 왕비는 언제나 남편곁에 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국왕과 왕비는 폭격 당하던 런던의 버킹엄 궁전에 머물렀죠. 이는 전쟁중 영국 국민들에게 큰 용기를 얻을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낮에는 버킹엄 궁전에 있었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밤에는 윈저성으로 가서 머물렀다고 합니다.
1940년
남편이 조지6세가 사망한후, 엘리자베스 왕비는 스코틀랜드로 은퇴합니다. 하지만 곧 다시 공적 생활을 위해 불려나왔습니다. 딸인 엘리자베스가 즉위한후 엘리자베스라는 왕명을 썼기에 엘리자베스 왕비는 단순히 the queen mother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왕족으로 남았습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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