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자이 세자매중 둘째는 하츠입니다. 이 사람은 잘 안나오는데 남편이 좀 대단한 사람인듯하더라구요--;;
언니와 동생이 워낙 대단한 가문으로 시집가는 바람에 빛이 안나긴하지만, 하츠가 시집간 쿄고쿠 가문은 원래 명문가로 도요토미가나 도쿠가와가가 신흥귀족이라면, 쿄고쿠 가문은 뭐 구 귀족가문으로 명문가였는데다가 남편 역시 뛰어난 무장이었다고 합니다.
...--;;자료가 없어서 구글 번역기를 사랑하고 있습니다...-0-;;;;
아자이 세자매 : 차녀 하츠 (교고쿠 타카츠구의 부인)
오하츠 또는 오하츠 노 가타
출가후 법명 조코인 (常高院)
(1570?–September 30, 1633)
하츠는 전국시대 다이묘였던 아자이 나가마사와 그의 부인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인 오이치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 역시 아버지가 죽은후 어머니와 자매들과 함께 외가인 오다가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죠. 외삼촌이었던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 어머니 역시 새아버지와 함께 자결한후 이 아자이 가문의 딸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보호아래 들어갑니다.
큰언니인 차차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이 되었으며 하츠는 교고쿠 가문의 당주였던 교고쿠 타카츠구의 부인이 됩니다. 교고쿠 가문은 무로마치 막부 시대의 명문 다이묘 였으며, 오미 북부지방을 지배하던 호족이었습니다. 하츠의 친가인 아자이 가문 역시 원래는 이 교고쿠 가문의 가신이었다고 합니다.
교고쿠 가문의 상징
하츠와 결혼한 교고쿠 타카츠구의 어머니는 하츠의 고모였으며 이때문에 둘은 사촌간이었습니다. 게다가 타카츠구의 여동생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른 측실로 매우 아름다웠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매우 총애한 측실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가족 관계때문에 교고쿠 타카츠구는 직위가 높아졌으며, 주변 사람들은 그의 지위가 높아진것이 여동생이나 아내의 덕이었다고 쑥덕댔으며 스스로도 이를 한탄했다고 전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장악해서 일본 최고의 권력자가 될수 있었던 계기가 된 세키가하라 전투 직전에 오츠성에서 농성을 했고, 이것은 마에다 측 장군중 일부가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가할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때문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의 공을 치하했으며, 후에도 매우 신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은후 하츠는 출가해서 조코인이라는 법명을 얻습니다. 하지만 점점 커지는 도쿠가와 가와 도요토미가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결국 도쿠가와가에 의해 도요토미가가 멸망하고 언니와 조카가 죽은후 조카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딸인 나히메(なあひめ)보호하기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탄원했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정실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였던 센히메는 나히메를 자신의 양녀로써 오사카성에서 탈출할때 데려와서 보호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 영어,한국어, 일본어(구글번역기)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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