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황실 가족들의 최후와 뒷이야기...(3)
러시아 황실 가족들의 죽음에 대해 오래전 이미 인터뷰가 있었다. 구 소련 시절, 황실가족들의 죽음에 관련되었던 사람중 한명은 서방의 기자에게 자신의 황실 가족들을 어떻게 죽였는지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사칭자들에 대해서 매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소련이 아직 건재하던 1970년대후반의 어느날 예카테린부르크 근처를 답사하던 아마추어 지질학자와 그 친구들은 놀라운 발견을 했다. 그는 그것들이 황실 가족들의 유해라는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발견한것에 대해 발설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표식을 해놓고 언제가 발표할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10년이 훨씬 지난후 소련은 붕괴되었으며 러시아가 다시 성립되었다. 그리고 황실 가족들의 유해에 대해서 말할수 있었다.
황실 가족들 대부분의 유해가 발굴된 위치
1990년경에 이 유해들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발굴된 유해는 매우 부식이 심했다. 하지만 그들이 발굴한 유해에 대해서 과연 황실가족들의 유해인지 의심스러웠다. 결국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인 기술이었던 DNA를 이용한 검사법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기로 했다. 이에 쓰인 검사법은 두가지였는데 한가지는 체세포내의 DNA를 통해 발굴된 유해들이 혈연적으로 관계가 있는가를 검사하는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미토콘드리아내의 DNA를 이용해서 황실가족들의 신원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이 기술 모두 당시에는 최첨단의 기술이었으며 특히 미토콘드리아 DNA(mtDNA)검사 기술은 최첨단기술이었다.
체세포의 DNA중 염기 서열은 반은 아버지에게서 반은 어머니에게서 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가 AABB형질을 가지고 어머니가 CCDD형질을 가진다면 자녀는 아버지에게서 AB형질을 어머니에게서 CD형질을 물려받게 된다. 이런 형질은 고유한것이고 최근 친자확인에도 많이 이용되는 방법이다. 이 검사를 통해 시신들중 다섯구가 가족관계라는 것이 밝혀진다. 세명의 여성이 두명의 남녀의 자녀로 나타난것이다. 이것은 니콜라이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 그리고 세명의 딸이라는것을 추정할수 있게해주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혈연관계가 없는 나머지 시신들은 살해당한 의사와 시종의 수와 일치했다.
그리고 mtDNA검사를 통해서 황실가족들이라는 확인작업을 하게 된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질 내에서 사는 세포내 소기관으로 핵과 관련이 없이 세포질에 관계된다. 다시말해서 수정단계에서 세포질을 가진 기관인 난자만이 미토콘드리아를 가지고 있으며, 정자와는 무관하며, 모계를 통해서 그대로 전해지는 기관인것이다. 이때문에 이론상으로 동일한 모계 조상을 가지는 사람들은 동일한 mtDNA를 가져야한다. 하지만 이 mtDNA의 말단부분의 형질은 매우 변화하기 쉽고, 이때문에 세대가 지나면 동일 모계 후손이라도 다른 mtDNA를 가지게 된다. 재미난 사실은 이런 변화를 역추적하면 공통 모계조상을 찾을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으로 실험을 했고 그 결과 우리인류가 단일 모계조상으로부터 나왔다는 추론을 할수 있는 실험 결과를 얻기도 했다.
어쨌든 황실 가족들과 모계조상을 가지는 사람의 mtDNA 표본을 가지고 발굴된 유해의 mtDNA를 비교해서 두 표본이 일치한다면, 황실가족들의 유해라는것을 입증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한것처럼 mtDNA는 몇세대가 지나지 않아서 변이를 일으킬수 있기 때문에 표본으로 사용할 DNA가 중요했다. 여기서 표본을 제공한 사람이 바로 현 영국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이었다. 필립공의 어머니는 바텐베르크의 앨리스 공녀로 알렉산드라 황후의 조카였다. 다시 말해서 필립공의 mtDNA를 통해 황후와 황후의 자녀들을 확인할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필립공의 mtDNA은 좋은 표본이 될수 있엇는데, 그의 어머니가 여대공들과 사촌관계였기에 가까운 친척관계여서 mtDNA가 변이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훨씬 적기 때문이었다.
필립공
그의 외할머니인 빅토리아는 알렉산드라 황후의 언니입니다.
필립공의 외할머니인 헤센의 빅토리아와 어머니인 바텐베르크의 앨리스
앨리스가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겠다고 고집피워서, 빅토리아가 동생인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편지로 하소연을 했는데 황후는 언니에게 "그애도 우리처럼 행복하면 그만일걸요"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앨리스의 어머니이자 필립공의 외할머니인 빅토리아는 알렉산드라 황후에게 거의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
필립공와 황실 가족들간의 관계를 알려주는 가계도
그리고 검사 결과 네명의 여성이 필립공과 동일한 모계 조상을 가지는것으로 밝혀진다. 바로 알렉산드라 황후와 세명의 여대공들이었던것이다. 니콜라이2세의 유해 역시 비슷한 조건의 실험을 거쳤으며, 다른 시종들이나 의사들의 표본 역시 검사를 통해서 황실가족들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유해가 발굴되면서, 황실 사칭자들의 지지자들은 특히나 고무되었다. 발굴된 황실가족들의 유해중 두구가 비는것이었다. 황태자와 여대공한명의 유해였다. 이것은 많은 사칭자들의 스토리와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였다. 특히 안나 앤더슨의 지지자들이 많았던 미국에서는 매우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 안나 앤더슨의 지지자들은 필립공의 mtDNA와 안나 앤더슨의 mtDNA가 일치할것이라고 성급하게 추측하기도 했다.
안나 앤더슨에게는 몇가지 문제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안나 앤더슨이 죽으면서 시신을 화장했다는 것이다. 표본을 구할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게다가 러시아 측에서는 없어진 여대공이 아나스타샤가 아니라 마리야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몇가지 근거를 들어서 아나스타샤가 아니라 마리야가 없어진 여대공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는 미국측의 실망을 샀으며 미국측이 러시아측 결과를 못받아들이는 계기가 된다.
안나 앤더슨의 mtDNA 검사는 우여곡절끝에 시행되었다. 그녀의 샘플은 두개가 나타났는데, 하나는 모근이 남아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이었으며 또 하나는 수술로 떼어낸 장기 일부였다. 하지만 곧 충격적 사질이 드러난다. 안나 앤더슨의 mtDNA는 필립공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았으며, 대조군으로 사용되었던 폴란드 여공 프란체스카의 동일 모계 조상을 가지는 후손과 일치했던것이다.
이 결과는 안나 앤더슨의 지지자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때문에 곧 음모론이 판을 치게 된다. 안나 앤더슨의 mtDNA의 샘플을 의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러시아측의 결과를 받아들일수 없었기에 이 모든것이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 된다. 더군다나 정교회가 황실가족들의 유해를 인정하는것을 꺼려하는 반응 역시 이런 혼란을 가중시켰다. 몇몇 이들은 DNA검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교회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부는 DNA결과를 수용했다. 그들은 두구의 시신을 찾지 못했지만, 나머지 황실가족들의 유해를 국장으로 상트 페테스부르크에 안장했다. 관이 공개되어있는 동안 누군가 "우릴 용서하시오"라는 메세지를 붙여놓았다.
상트페테스부르크의 니콜라이2세와 그 가족들의 묘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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