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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황실 가족의 최후과 뒷이야기...(2) 안나 앤더슨

엘아라 2011. 1. 19. 06:00

 

 

 

 

 

 

 

 

러시아 황실 가족들의 최후와 뒷이야기...(2)

 

 

1920년 베를린에서 한 젊은 여성이 다리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발견되었을때 그녀는 자신이 누군지 몰랐으며, 결국 한 요양원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일년간 머물렀다. 이때 의사들은 그녀가 러시아 억양의 독일어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발견된 이름모를 여성

1920년

 

1922년 초 이 이름모를 여성이 머물고 있었던 요양소에 있던 한 러시아 망명객이 그녀가 러시아의 아나스타샤 여대공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많은 러시아 망명객들이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며 결국 황후의 친구이자 시녀였던 소피 북스회베덴이 그녀를 확인하러 왔다. 소피는 황실가족들에게 "이사"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며, 황실가족들을 따라 예카테린부르크까지 갔었기에 믿을만한 인물이었다. 이사는 이 이름모를 여성이 아나스타샤보다 키가 작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녀가 아나스타샤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여대공들과 함께 있는 "이사" 소피 북스회베덴

오른쪽 여성이 이사입니다.

그녀는 황후의 친구이자 시녀였으며, 황실가족들과의 여행에서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황실요트를 탔는데 이사가 그날따라 치맛자락이 끌리는 옷을 입었는데 때마침 갑판청소를 해서 이사의 치맛자락이 갑판의 물기를 다 닦았다던가, 아니면 실수로 모자에 불이 붙었다던가 이런 에피소드들이 있습니다.

그녀는 예카테린부르크까지 따라갔다가 처형직전 러시아를 빠져나왔습니다.이후 황후의 언니인 빅토리아의 후원으로 영국에서 거주했으며, 필립공의 결혼식에도 초대받았습니다.

 

하지만 1922년 이 이름 모를 여성은 자신을 지지하는 러시아 망명객과 함께 베를린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안나 차이코프스키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늘 자신이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했으며, 러시아 망명객들사이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곧 아나스타샤의 친척들에게도 알려진다. 베를린에는 아나스타샤의 이모인 프로이센의 이레네 왕자비가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안나와 왕자비를 만나게 하려 했지만, 이레네는 그녀를 만나는것을 거부했다. 이레네의 아들은 이 안나에게 큰 관심이 있었지만, 이레네는 절대 안나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또다른 중요한 인물은 독일의 체칠리에 황태자비였다. 그녀는 안나를 만나긴 했지만 그녀와 말을 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후에 다른 가족들과 달리 체칠리에 황태자비는 안나가 아나스타샤라고 생각했다.

 

 

 

 

알렉산드라 황후의 언니 헤센의 이레네와 가족들 

 

맨 왼쪽이 이레네이고 그 옆은 아들인 지기문트이고 그옆이 남편인 하인리히 왕자입니다. 그리고 그 옆은 이레네의 혈우병 아들인 발데마르입니다.

하인리히 왕자는 이레네의 이종사촌으로 어머니가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였죠.

..가끔 프린세스 로열도 혈우병 보인자로 오인받는데, 빅키의 아들들은 전염병으로 죽었지 혈우병으로 죽은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빅키의 딸들의 후손중에서도 혈우병이 나타난 사람이 없구요.

 

이레네는 안나 앤더슨을 인정하지도 않았으며 아들이 안나 앤더슨에 호의를 표하자 화를 내면서 자신의 집에서 안나 앤더슨의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1925년 안나는 많이 아팠고, 이때 수많은 주요 인사들을 만나게 된다. 황실 측근 시종들과 아나스타샤의 고모인 올가 여대공이었다. 그들은 안나가 황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황녀라고 인정하지는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황태후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올가 여대공은 어머니에게 안나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하지만 안나에게는 후원자가 생긴다. 바로 황실가족의 주치의의 딸이 안나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황실가족들과 함께 죽었다. 아마도 이후 안나가 황실 가족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이 주치의의 딸이 정보를 알려줬으리라 여기는 사람도 있다. 또한 니콜라이2세의 외삼촌인 덴마크의 발데마르 왕자는 안나가 아나스타샤일수도 있다고 여겼으며 그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줬다.

 

 

 

 

 

1922년 안나

 

1927년 가족들의 압력으로 발데마르 왕자는 그녀가 아나스타샤가 아니라고 발표했으며 덴마크에서의 경제적 원조도 끊어진다. 이후 안나는 러시아 황실과 친척이었던 로이히텐베르크 공작의 성으로 갔다. 이때 아나스타샤의 외삼촌이던 헤센의 에른스트 루드비히 대공은 안나 차이코프스키에 대해서 뒷조사를 했고 그녀가 아나스타샤 여대공이 아니라 폴란드 출신의 여공인 프란체스카 Schanzkowska 라는 여성이라고 주장한다. 프란체스카는 여공으로 1차대전때 자신의 눈앞에서 약혼자가 죽었으며 그때 그녀 역시 머리에 상처를 입고 죽을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충격으로 그녀는 요양원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중요한것으로 안나의 머리에 있는 흉터를 설명할수 있는것이었다.)

안나는 이에 대해서 강하게 부인하고 여러사람들은 그녀가 가짜인가 진짜인가로 나뉘어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 러시아 황실가족들 전체와 헤센 대공가족들은 안나 앤더슨이 가짜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다른 황실 친척들이나 망명객들은 여전히 안나가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한다.

 

 

 

 

폴란드 여공 프란체스카 16살때

 

얼굴 확대 사진

 

 

 

안나의 이야기는 유명해졌으며, 곧 미국에 있는 러시아 황실 친척들과 지지자들에게 이 소식이 알려진다. 러시아 대공의 딸이었으며 백만장자인 리즈가로 시집간 크세니아 리즈부인은 그녀를 미국으로 초청했으며, 이후 안나 앤더슨의 수많은 지지자들이 미국에서 생겨나게 된다. 미국에서 안나는 앤더슨 부인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후 그녀는 안나 앤더슨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다.

 

 

 

러시아의 크세니아 게오르기예브나공녀

크세니아 리즈 부인

크세니아 공녀는 니콜라이1세의 손자인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과 그의 부인인 그리스의 마리아 공주의 딸입니다. 외숙모의 첫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아들과 결혼했습니다. 

필립공의 사촌 

 

안나의 변호사는 그녀의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간다. 짜르의 국외 재산은 모두 안나의 소유라는 주장이었다. 이것은 독일 법원에 재소를 했는데 결국 2차대전때문에 잠시 흐지부지 된다. 이때 독일에 있던 안나의 친척들인 헤센 대공가 사람들은 일관되게 그녀가 가짜라고 주장했다. 특히 아나스타샤의 이모인 빅토리아 마운트배튼은 다른이들의 주장과 달리 아나스타샤의 귀와 안나 앤더슨의 귀가 전혀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아나스타샤는 내 숙부의 귀와 너무나 흡사했는데 그때문에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 안나 앤더슨의 귀는 전혀다르다"라고 주장했다. 이 문제는 결국 2차 대전이 끝난후 결정이 내려졌는데, 안나 앤더슨이 아나스타샤임을 증명하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증명하지도 못했기때문에 사건 자체를 무효로 돌리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사실상 안나 앤더슨의 패소였다.

 

 

 

 

아나스타샤의 이모

헤센의 빅토리아

밀포트헤이번 후작부인 빅토리아 마운트배튼

 

빅토리아와 그녀의 자녀들은 안나 앤더슨과의 소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특히 루이스가 관심이 많았습니다. 빅토리아 역시 사칭자들에 대해서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는데...

제 생각으로는 혹시나..하는 마음이 강했을듯합니다.

 

이후 안나 앤더슨은 다시 미국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자신이 아나스타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녀는 사망할때까지 자신이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했으며, 묘비에도 아나스타샤라고 적고 있다.

 

 안나 앤더슨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그녀에 대한 영화가 제작되었으며, 몇권의 책도 나왔다. 미국쪽의 많은 이들이 안나가 여대공이라고 믿었으며 황실가족들만 아는 여러가지 비밀이야기를 알고 있다는것을 증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여대공과 가까웠던 친척들 대부분은 일관되게 안나가 가짜라고 주장했으며 그 중심에는 외가인 헤센 대공가가 있었다. 여대공의 외삼촌이었던 에른스트 루드비히가 죽은후에는 누나인 빅토리아 마운트배튼이 이 주장을 이어받았으며, 빅토리아가 사망한후에는 여대공의 사촌들인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이나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가 일관되게 안나가 여대공이 아니라는 주장을 이어갔으며, 루이스 마운트배튼경은 안나가 제기한 소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러시아 여대공들 (1916)

왼쪽에서 올가,타티아나,마리야,아나스타샤

안나 앤더슨의 사진을 처음 보면 아나스타샤보다 마리야를 더 많이 닮아보입니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안나가 처음에 자신을 마리야라고 주장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짜인것을요..--;;;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Alice : Pirncess Andrew of Greece, Hugo Vickers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