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프랑스

루이 16세와 가족들....(5) 아들 루이 조제프와 루이 샤를 그리고 딸 소피

엘아라 2011. 1. 1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세사람을 같이 하는 이유는 셋다 성인이 되기전 사망해서입니다.

물론 루이 17세로 호칭되는 루이 샤를 이야기는 많지만 사칭자들 이야기는 여기서 관게없는거라 안할거니까 얼마 안된다죠...^^*

 

 

루이 16세와 가족들...아들 루이 조제프와 루이 샤를 그리고 딸 소피

 

루이 16세의 둘째아이이자 큰아들은 도팽 루이 조제프입니다.

 

 

 

루이 조제프 드 프랑스

도팽

Louis Joseph de France

(Louis Joseph Xavier François)

( 22 October 1781 – 4 June 1789)

 

루이 조제프 그자비에 프랑수아는 1781년 베르사유에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결혼한지 8년만에 첫 아이를 얻었고, 11년만에 후계자를 얻게 된것이었죠.

 

 

도팽의 탄생

 

새로 태어난 도팽을 안고 있는 루이 16세 부부와 가족들

베르사유 특별전에 온 그림입니다.

뒤쪽 세아이는 아르투아 백작의 아이들입니다.

아이들 앞쪽의 두 사람이 아르투아 백작부부이고 가운데 아이를 안고 있는 부부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입니다. 그앞의 어린 소녀는 마담 르와얄인 마리 테레즈입니다.

왕비 뒷쪽으로 있는 사람은 루이 16세의 동생인 마담 엘리자베트이고 그 뒤에 두사람은 프로방스 백작 부부입니다. 왠지 루이 16세 부부와 형제들간의 거리를 나타내고 있는 듯한 그림같답니다..ㅎㅎㅎ

 

루이 조제프는 누나인 마리 테레즈와 부모와 매우 친밀한 사이였으며 루이 조제프의 부모인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들의 교육에 무척이나 열성을 쏟았다고 합니다. 루이 조제프는 어린시절부터 매우 총명한 아이로 알려져 있었습니다만, 몸은 매우 약했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

안고 있는 아이가 도팽인 루이 조제프입니다. 옆에는 딸인 마리 테레즈이고 남편인 루이 16세는 옆의 흉상으로 묘사되어있습니다.

 

루이 조제프가 세살이었던 1784년 그는 매우 심한 열병을 앓았습니다. 간신히 병에서 회복했지만, 건강은 늘 좋지 않게 됩니다. 1786년 열병이 재발했지만, 루이 조제프를 돌봤던 이들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가끔 걷는것이 불안정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1788년 열병으로 인한 열이 자주 났으며, 병은 빠르게 악화됩니다. 결국 어린 도팽은 1789년 7살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이때가 삼부회가 소집된 직후였다고 합니다.

 

 

누나 마리 테레즈와 함께 있는 도팽 루이 조제프

엘리자베트 비제-르블룅의 작품

역시나 베르사유 특별전에 온 그림입니다.

 

불안정한 정치 상황은 어린 도팽의 죽음에 대한 애도조차 힘들게 했는데,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들의 상중이었지만, 테니스 코트의 서약 이후 왕비가 대의원들의 피로 이를 맹세시켰다는 소문이 파다할  정도였습니다.

 

 

도팽 루이 조제프

 

루이 조제프의 흉상

 

 

어린 도팽은 생 드니의 왕실 묘지에 안장되었는데, 그의 묘 역시 혁명기간에 훼손됩니다.

 

 

 

루이 16세의 셋째아이이자 둘째 아들은 후에 루이 17세로 이름 붙여지는 루이 샤를입니다. 

 

 

 

 

 

 

루이 17세

루이 샤를 드 프랑스

노르망디 공작

도팽

Louis XVII

( 27 March 1785 –  8 June 1795 )

 

 

루이 샤를은 1785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셋째아이이자 둘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태어난후 노르망디 공작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의 형인 루이 조제프가 1789년 사망하자 그는 형의 뒤를 이어 도팽이 됩니다.

 

 

아기 루이 샤를

 

마리 앙투아네트는 둘째아들을 위해 보모인 아가트 드 랑보를 고용했는데, 그녀는 노르망디 공작을 친아들처럼 아꼈으며, 루이 샤를에게 마리 앙투아네트보다 더 친어머니같았다고 합니다.

 

 

아가트 드 랭보

루이 샤를의 보모 

 

1792년 루이 샤를과 그 가족은 인질로 탕플에 유폐되었으며, 아버지인 루이 16세는 가족들과 따로 떨어져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루이 16세는 1793년 1월에 길로틴형으로 죽습니다.

왕당파는 루이 16세가 죽자 도팽인 루이 샤를을 루이 17세로 주장하고 그의 숙부인 프로방스 백작을 섭정으로 내세웁니다. 이때문에 혁명 정부는 루이 샤를에 대한 감시를 강화합니다.

 

 

 

어린 루이 샤를

 

루이 17세는 1793년 7월 가족과 떨어져 구두장인인 앙투안 시몽이라는 사람의 손에 맡겨집니다. 그와 그의 부인은 어린 왕자를 돌보는 일을 했는데, 그의 부인인 마리-잔느는 아이를 잘 돌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앙투안 시몽은 어린 왕자를 혹사시켰다고 합니다. 하지만 왕당파들의 주장대로 어린 루이 샤를에게 술을 먹이고, 천한 말을 쓰도록 강요했는지는 의문이라고 합니다. 이때 왕자는 다른 이들에게 건강이 확인되었으며, 어머니를 모함하는 문서에 서명하도록 강요받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

안고 있는 아이가 루이 샤를입니다.

 

1794년 시몽의 부인이 죽자 시몽은 탕플로 왕자를 데리고 왔으며 이후 루이 샤를은 이곳에서 지내게 됩니다. 왕정이 복고 된후, 탕플에서의 수많은 기록이 파괴되어서 이때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정확히는 알수 없다고 합니다. 왕당파 역사가들은 시몽이 왕자를 어두운 방에 마치 야생동물처럼 가두어뒀다고 이야기하지만, 누나인 마리 테레즈가 탕플에서 편안히 지냈기에 이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합니다.

바라스가 탕플을 방문한후 어린 왕자가 가혹한 환경에 처해있는 것을 발견하고 왕자의 처우를 개선해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엄격한 감시는 유지되었습니다. 왕자의 감시인은 자주 바꼈다고 합니다.

파리의 대의원들은 왕자의 이상행동이 희귀한 병때문이 아닌가 의심했는데, 왕자를 돌보면서 감시하던 이는 왕자가 어머니를 모함하는 행위를 한 이후 저렇게 말없이 있는 날이 자주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시몽과 함께 있는 루이 17세

 

1795년 5월 루이 샤를은 갑자기 심하게 아팠으며, 어린 왕자를 이전에 진찰했던 의사가 불려옵니다만, 의사는 6월 1일 갑작스럽게 사망합니다. 그리고 루이 샤를 역시 6월 8일 사망합니다. 혁명정부는 루이 샤를이 결핵성경부림프선염으로 사망했다고 공표했습니다.. 루이 17세는 10살의 나이에 사망했으며 공동묘지에 비석하나 없이 묻혔습니다.

 

 

탕플에 있는 루이 17세의 조각상

 

 

왕자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수많은 의문점들은 왕자가 탕플에서 죽지 않았다거나 탈출했다는 소문을 돌게 했는데 수많은 의문점들이 생겨났으며, 사칭자들이 나타납니다. 특히 가장 유명한 사람은 칼 빌헬름 나운도르프였습니다. 그는 강력한 지지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루이 17세의 보모이자 친어머니보다 더 따랐다고 알려진 아가트 드 랑보였죠. 그녀는 나운도르프가 루이 17세라고 인정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루이 17세의 누나인 마리 테레즈는 그를 만나보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루이 17세의 사칭자

칼 빌헬름 나운도르프

그의 후손들은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자신들이 부르봉 가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어린 루이 17세의 심장은 루이 17세가 죽었을때 곁에 있었던 의사에 의해 보관되고 있었고 그는 이 심장을 루이 17세의 숙부들에게 돌려보내려했습니다. 하지만 국왕들은 이 심장이 조카의 심장이라고 여기지 않았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 심장은 의사의 학생중 한명이 훔쳤는데 그는 죽기전 아내에게 심장을 의사에게 돌려주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그녀는 심장을 의사가 아니라 파리의 대주교에게 보냈고 7월 혁명때 스페인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1975년 생드니에 있는 왕실 묘지에 안장되었다.

 

 

루이 17세

 

이 심장 루이 17세의 것인지에 대한 DNA테스트가 2000년에 있었다. 여기에는 가장 유명한 사칭자였던 나운도르프의 mtDNA검사도 포함되었다. 심장과 나운도르프의 mtDNA와 마리 앙투아네트와 왕비의 언니인 마리아 요한나 가브리엘라 여대공과 둘의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의 mtDNA와 마리아 테레지아의 모계 후손인 루마니아의 안 왕비와 안 왕비의 오빠인 부르봉-파르마의 안드레 공의 mtDNA를 분석했다.

그결과 나운도로프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모계조상이 같지 않았으며, 심장의 주인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모계조상이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를 유추해볼때 결국 심장의 주인이 루이 17세일것이라는 결론을 내릴수 있었다. 하지만 나운도르프의 mtDNA는 아니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막내 아이는 딸인 소피로 돌이 되기전 사망했습니다.

 

 

 

 

 

 

 

 

마담 소피

Marie Sophie Hélène Béatrice de France,

Fille de France,

Madame Sophie

(9 July 1786 – 19 June 1787)

 

마담 소피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소피라는 이름은 마담 소피가 태어나기 4년전 죽은 루이 16세의 고모인 마담 소피의 이름에서 따온것입니다.

돌이 되기전 마담 소피는 사망했는데,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는 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고 매우 슬퍼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