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루이 16세의 두 남동생들은 나폴레옹이 몰락한후 프랑스의 국왕이 됩니다.
첫째 동생인 프로방스 백작은 루이 18세가 되고, 둘째 동생인 아르투아 백작은 샤를 10세가 됩니다.
...ㅠㅠ 진짜 정치 이야기 싫어서 루이 14세 루이 15세를 다 건너 뛰었는데...ㅠ.ㅠ 루이 18세 이야기 읽다가 지칩니다...ㅠ.ㅠ 정치이야기는 정말 싫어요...ㅠ.ㅠ
...샤를 10세 하려니 진이 빠진다는...=-0;;;;
루이 16세와 가족들... 동생 루이 18세와 부인 마리 조제핀 드 사보이
루이 18세
프로방스 백작
Louis XVIII
(Louis Stanislas Xavier)
( 17 November 1755 – 16 September 1824)
루이 16세의 동생인 루이 18세는 일반적으로 프로방스 백작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루이라는 이름은 부르봉 왕가의 남성들에게 붙은 공통된 이름이었으며 스타니스라우는 아버지의 외할아버지인 스타니스와프 레슈친스키의 이름을 딴것입니다. 그리고 그자비에는 어머니의 가문이 특별히 신봉했던 성인이자 나바르 출신이었던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이름에서 따온것입니다.
그는 도팽 루이의 넷째아들이었지만, 형들과 아버지가 죽은후 제2왕위계승자가 됩니다. 그는 형이자 도팽인 루이 오귀스트와 똑같은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형인 베리 공작(후에 루이 16세)와 함께 있는 프로방스 백작
루이 16세와 프로방스 백작은 기본적으로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형제간에 자주 다툼이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프로방스 백작
그는 1771년 사르데냐 국왕의 딸이었던 사보이의 마리아 주세피나와 결혼합니다. 그녀는 결혼후 프랑스에서 마리 조제핀 드 사보이라고 불렸습니다. 후에 마리 조제핀의 여동생이 프로방스 백작의 동생인 아르투아 백작과 결혼했으며, 프로방스 백작의 여동생인 마담 클로틸드가 마리 조제핀의 오빠와 결혼합니다.
프로방스 백작부인
마리 조제핀 드 사보이
이거 베르사유 특별전에 있는 그림이던가 그렇습니다.(갈수록 기억력이 ..ㅠ.ㅠ)
아마 흉상은 남편이고 초상화는 아부지일껍니다.--;;;(반대던가..)
둘의 결혼은 불행했는데, 마리 조제핀은 아름답지 않았으며 베르사유 궁정에서 무시당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때문에 프로방스 백작 역시 아내를 냉대했습니다. 하지만 사이나쁜 형과 형수를 괴롭히기 위해서 아내가 임신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당시 도팽이었던 루이 16세는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때문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결혼후 오랫동안 아이를 가질수 없었으며, 왕위계승자와 결혼한 여성이 후계자를 낳지 못하는것은 큰 스트레스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마리 조제핀은 임신을 한번했지만 유산한후 더이상 아이를 갖지 못했습니다.
프로방스 백작부부
부부사이는 점점 냉담해졌으며, 프로방스 백작은 마리 조제핀의 시녀를 정부로 삼습니다. 마리 조제핀은 프랑스 궁정에서 냉대 받았으며, 정치적 권력이 거의 없었으며, 왕비이자 동서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질투해서 자주 다투기도 했으며, 왕비에 대한 음모를 꾸미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영향력이 없어서 성공한적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1782년 마리 조제핀
1778년 프로방스 백작
혁명이 일어나자 동생인 아르투아 백작 가족이 사르데냐 왕국으로 피신한것과 달리 그와 그의 부인은 파리에 머물렀지만, 1791년 루이 16세와 그 가족들이 도망가려다 붙잡히게 되자 프로방스 백작부부는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현재 벨기에)로 피신합니다.
도피했지만, 프로방스 백작 부부는 사이가 더 나빠졌으며, 결국 마리 조제핀은 독일로 갔고, 프로방스 백작은 이탈리아로 갑니다. 그리고 둘은 거의 대부분을 떨어져 삽니다.
1790년대의 마리 조제핀
혁명이 일어나고 형과 형수가 죽고, 조카인 도팽 루이가 병사했다는 소문이 돌자 그는 조카를 루이 17세라 칭하고 자신을 루이 18세라고 칭합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몰락한후 그는 프랑스의 국왕이 됩니다. 처음에는 죽음이 확인되지 않은 루이 17세의 섭정 자격으로 여겼지만, 나폴레옹의 100일 천하 이후에는 정식 국왕으로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프로방스 백작
왕정 복고 되기전 루이 18세는 이탈리아와 영국에 머뭄니다. 처음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였던 베로나로 갔지만,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침공하자 베네치아는 루이 18세에게 떠날것을 요구합니다. 이후 그는 영국으로 갔고, 그곳에서 왕정복고때까지 지냅니다.
마리 조제핀은 왕정복고 전에 영국에서 사망했는데 죽기 전에 궁정 사람들과 남편에게 자신이 잘못한것이 있다면 용서해달라고 했고, 루이 18세는 죽어가는 부인에게 나쁜 감정이 없다고 확인시켜줬다고 합니다.
마리 조제핀
왕정 복고후 그는 대중들의 인기를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극렬 왕당파이자 자신의 후계자이자 동생인 아르투아 백작에게 내각을 맡겼으며 그는 절대 왕정을 추구했기에 도리어 인기를 잃어버립니다.
대관식 복장의 루이 18세
루이 18세는 오를레앙 가문을 싫어했기에 오를레앙 공작이었던 루이 필리프(후에 프랑스의 국왕)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카이자 상속자인 루이 페르낭이 암살되자 충격을 받아서 프랑스 국왕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깨고 조카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루이 18세 서재에 있는 모습
루이 18세는 19세기에 유일하게 통치중 죽은 프랑스 국왕이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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