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프랑스

루이14세와 가족들...(3) 왕비 마리 테레즈

엘아라 2010. 11. 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루이14세는 자녀들이 무척 많았습니다만, 정식으로 결혼했던 마리 테레즈와의 사이에서는 르 그랑 도팽만이 살아남죠. (루이14세는 정부들의 자녀들은 건강한데 정식 결혼으로 태어난 자녀들은 허약해서 걱정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왕비인 마리 테레즈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합니다.

사실 마리 테레즈의 자녀들중 성인이 된 자녀는 한명밖에 없어서 여기서 그냥 쭈욱 이야기할까했는데 문제가 르 그랑 도팽의 아들들 이야기까지 해야할듯해서 말입니다. 좀 길어질듯하더라구요...

 

 

루이14세와 가족들...왕비 마리 테레즈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사

프랑스의 마리 테레즈 왕비 

 

루이14세의 어머니 안 왕비는 아들은 자신의 조카인 마리 테레즈와 결혼시키길 원합니다. 마리 테레즈는 스페인-합스부르크 출신으로 아버지는 안 왕비의 동생인 펠리페4세이고 어머니는 루이13세의 동생인 프랑스의 엘리자베트(스페인에서는 이사벨라라고 불렸습니다.)였습니다. 이 때문에 마리 테레즈와 루이14세는 이중으로 사촌간이었는데 루이14세를 기준으로 모계로는 외사촌, 부계로는 고종사촌이 되죠.

재미난것은 이 결혼으로 루이14세는 손자의 스페인 왕위계승권을 주장할수 있게 됩니다. 왜냐구요? 마리 테레즈가 결혼할때 약정한 지참금을 덜 받았거든요. 스페인 왕위계승권을 포기하는 의미로 지참금을 과하게 준듯한데, 지참금을 덜 받았으니 당연 왕위계승권을 주장할수 있게 되는것이죠. (...스페인 왕위계승전쟁..-0-;;;)

 

 

마리 테레즈의 부모

스페인의 펠리페4세와 프랑스의 엘리자베트

둘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작품

 

인판타 마리아 테레사는 앞에서 말한대로 펠리페4세와 이사벨라 왕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에게는 오빠이자 펠리페4세의 후계자인 발타자르 카를로스가 있었습니다. 어린시절 아버지 펠리페4세가 무척이나 사랑한 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오빠와 어머니가 죽으면서 바뀝니다. 펠리페4세는 왕비와 후계자를 동시에 잃은후, 아들의 약혼녀가 될뻔했던 조카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의 마리아나와 재혼합니다. 마리아 테레사와는 몇살 차이 나지 않았던 사촌은 이제 새어머니가 된것이죠. 어렸던 마리아나는 마리아 테레사에게 좋은 새엄마가 못됩니다. 그리고 결혼후 마리아나는 펠리페4세가 가장 예뻐한 딸인 마르가리타 테레사를 낳았죠. 이때문에 마리아 테레사는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마르가리타 테레사는 벨라스케스의 유명한 연작 시리즈의 주인공입니다.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모습이죠.-0-;;)

 

 

마리 테레즈(왼쪽)와 마리 테레즈의 사촌이자 새어머니였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마리아나

둘이 닮았죠 나이도 10살정도밖에 차이 안났다고 합니다.

어려서 결혼한 마리아나는 의붓딸에게 어떻게 대해야할질 몰랐을거라는 이야기가 많더라구요

역시나 벨라스케스 작품

  

 마리 테레즈의 이복여동생

인판타 마르가리타 테레사

언니가 프랑스로 시집가면서 (지참금으로 해결하긴했지만 ) 잘못하면 스페인 왕위가 프랑스로 넘어갈 우려가 있었기에 외삼촌이자 사촌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레오폴트1세와 어린시절부터 약혼관계였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벨라스케스가 열심히 초상화를 그려서 빈으로 보냈대나 어쩐대나..

역시 벨라스케스 그림(..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작품)

 

그녀는 사촌과 결혼하면서 프랑스로 왔습니다. 당시 프랑스 궁정은 최첨단의 유행을 달리던 곳이고, 반면 스페인 궁정은 갑갑한 예법과 구닥다리 패션으로 이름 높았던 곳입니다.--;;;

마리 테레즈의 고모가 되던 안 왕비는 며느리이자 조카를 매우 따뜻하게 맞이했습니다만 마리 테레즈는 궁정에서 세련되지 못하고, 어리숙한 사람으로 통했죠. 마리 테레즈는 남편이 정부들을 바꿀때마다 가장 늦게 알아차리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안 왕비는 외국 공주로써 며느리가 얼마나 외로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언제나 며느리에게 잘 대해주었습니다.

 

 

 루이14세와 마리 테레즈의 결혼식

 

마리 테레즈 역시 시어머니인 안 왕비처럼 신앙심이 깊었다고 합니다.

마리 테레즈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으며 멋진 외모의 남편과 달리 늘 마시는 초콜렛때문에 점점 뚱뚱해져갔습니다. 그래서 점점 국왕과 왕비의 외모는 비교가 되었죠.

남편이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를 공식 정부로 인정하가 큰 상처를 받았지만, 후에 그녀는 차라리 루이즈가 더 낫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몽테스팡 후작부인이 정식 정부가 된후, 마리 테레즈는 남편에게 버림받습니다. 드셌던 몽테스팡 후작부인을 위해 루이14세가 과하게 정부에게 영향력을 준것도 있긴하지만, 초콜렛을 좋아하고 난장이들과 함께 있는 스페인식 궁정 전통은 루이14세가 싫어했기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마리 테레즈 

 

 

하지만, 맹트농 부인이 점점 루이14세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맹트농 부인은 루이14세에게 경건하게 살며 왕비에게 돌아가라고 조언했습니다. 이때문에 루이14세는 이후 왕비에게 잘 대해줬다고 합니다.

마리 테레즈는 1683년 갑자기 아팠으며, 병이 악화되어 사망했습니다.(.. 프랑스 왕실 주치의들을 피뽑다가 왕족 여럿 잡았죠...안죽은 루이14세가 신기한 사람이라는...)  왕비가 죽었을때 루이14세는 "(왕비의 죽음이) 그녀가 나를 골치아프게한 유일한 일이군"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루이14세와 마리 테레즈 

 

마리 테레즈와 루이14세 사이에서는 여섯아이가 태어났습니다만 성인이 될때까지 살아있었던 아이는 후계자였던 르 그랑 도팽밖에 없었습니다.

 

 

 

아들 르 그랑 도팽과 함께 있는 마리 테레즈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