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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노벨상 시상식

엘아라 2010. 10. 1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다음은 1950년 노벨상 시상식입니다.

 

1950년 노벨상 시상식

 

1950년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군요..-0-;;;

앗..이게 아니라..

1950년 10월 스웨덴의 국왕이었던 구스타프5세가 92살의 나이로 타계했습니다. 노벨상 시상식은 12월에 있기 때문에 아들인 구스타프6세 아돌프가 국왕으로 즉위한후 첫번째 노벨상 시상식이었습니다. 역시 영상 첫머리에 왕족들의 입장하는 모습을 볼수 있는데 아직 궁정이 상중이라 여성들이 모두 상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역시 상중이기에 화려한 유색보석이나 티아라는 착용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중에는 주로 진주라던가 아니면 다이아몬드를 착용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국왕과 왕비인 구스타프6세 아돌프와 루이즈 왕비 맨처음 등장하고, 그뒤로 시빌라 왕자비, 빌헬름 왕자,벨틸왕자가 옵니다.

스웨덴 왕실은 이때까지도 엄격한 귀천상혼제를 적용하고 있었기때문에 귀천상혼하면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하고 prince칭호를 삭제당했습니다. 참고로 공주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때까지 공주들은 귀천상혼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유셰니 공주 : 미혼, 로비사 공주 : 덴마크 왕비, 마르가레타 공주 : 덴마크 왕자비, 매르타 공주 : 노르웨이 왕태자비, 아스트리드 공주 : 벨기에 왕비, 잉리드 공주 : 덴마크 왕비)

이때문에 결국 아들들은 수두룩했는데, 남아나는 왕위계승자는 없는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나이 어렸던 현 국왕님을 제외하고는 여기 나온 왕자들이 왕위계승자 다 였습니다. 게다가 빌헬름 왕자는 결혼만 안했을뿐이지 사실 평민이랑 같이 살고 있었죠. 벨틸왕자도 사실 평민인 이혼녀를 사랑했지만, 저 상황에서 자신마저 귀천상혼할수 없었기에, 아버지가 죽을때까지 결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 저 뒤에 상복을 입은 여성들이 귀천상혼한 왕자들의 가족인듯한데 귀천상혼한 왕자들은 언론에 잘 안나와서 누가누구인지 구별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구스타프5세 가족사진에서 귀천상혼한 동생인 오스카르와 그 가족이 등장하고, 왕실가족들이 오스카르 왕자의 집이었던 프리드리헴(오스카르 왕자의 고모인 유셰니 공주가 오스카르에게 물려준것입니다.)에서 찍은 사진등도 있는것을 보니 가족끼리는 교류하고 지낸듯하더라구요.^^*

앞의 1938년 영상에 나온 왕자들중 여기 없는 왕자들은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현국왕의 아버지)는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렌나르트 왕자는 귀천상혼했구요, 유셴왕자 역시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칼왕자는 아마 늙으셔서 안나온듯합니다.(다음해에 사망하거든요..아마 형의 죽음이 충격이었을수가 있죠.)

 

1950년 노벨상 수상자는 물리학상은 세실 파월,화학상은 오토 파울 헤르만 딜즈와 그의 제자인 쿠르트 알데르,생리-의학상은 에드워드 켄달, 타데우스 라이히슈타인,필립 헨치가 수상했습니다. 문학상은 버트란트 러셀경이 받았으며 평화상은 랄프 번치가 수상했습니다.

 

흑..그런데 왜 사진들이 전부 위키에 저작권 표시가 되어있는거랩니까...ㅠ.ㅠ

저작권 표시된 사진은 안가져온다가 원칙이라 링크만 걸겠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Cecil_Frank_Powell.jpg

세실 파월

Cecil Frank Powell

(5 December 1903 – 9 August 1969)

 

영국 켄트에서 지역 총기제작자의 아들로 태어난 세실은 캠브리지의 시드니 서섹스 칼리지를 졸업했다고 합니다.그리고 캠브리지의 그 유명한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윌슨과 러더포드경의 지도하에 학위를 받았습니다. (러더포드경은 제자들이 노벨상 많이 받은걸로 유명하긴한데, 남녀차별주의적이라 여성과학자들을 무시했다고 하더라구요. 에딩턴경밑에서 일했던 여성 과학자 이야기를 읽었었는데, 그전에 러더포드 밑에서 치를 떨다가 에딩턴경밑으로 왔는데 에딩턴경이 잘 대해줬다고 하더라구요. 누구였지..-0-;;; 그랬던 에딩턴경도 찬드라셰카르한테는...-0-;;;;)

뭐 잘은 모르지만 파이온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파이온을 예견한 사람은 일본의 물리학자이자 1949년 노벨상 수상자인 유가와 히데키입니다.)

파이온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역시나 다 까먹어서 기억이 잘 안나는데....

하여튼 핵을 구성하는 여러가지 작은 입자들이 있습니다. 핵이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것은 대충 아실겁니다. 뭐 더이상 알려고 하면 머리 깨지는데 (흑..갑자기 글루온이 떠오르고, 쿼크이야기도 나와야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튼 알고 보니까 핵은 단순히 양성자와 중성자만으로 구성된것이 아니라 다른 입자들도 있는거 같더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파이온이라는것인데, 유가와 히데키가 이걸 이론적으로 제안했고 파웰이 실험적으로 증명한것인거죠.(갑자기 쿼크와 색이 무슨관계더라..라는 생각이 들면서 머리가 혼란해집니다..ㅠ.ㅠ 더 알고픈분들을 위한 추천도서 : 초이론을 찾아서 -배리파커,전파과학사-)

 

 

http://en.wikipedia.org/wiki/File:Otto_Paul_Hermann_Diels.jpg

오토 딜즈

Otto Paul Hermann Diels

(23 January 1876 – 7 March 1954)

 

독일 베를린 대학의 문헌학 교수의 아들로 태어난 오토 딜즈는 역시 베를린 대학에서 화학으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916년에서 1945년까지 키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낯익은 이름인 키엘 ㅎㅎㅎ)

그는 제자인 쿠르트 알데르와 함께 Cycloaddition 기작을 발견해서 발전시킨 공로로 화학상을 받습니다.

..저 기작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화학을 싫어하는 전 잘 모릅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왠지 이름이 낯익다 했더니 유기화학에서 Diels-Alder 반응이 랩니다.--;;;(반응은 쿠르트 알데르에서 설명을..)

 

http://en.wikipedia.org/wiki/File:Kurt_Alder.jpg

쿠르트 알데르

Kurt Alder

(10 July 1902 – 20 June 1958)

 

대충 폴란드랑 독일 국경근처에서 태어난듯한데 정확히 지명을 못읽겠습니다. (폴란드어는 패스) 1922년 베를린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이후 키엘대학에서 오토 딜즈의 지도하에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이때 연구한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딜즈-알데르 반응인듯합니다. (그러니 둘이 노벨상받죠.)

이후 쾨른대학에서 정착한듯한 그는 매우 많은 논문을 썼고, 유기화학분야에서 151편의 논문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딜즈와 알데르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딜즈-알데르 반응은 탄소이중결합이 두개가 붙은 디엔(Diene)과 탄소 이중결합이 하나가 있는 알켄(Alken)이 결합해서 고리 형태인 시클로헥켄을 생성하는 과정이 가장 대표적인 반응이라고 하네요. (사실 유기화학도 잘 모릅니다.유기화학도 화학인지라..-0-;;;)

 

에드워드 켄달

Edward Calvin Kendall

(March 8, 1886, – May 4, 1972)

 

미국 출신의 화학자로 부신피질 호르몬을 발견하고 기능과 구조를 알아내는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마요 병원(Mayo Clinic)에서 동료였던 필립헨치와 스위스의 학자인 리히슈타인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필립 헨치

Philip Showalter Hench

 (February 28, 1896 – March 30, 1965)

 

미국 출신의 생리학자로 1차대전때 미군의 군의관으로 일을 한듯합니다. 역시 켄달과 리히슈타인과 함께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타데우스 리히슈타인

Tadeusz Reichstein

(July 20, 1897 – August 1, 1996)

이름 맞게 읽었나?

 

폴란드 출신의 스위스 화학자였습니다. 유대인이었으며, 아버지가 엔지니어로 있던 키예프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독일의 예나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1933년 쥐리히에서 연구할때, 비타민C의 생성에 관련되는 기작을 발견했으며 이것은 리히슈타인 프로세스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켄달과 헨치와 함께 195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버트란트 아서 윌리엄 러셀

3대 러셀백작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3rd Earl Russell,

(18 May 1872 – 2 February 1970)

 

철학자,역사학자,수학자,사회학자등의 다양한 직함을 갖는 버틀란트 러셀은 영국 귀족으로 태어났습니다.그의 할아버지이자 1대 러셀 백작이었던 존 러셀은 6대 베트포드 공작의 아들로 빅토리아 여왕시기 두번이나 수상직을 역임했습니다. 그의 집안은 자유당이었습니다. 러셀은 자신의 대부였던 존 스튜어트 밀의 저작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사회문제에 깉게 생각했었는데, 일차대전때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뭔가를 많이 하셨는데 잘은 모르겠군요..ㅎㅎㅎㅎ

이름이 왠지 낯익다 했더니 수학쪽 책에 나오는 러셀이 이분이시군요..-0-;;;;;;;;;

1950년 러셀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이유는 뭐 대충 사상의 자유와 박애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수많은 다양하고 뛰어난 저서에서 언급했다.("in recognition of his varied and significant writings in which he champions humanitarian ideals and freedom of thought )라고 합니다.

 

 

 

랄프 존슨 번치

Ralph Johnson Bunche

(August 7, 1903(4?) – December 9, 1971)

 

랄프 번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미시간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어린시절 부모를 잃었고, 조부모가 있는 LA에서 성장합니다. 그는 매우 뛰어난 학생으로 장학금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습니다.

2차대전때 CIA의 전신이었던 OSS에서 일을 했으며, 여러곳의 자문역할도 합니다.

1948년 팔레스타인 문제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의 협의가 진행될때 유엔측 대표였던 폴케 베르나토테 백작의 최고 참모로 함께 동행합니다. 폴케 베르나도테 백작은 협의의 중재자 역할을 맡았었습니다. (참고로 폴케 베르나토테 백작은 스웨덴의 오스카르2세의 귀천상혼한 아들인 오스카르의 아들로 구스타프5세의 조카이자 구스타프6세 아돌프의 사촌이었습니다.) 그가 암살당한후, 협상에서 유엔측 최고 책임자가 된 번치는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이에 1950년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노벨재단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영상출처

Stv 동영상 페이지

http://svtplay.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