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노벨재단 페이지에 생중계를 보다가 문득 스웨덴 TV방송국인 STV방송국 로고를 봤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앗!!그래 STV영상 링크를 찾아보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래는 왕족들 누가 참석했나..이게 궁금해서 보긴했는데...
뭐 노벨상 누가 받았는지도 알면 좋겠더라구요..
솔직히 참석한 왕족은 다 알겠던데 정작 상받는 사람은 누군지 모르겠더라는...-0-;;;
(헉..페르미가 물리학상을 받았던데...그럼 페르미가 망명했던 노벨상 수상식이 이때였던것이라는...-0-;;)
하여튼 동영상과 함께 참석한 왕족들 소개와 더불어 누가 상을 받았는지만 이야기해볼까합니다.
STV에 자세히 나올줄 알았는데 제가 검색기술이 딸려서 그런지 아니면 모르는 스웨덴어를 찍기로 해석해서 그런지 어쨌든 다는 안나오네요...
...아시다시피 살아있는 왕족은 그다지 관심없기에..현 스웨덴 국왕이 수여하는 시대부터는 안할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면 루이즈 왕비 나오는 파트만 한다던가...-0-;;괜히 루이즈 왕비 팬이 아니죠..)
1938년 노벨상 수상식
노벨상 수상식은 매년 12월 10일 스톡홀름에서 열립니다.(평화상만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열립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잘 모르지만 적어도 1901년에는 노르웨이는 스웨덴과 연합왕국을 형성하고 있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12월의 첫째주는 Magic Week로 뭐 오슬로(노르웨이)에서 스톡홀름(스웨덴)의 거리에 노벨상 기념 표지같은것이 붙나 봅니다.(..대충 읽어서 읽기 귀찮아요..-0-;;)
1938년 노벨상 수상식
앞부분은 스톡홀름에서 한 수상식이고 뒷부분은 오슬로에서 한 평화상 수상식인듯합니다.
영상의 처음에 나오는 사람들이 스웨덴 왕족입니다. 1938년에 스웨덴의 국왕은 구스타프5세였습니다.(현 스웨덴 국왕의 증조할아버지) 그뒤를 따르는 여성이 당시 왕태자비였던 루이즈 왕비입니다. 그뒤는 루이즈의 남편이자 왕태자였던 구스타프6세 아돌프고 뭐 그뒤로 왕족들이 나옵니다.
어쨌든 자리잡고 앉은 모습을 보면 맨 앞줄에서 카메라 가까운쪽부터 유셴왕자(구스타프5세의 동생),빌헬름 왕자(구스타프5세의 둘째아들),구스타프 아돌프 왕자(구스타프5세의 손자이자 구스타프6세 아돌프의 장남, 현 스웨덴 국왕의 아버지),시빌라 왕자비(구스타프 아돌프 왕자의 부인, 현 스웨덴 국왕의 어머니), 구스타프5세, 루이즈 왕태자비(구스타프6세 아돌프의 부인), 구스타프 아돌프 왕태자(구스타프6세 아돌프),렌나르트 왕자(구스타프5세 아돌프의 손자, 빌헬름 왕자의 아들), 칼 왕자(구스타프5세의 동생) 입니다.
루이즈왕태자비는 바덴의 프린지 티아라(루이즈의 시어머니인 바덴의 빅토리아가 결혼할때 혼수로 가져온 티아라입니다.)를 썼고, 시빌라 왕자비는 코넛의 티아라(시빌라 왕자비의 시어머니이자 구스타프6세 아돌프의 첫번째 부인인 코넛의 마거릿이 혼수로 가져온 티아라입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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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벅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고 있는 구스타프5세
1938년 수상자들은 물리학상은 엔리코 페르미가 받았고, 화학상은 리하르트 쿤, 생리-의학상은 코르네이유 쟝 프랑수아 헤이만스가 받았으며 노벨 문학상은 펄 벅이 받았습니다. 평화상은 난센국제난민사무국이 받았습니다. 리하르트 쿤은 못갔다고 나오는데 왜 헤이만스는 안나오는걸까요...-0-;;;; 어쨌든 스톡홀름 영상에는 펄벅과 페르미만 나옵니다.
193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엔리코 페르미
Enrico Fermi (29 September 1901 – 28 November 1954)
엔리코 페르미는 이탈리아출신의 물리학자로 어릴때부터 무진장 똑똑하셨댑니다. 젊은 나이에 대학교수가 되었고 입자물리학이나 핵물리학부분에서 여러가지 업적을 남겼죠. (뭐냐고 물으신다면 다 까먹어서 기억이 잘 안나는데, 페르미통계를 따르는 입자인 페르미온..이런거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페르미는 1938년 '중성자를 충돌시켜 만들어낸 새로운 방사성 원소를 확인하고 느린 중성자에 의해 일어나는 핵반응'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습니다.
...페르미의 노벨상 이야기는 그의 망명이야기와 연관됩니다. 페르미는 유대인이었던 부인과 결혼했습니다. 이때문에 이탈리아가 독일 나치 정권과 우호적이 되자 그 역시 불안에 떨어야했습니다. 결국 그는 망명을 결심합니다만, 부인과 이탈리아를 빠져나갈 기회를 잡는것이 그다지 쉽지 않았죠. 이때 중립국이었던 스웨덴에서 열리는 노벨상 수상식은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노벨상 시상식이후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펄 벅
Pearl Sydenstricker Buck (June 26, 1892 — March 6, 1973)
중국이름 Sai Zhenzhu (Chinese: 賽珍珠; pinyin Sài Zhēnzhū),
펄이 진주라서 이름이 진주군요...쿨럭
펄 벅은 중국 선교사의 딸로 태어났고, 특히 중국 소작농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린 "대지"로 유명해졌습니다.
이후 대지의 후속 소설과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많이 썼으며, 후에 펄 벅 재단을 설립했습니다.(사실 펄벅 책을 읽은것이 없다는...ㅠ.ㅠ 문학적 소양이 딸려요..ㅠ.ㅠ)
노벨상 수상 이유는 대충 중국의 소작농의 삶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한 대하소설과 자신의 자전적 소설과 작품들때문이라고 합니다.
리하르트 쿤
Richard Kuhn
(December 3, 1900 – August 1, 1967)
오스트리아계 독일인이었던 리하르트 쿤은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습니다. 여러가지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화학공부를 하기로 뒤늦게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결정후에는 열심히 공부했는지 잘 나가셨습니다
하여튼 1938년 카로네이드와 비타민의 관계를 연구한 공로로 화학상 수상이 결정됩니다만, 2차대전이 끝난후에야 노벨상을 수상할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2차대전때 망명하지 않고 독일에 남아있었던 과학자들은 대부분 그들이 나치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나치에 협력했다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특히 나치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들은 더한듯합니다. 쿤에 대해서도 역시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데 특히 최근 연구에 그 역시 나치에 적극 협조한 사람..이라는 연구가 나오는듯하네요.
개인적으로는 나치에 협력안할수는 없었으리라 추정합니다. 평범한 독일인이었다면 아마 그랬을듯하구요.--;;;; 예전에 글을 읽을때 당시 "나치가 독일을 구할것이다"라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이 엄청났다고 합니다. 그가 어느정도 적극적이었던지는 알수 없지만 적어도 미화는 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한답니다. 왜냐구요. 어린시절 하이젠베르크에 대해서 읽을때 그가 독일에 남았던 이유가 숭고하게도 독일의 과학을 위해서..라는 글을 읽었었는데, 그가 나치 지지자여서 그랬다는 연구결과를 보고는 엄청 실망했었거든요.--;; 그것보다는 사실 폰 브라운이야기에 열받은거라...제가 위인전기는 애들한테 읽히면 안된다!!라고 주장하게된 결정적 인물이거든요.
코르넬유 쟝 프랑수아 헤이만스
Corneille Jean François Heymans
(March 28, 1892 – July 18, 1968)
이름 제대로 읽은거 맞나?
헤이만스는 벨기에 출신의 생리학자라고 합니다. (의학파트는 잘 모르는지라...사실 아는것이 없긴하죠..ㅎㅎㅎ) 그는 대충 몸안의 산소와 혈액의 압력이 뇌와 몸의 혈액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로 상을 받은듯합니다. (how blood pressure and oxygen content of the blood are measured by the body and transmitted to the brain , ㅠ.ㅠ 그런데 한글로 번역해놓은 말이 더 이해가 안된다죠..ㅠ.ㅠ)
탐험가였던 난센
난센국제난민사무국은 그의 이름을 딴것입니다.
난센은 전쟁 포로 교환등의 일에 힘쓰다가 1930년 사망했고, 이에 사람들은 1931년 그의 활동을 이어받은 기구를 설립합니다. 이것이 바로 난센국제난민사무국이었죠. 정치적인 이유로 난민이 된 사람들을 구호하는데 힘썼고, 전쟁포로를 구호하는데도 적극적으로 관여했습니다. 이때문에 1938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다음백과사전
네이버백과사전
동영상 출처
STV 동영상 페이지인듯(스웨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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