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하..드디어 빅토리아 여왕자녀들까지 왔습니다.-0-;;;;
여왕님 자녀들은 모두 아홉명이었고, 첫번째 아이인 빅토리아와 막내아이인 베아트리스는 거의 20년가까이 차이가 났습니다. (열일곱살이차이가 나던가 그렇습니다.-0-;;; 제가 숫자에 약해서..ㅠ.ㅠ 하여튼 막내딸이 태어나고 1년도 안되서 큰딸이 시집갔죠.-0-;;;)
여왕님과 알버트공은 행복하셨댑니다. 남편이 일찍죽지만 않았다면 더 행복하셨을텐데 말입니다. 이후 인생의 반을 과부로 사신 여왕님은 남편을 잃었다는 슬픔에 늘 젖어사셨다고 합니다.
여왕님과 알버트공
....아하하....빈터할터의 "사기그림"을 넣을려고 했는데 그 그림은 여왕님 대부모 이야기할때 넣죠.^^*
흑 빅토리아 여왕의 매부리코를 증손녀인 루이즈 왕비님이 닮는 바람에 평생 미모가 "별로"라는 평가를 받게되죠.ㅠ.ㅠ (개인적으로는 언니가 너무 예뻐서 그렇다!!라고 생각합니다만...ㅠ.ㅠ)
빅토리아 여왕의 첫번째 아이는 딸인 빅토리아였습니다. 어머니 이름을 물려받은 그녀는 애칭으로 빅키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알버트공은 자신의 첫번째 아이이자 딸인 빅토리아에게 반해버렸고, 딸네미에게 온갖정성을 다 쏟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여왕님께서 질투하셨다죠.) 총명한 아이였던 빅토리아는 아버지의 사상이나 정치성향을 가장 잘 이해한 딸이었다고 합니다. 15살이 되기전 자신이 프로이센의 왕위계승자와 결혼할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정략결혼티가 나긴하지만, 빅토리아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3세는 매우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 영국 공주라는 의식이 강했고, 똑똑하고 독립적이었던 빅토리아는 보수적인 프로이센 왕가에서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합니다. 프로이센 궁정에서 빅토리아에 대해 "영국여자"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남편과 사이는 무척이나 좋았지만, 아들과의 사이는 그다지 원만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특히 아들인 빌헬름2세와는 정치적으로 다른 입장이어서 더욱더 그랫다고 하죠. 하지만 딸인 조피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면, 사이 나쁜 남매를 좀더 다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답니다.^^* (빅토리아의 아래 세딸들인 빅토리아,조피,마르가레테는 어머니와 친했고, 오빠인 빌헬름2세와는 사이가 안좋았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큰딸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독일의 프리드리히 황후
빈터할터 그림
Princess Victoria of Great Britain, Princess Royal
부모 :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공과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출생일 1840년 11월 21일 (버킹엄궁전)
세례식 : 1841년 2월 10일 버킹엄궁전
세례명 : 빅토리아 아델라이드 메리 루이사
대부모
1.벨기에의 국왕 레오폴1세 : 빅토리아 여왕의 외삼촌이자 앨버트공의 숙부
레오폴1세
빈터할터 그림
2.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에른스트1세 : 친할아버지,웰링턴공작이 대리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에른스트1세
동생인 벨기에 국왕님이랑 좀 닮으셨죠
3.서섹스 공작 아우구스투스 왕자 : 빅토리아 여왕의 숙부
서섹스 공작, 아우구스투스 프레데릭 왕자
조지3세의 아들, 빅토리아 여왕의 숙부
4.아델라이드 왕비 : 빅토리아 여왕의 백모, 윌리엄4세의 왕비
아델라이드 왕비, 윌리엄4세의 왕비
아델라이드 왕비는 아이들이 모두 어린시절 사망했기에 윌리엄4세의 혼외자식들을 무척이나 잘 챙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카인 빅토리아여왕을 어릴때부터 무척이나 아꼈는데, 남편과 동서인 켄트공작부인사이가 나빠서 빅토리아를 잘 못보자 슬퍼했다고 합니다.
5.글로스터 공작부인 : 빅토리아 여왕의 고모 메리 공주
글로스터 공작부인 메리 공주
빅토리아 여왕의 고모, 빅토리아 여왕은 이 고모 역시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합니다.
여왕의 막내딸인 베아트리스공주가 태어난직후 사망했다고 합니다.
6.켄트공작부인 : 외할머니인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빅토리아
켄트 공작부인 빅토리아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빅토리아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 딸은 앨리스 공주입니다. 앨리스는 어린시절부터 무척이나 상냥한 소녀였다고 합니다. 매우 똑똑했던 언니 빅토리아보다 덜 똑똑하다고 여겨졌는데, 때문에 누나의 똑똑함에 늘 비교당하던 오빠 버티와 친한사이가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앨리스가 언니와 사이가 좋지 않은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언니가 시집간후, 허전해하는 아버지를 위해 언니의 빈자리를 채워야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리 쉬운일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 여왕과 알버트공은 앨리스를 위해 헤센 대공가의 후계자를 남편감으로 선택합니다. 하지만 결혼전 알버트공이 사망합니다. 이 사건은 왕실내에서 앨리스의 위치를 변화시키는것이었는데, 죽어가던 아버지를 간호하고, 혼란에 빠진 어머니를 다독였던 사람이 앨리스라고 합니다. 남편을 잃은 어머니가 무슨일을 할지 몰라 아버지의 사망후 얼마간 어머니 곁에서 자면서 간호했다고 합니다. 또 어머니가 다시 공적임무를 수행하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어갈때 아들의 책임이라면서 아들에게 연락 하지 않은 여왕대신 오빠에게 전보를 보낸것도 앨리스라고 합니다.)
앨리스의 결혼식은 예정대로 열렸지만, 앨리스는 남편과 함께 어머니 곁에서 한동안 살았다고 합니다.
앨리스 공주
헤센의 대공비
역시 빈터할터 그림
(아하하..빈터할터 그림으로 떼울까요-0-;;)
Princess Alice of Great Britain
부모 :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공과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출생일 : 1843년 4월 25일 (버킹엄 궁전)
세례식 : 1843년 6월 2일 (버킹엄 궁전)
세례명 : 앨리스 모드 메리
딸의 이름을 앨리스라고 지은 이유는 빅토리아 여왕이 처음에 매우 의지했던 수상인 멜버른경이 가장 좋아했던 여자이름이 앨리스였기때문이라고 합니다.^^*
대부모들
1. 하노버의 국왕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 빅토리아 여왕의 숙부, 캠브리지 공작이 대리
(원래는 세례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할수없이 동생인 캠브리지 공작이 대리했다고 합니다. 세례식이 끝나고 연회도 끝난후에야 도착해서 빅토리아 여왕이 짜증냈댑니다..ㅎㅎㅎ)
하노버의 국왕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1세
빅토리아여왕때 하노버와 영국은 분리되었고, 살리카법을 따르던 하노버는 여왕의 숙부이자 조지3세의 아들이었던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가 국왕이 됩니다.
2. 작센-코부르크-고타의 후계공 : 백부인 에른스트2세,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프리드리히 빌헬름(빅토리아 여왕의 사촌 캠브리지의 아우구스타의 남편)이 대리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에른스트2세
알버트 공의 형
알버트공이랑 좀 닮았죠.^^*
3. 호엔로에-랑겐부르크의 공비 페오도라 : 빅토리아 여왕의 이부언니,켄트공작부인이 대리
빅토리아 여왕의 이부언니 페오도라
라이닝겐의 페오도라 공녀
호엔로에-랑겐부르크의 페오도라 공비
4. 글로스터의 소피아 마틸다 공주 : 외할아버지인 켄트공작의 사촌
글로스터의 소피아 마틸다 공주
조지3세의 조카
빅토리아 여왕의 셋째딸은 헬레나 공주였습니다.헬레나는 조용하고 순종적 성격으로 빅토리아 여왕이 가장 말 잘들을것같은 딸...--;;;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은뒤 여왕은 딸들을 멀리 시집보내는것을 싫어했는데, 앨리스의 경우는 남편이 결정한것이라서 헤센으로 시집보냈다고 합니다. 헬레나 역시 어머니옆에서 매여서 살았는데, 우연히 슐레스비히-고토로프의 크리스티안공을 보고 반하죠. 이것은 안그래도 골치아픈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에 또 끼어드는 사태를 야기시킵니다. 독일에 있던 큰언니 빅키는 이 결혼에 찬성하지만, 덴마크 공주와 결혼한 오빠 버티는 반대하죠. 여동생 루이즈는 언니 결혼에 찬성하지만, 언니 앨리스는 결혼에 반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앨리스는 후에 동생을 위해 찬성으로 마음을 바꾸었고,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에서 사는 조건으로 결혼을 수락했다고 합니다. 상속받을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크리스티안공 역시 이 조건을 수락합니다.
헬레나와 크리스티안공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헬레나 공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비
후에 그냥 The Princess Helena
늘 느끼는거지만 동생인 베아트리스가 헬레나랑 점점비슷해져가는듯..=0-;;;
Princess Helena of Great Britain
부모 :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공과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출생일 : 1846년 5월 25일 (버킹엄궁전)
세례식 : 1846년 7월 25일 (버킹엄 궁전)
세례명 : 헬레나 아우구스타 빅토리아
헬레나의 이름은 대모인 오를레앙공작부인과 캠브리지 공작부인과 어머니의 이름에서 따온것이라고 합니다.
대부모들
1.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대공 후계자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인 캠브리지의 아우구스타의 남편
2. 오를레앙공작부인 엘렌 :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헬레네, 외할머니 켄트 공작부인이 대리
아들 파리 백작을 안고 있는 엘렌
역시나 빈터할터 그림
엘렌은 알버트공의 어머니인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루이제와 사촌간이었습니다. 알버트공의 외할머니인 루이제 샤를로테가 메클렌부르크-슈벨린 출신으로 엘렌의 고모였습니다.
3.캠브리지 공작부인 아우구스타 : 헤센-카셀의 아우구스타,빅토리아 여왕의 숙모
빅토리아 여왕의 넷째딸은 루이즈입니다. 루이즈는 빅토리아 여왕의 딸들중 가장 반항아 기질이 컸던 딸이라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딸 루이즈때까지만 하더라도 딸들이 결혼은 해야한다..라고 생각하셨었습니다. (베아트리스때는 아닌듯..--;;;) 하지만 딸들의 남편감에 대한 조건은 항상 영국에서 살아야할것!!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독일쪽 왕족들과 결혼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루이즈는 왕족이 아니라 귀족인 아가일 공작의 아들인 론의 후작 존 캠벨과 결혼합니다. 루이즈 이전에 공주가 귀족과 결혼한 예는 튜더 왕가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헨리7세의 동생이었던 메리 튜더가 남편인 프랑스 국왕 루이12세가 사망한후,
찰스 브랜든과 결혼했던것이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오빠인 버티는 이에 대해서 반대했지만, 빅토리아 여왕은 딸의 결혼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루이즈의 결혼생활을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는데, 특히 자녀가 없어서 더했다고 합니다. 아이가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루이즈가 어린시절 아팠을때 아이를 가질수 없게 되었다는것과 루이즈의 남편이 동성연애자였기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동생 베아트리스의 남편 헨리와의 관계는 당시 스캔들감이었고, 헨리가 죽은후 "베아트리스는 헨리에게 아무런 존재도 아니었다"고 말해서 동생에게 상처줬다고 합니다. (...베아트리스와 루이즈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루이즈 공주
아가일 공작부인
Princess Louise of Great Britain
부모 :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공과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출생일 : 1848년 3월 18일 버킹엄궁
세례식 : 1848년 5월 13일 버킹엄궁
세례명 : 루이사 캐롤린 앨버타
처음에는 루이사로 세례를 받았지만, 곧 몇년되지 않아서 이름을 루이즈로 선택했다고 합니다.
대부모들
1.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구스타프 공작 : 앨버트공이 대리,앨버트공의 어머니의 외삼촌
2. 작센-마이닝겐의 공작부인 마리 : 헤센-카셀의 마리, 빅토리아 여왕의 백모인 아델라이드 왕비가 대리,아델라이드 왕비의 올케
3.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후계대공비 : 빅토리아 여왕의 사촌인 캠브리지의 아우구스타, 캠브리지 공작부인이 대리
캠브리지의 아우구스타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은 베아트리스 공주였습니다. 여왕과 알버트공은 이 막내딸을 끔찍히 예뻐했는데, 여왕은 남편이 좋아하는데다가 무척이나 예쁜아이여서 사랑했고, 알버트공은 막내딸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시집가버린 큰딸에 대한 허전함으로 이 딸을 예뻐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은뒤 딸들을 늘 잡고 살던 여왕은 이 막내딸을 늘 곁에 두었고, 결국 베아트리스 공주는 어머니 곁에 늘 묶여있게 됩니다. 여왕은 막내딸을 결혼으로 잃는것을 싫어했기에, 베아트리스가 바텐베르크의 헨리와 결혼하려할때 결사반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왕은 같이 산다는 조건으로 결혼을 승락했고, 베아트리스 공주와 헨리는 여왕과 함께 살죠. 베아트리스 공주의 남편인 헨리는 여왕곁에서 가만히 있는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참고 살다가 못견딜때면 가끔 요트를 타고 유럽의 여러곳을 여행하러 다녔다고 합니다.
(베아트리스 공주 이야기를 읽으면서 떠오른것은 "라푼젤이야기"였답니다. 그 이야기에서는 라푼젤이 마녀에게서 도망쳐서 왕자님을 다시 만나지만, 베아트리스공주 이야기에서는 여왕님이 왕자님까지 데리고 같이 살죠..ㅎㅎㅎ)
베아트리스 공주
바텐베르크 공비
베아트리스공주는 어린시절 "금발에 요정같았다"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큰언니인 빅토리아는 베아트리스에 대해 "우리자매들중 제일 예쁜애"라고 했습니다. 또 예쁜애들 좋아하신 어머니의 편애를 받으셨죠. 하지만 나이들면서 점점 여왕님과 비슷해지시죠.--;;
전 젊을때 사진을 최근에야 봐서..--;;; 이럴때도 있으셨군..이라는 생각을 했다죠.
Princess Beatrice of Great Britain
부모 :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공과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출생일 : 1857년 4월 14일 버킹엄 궁전
세례식 : 1857년 6월 16일 버킹엄 궁전
세례명 : 베아트리스 메리 빅토리아 페오돌
메리는 베아트리스가 태어난 직후 사망한 글로스터 공작부인 메리의 이름을 따온것이고 빅토리아는 어머니와 두명의 대모인 외할머니와 큰언니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페오돌은 빅토리아 여왕의 이부언니인 페오도라의 이름에서 따온것입니다. 베아트리스라는 이름은 중세 영국왕가에서만 쓰이던 이름으로 낭만적인 작가였던 앨버트공이 아마도 당시 유행하던 단테와 베아트리스 이야기에서 따온이름으로 추측합니다.
대부모
1.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자 : 큰언니 빅키의 약혼자, 후에 독일의 황제 프리드리히3세
아들 빌헬름과 함께 있는 프리드리히3세
2.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 큰언니
결혼식때의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
역시나 빈터할터 그림
3.켄트공작부인 빅토리아 : 외할머니
켄트공작부인 빅토리아
자료출처
1.Yvonne's Royalty Home Page
http://mypage.uniserve.ca/~canyon/index.htm
2.The Last Princess: The Devoted Life of Queen Victoria's Youngest Daughter (2008. Matthew Dennis)
3.Alice: Grand Duchess of Hesse,Princess of Great Britain and Ireland-Biographical sketch and Letter
(앨리스 공주가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내는 편지 모음)
4.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피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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