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ㅎㅎㅎ 스트레스 받을때는 역시 공주님 이야기를....흑..(안쓸려고 노력했는데 역시 스트레스 만땅이니 안쓸수가 없군요...ㅠ.ㅠ)
에드워드7세 부부의 대부모라고 되어있긴하지만, 알렉산드라왕비의 대부모를 찾을수가 없네요.
인터넷에서 볼수 있는 알렉산드라 왕비 전기를 다 뒤졌는데도 나오질 않는군요.
다른 자료들에서도 어린시절에 대해서 잘 찾아볼수가 없네요.
읽다가 보니 의외로 스칸디나비아쪽 왕가들이 자료를 공개 안한다고 하는군요.
(엘리자베스 여왕님은 활짝 공개하셨다죠. 덕분에 전기를 보면 첫머리에 여왕님께 감사를 표하는경우가 많더라구요.제가 봤던 다큐중 하나에서는 여왕님만큼 자료를 개방하신분이 없다고 하더군요.)
영국의 에드워드7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누나인 빅토리아 다음으로 태어났고, 그가 태어났을때 (남성)후계자를 얻은 빅토리아 여왕과 알버트공이 엄청 기대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버티"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에드워드7세는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왕위계승자에 대한 엄청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고, 버티 역시 누나(빅키)보다 덜 똑똑하다는데 좌절했다고 합니다. 결국 여왕님은 아들에 대해 실망하고, 버티는 또 그에 기가죽고...완전 네거티브 피드백효과가 나타난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빅토리아 여왕과 아들 사이에서 나름 중재자 역할을 하시던 알버트공이 버티를 만나고 온후 병이 악화되어 사망하자, 여왕님의 미움은 극에 달했다고 합니다. (여왕님은 평생 남편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이 죽어갈때 장남에게 소식조차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버티의 동생인 앨리스가 오빠를 오게했다고 합니다. (뭐 제 생각으로는 이것은 일부러라기보다는 알버트공이 죽을꺼라는 생각을 절대 하시지 않았다고 생각이 든답니다. 최근 읽는 베아트리스공주 전기를 보면 빅토리아 여왕이 남편이 죽기 직전까지도 남편의 증세에 대해서 정확히 몰랐던것같거든요. 여왕이 충격받을 것을 너무나 두려워해서 의사들이 여왕에게는 정확한 증세를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
어쨌든 빅토리아 여왕은 아들이 공적 임무를 하는데 훼방을 놓았고, 결국 버티는 화려한 나이트라이프를 즐기면서 살게 되죠. (버티가 바람둥이가 된것에 빅토리아 여왕의 책임도 쬐금은 있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평생 아내에게 충실하지 않았던 남편이었고, 자녀들에 대해서도 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아버지였다고 합니다. (부인인 알렉산드라는 남편의 바람기때문에 자녀들에 대해서 독점욕이 강했다고 합니다.) 당대에도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남편으로 유명했지만, 자녀들을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합니다. 특히 장남인 에디가 사망했을때 그는 죽은 아들곁은 차마 떠나지 못했고, 빅토리아 여왕에게 "그애를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줄수있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할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모습에 사실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에드워드7세
King Edward VII
부모 :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앨버트 공과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출생일 : 1841년 11월 9일 (버킹엄궁전)
세례식 : 1842년 1월 25일 윈저성
세례명 : 앨버트 에드워드
대부모들
1.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4세
2.캠브리지 공작 아돌푸스 왕자 : 빅토리아 여왕의 숙부
3.작센-고부르크-고타의 페르디난트 공
위키에는 앨버트공과 빅토리아여왕의 사촌이자 포르투갈의 마리아2세의 남편인 페르디난드2세로 표기되어있습니다만 자료출처에는 에드워드7세의 great-uncle로 표기되는것으로 봐서 앨버트공의 숙부이자,빅토리아 여왕의 외삼촌이고 페르디난트2세의 아버지되는 페르디난트공인듯합니다. 게다가 페르디난드2세는 이때 이미 포르투갈의 국왕으로 부인과 공동통치했기에 아마 대부모였다면 king으로 표기되었을듯합니다. (코하리가문의 상속녀와 결혼해서 아들들이 포르투갈 여왕의 남편, 불가리아 국왕의 아버지가 되는 그분이십니다.)
4.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부인 : 뷔르템베르크의 마리,앨버트공의 새어머니, 켄트공작부인이 대리
5.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작부인 : 헤센-카셀의 카롤리네, 앨버트공의 외할머니,앨버트공의 어머니 루이제의 새어머니, 캠브리지 공작부인이 대리
6. 소피아 공주 : 빅토리아 여왕의 고모,조지3세의 딸, 캠브리지의 아우구스타 공주가 대리
알렉산드라는 매우 아름다웠는데, 알버트공은 알렉산드라의 미모에 매우 흡족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라가 영국의 왕위계승자와 결혼하면서 영국 또한 골치아픈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분쟁에 어느정도 끼이게 됩니다. =-=;;;
다정 다감했던 알렉산드라는 남편의 애정을 원했지만, 에드워드7세는 늘 정부가 있었죠. 알렉산드라는 결국 남편의 정부들을 묵인해주는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 아이들에 대해서 매우 강한 독점욕을 보였고, 지은죄가 있는 에드워드7세는 부인이 하자는대로 할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흑...대부모 명단이 없어요...ㅠ.ㅠ
알렉산드라 왕비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Queen Alexandra
부모 :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의 크리스티안 공과 헤센-카셀의 루이제공녀
(후에 덴마크의 크리스티안9세와 루이세 왕비)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는 덴마크 왕가의 분가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뤽스부르크가문보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아우구스텐부르크가문이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었죠. 문제는 아우구스텐부르크 공작이 덴마크가 아니라 독일을 지지했고, 독립하려했기에 결국 덴마크 입장에서는 아우구스텐부르크 공작은 반역자였죠. 또 헤센-카셀가문은 대대로 덴마크 공주들과 결혼했고 이때문에 덴마크 왕위에 가장 가까운 가문이었습니다만 문제는 독일인이라는것이었죠.
결국 덴마크인들은 헤센-카셀의 공녀와 결혼한 글뤽스부르크의 크리스티안공을 선택했습니다.
출생일 : 1844년 12월 1일 the Gûle Palais (Yellow Palace)
세례식 : the Gûle Palais (Yellow Palace)에서 이뤄짐
세례명 : 알렉산드라 카롤리네 마리 샤를로테 루이세 율리아
알렉산드라라는 이름은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외숙모인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의 이름을 딴것이라고 합니다.
대부모 : 정보 없음
자료출처
1.Yvonne's Royalty Home Page
http://mypage.uniserve.ca/~canyon/index.htm
2.Queen Alexandra : a study of roaylty (W.R.H. Throwbridge)
3.Alice: Grand Duchess of Hesse,Princess of Great Britain and Ireland-Biographical sketch and Letther
(앨리스 공주가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내는 편지 모음)
4.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피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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