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글이 이글이 되는군요..ㅠ.ㅠ
원래는 이글이 아니라 '앨리스'라는 이름의 공주님에 대해서 쓸려고 했는데...-0-;;어쩌다보니 이렇군요.
(자료를 덜찾아서 말입니다...아하하..)
빅토리아 여왕의 넷째아들은 레오폴드로 잘 알려진대로 혈우병환자였습니다. 혈우병이라는것이 인식되기 시작한것이 1800년대 초라니까 나름 왕가였기에 병에 대한 인식이 더 빨랐다고 생각됩니다.
레오폴드는 빅토리아 여왕이 좋아한 외숙인 벨기에의 레오폴드1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입니다. 여왕을 지지해줬고 알버트공과 결혼하는데 적극적이었던 그분이시죠. (정작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별관심없으셨다는 그분이시죠)
레오폴드는 혈우병 환자였기에 어머니 곁에서 거의 갇혀지냈다고합니다. 조그만한 사고도 죽을수 있었기에 여왕은 세심하게 신경을 쓴것이죠. 그는 옥스퍼드를 다녔고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레오폴드는 누나인 루이즈 공주가 총독인 남편을 따라 가있던 캐나다로 여행을 갑니다. 하지만 여행중 아팠고 이에 루이즈는 레오폴드를 데리고 영국으로 되돌아가죠.
그후 그는 어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개인비서로 일하면서 어머니 곁에 있었다고 합니다.
병때문에 자유로운 생활을 할수 없었던 레오폴드에게 결혼은 어머니에게서 독립할수 있는 기회였죠.(..동생 베아트리스는 결혼후에도 붙잡혀있습니다만..쿨럭..) 하지만 그에게 적합한 후보는 많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혈우병을 앓고 있었고 이때문에 많은 왕족들은 그와의 결혼을 회피하고 있었습니다.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죽는수도 있을테니까요)
여러명이 거론되었으나 빅토리아 여왕은 발덱-피르몬트의 헬레나를 추천합니다. 발덱-피르몬트는 아주 작은 왕가였지만 헬레나의 형제들은 모두 교육을 잘 받았고 헬레나는 매우 상냥한 성품이었다고 합니다.헬레나를 비롯한 발덱-피르몬트 자매들은 네덜란드의 왕비감으로 생각되었는데 헬레나는 레오폴드의 신부 후보였기에 언니인 엠마가 왕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둘은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첫째딸 앨리스가 태어나고 헬레나가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때 의사들이 레오폴드의 건강을 위해 따뜻한 프랑스 남부 지방에 머무는것이 더낫다고 충고 했다고 합니다. 이에 레오폴드는 칸으로 갔다고 합니다. 헬레나도 남편을 따라가고 싶었으나 임신중이었기에 바로 따라가지 못했다고합니다.
1884년 레오폴드는 계단에서 실족한후 상처를 입고 다음날 사망했다고 합니다.
헬레나는 아들 칼 에두와르드가 코부르크 공작이 되었을때 따라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헬레나는 남편 레오폴드를 추억하면서 칸으로 여행을 갔다가 아들을 만나러 가는길에 오스트리아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위키에 헬레나의 재혼에 대한 항목이 있는데 이것은 아마 오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1901년 뉴욕타임즈에 헬레나가 5대 로즈버리 백작과 재혼하려한다는 기사가 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로즈버리 백작은 일반적으로 토리아(에드워드7세의 둘째딸)와 관계가 있다고 여겨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기자가 Princess를 헷갈렸지 않나..라고 추측한다고 합니다.
레오폴드, 알바니 공작
The Prince Leopold, Duke of Albany
(Leopold George Duncan Albert; 7 April 1853 – 28 March 1884)
발덱-피르몬트의 헬레나, 알바니 공작부인
Princess Helena of Waldeck and Pyrmont; later Duchess of Albany
(Helena Frederica Augusta; 17 February 1861 – 1 September 1922)
둘은 일남 일녀가 태어났고 아들 칼 에두와르드는 유복자로 태어났습니다.
레오폴드의 첫째딸은 앨리스입니다. 세례명은 앨리스 메리 빅토리아 어거스타 폴린입니다. 알바니의 앨리스라고 불렸던 그녀는 태어난지 1년 조금더 지나서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어머니와 가까웠던 그녀는 외가 식구들과도 가까웠고 이모 엠마 왕비와 그딸인 빌헤미네 여왕과도 가까웠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그녀를 "또다른앨리스"라고 부르면서 다른 친척인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를 좀더 편애했다고 합니다.(..조지5세의 결혼식때 들러리로 앨리스를 지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앨리스가 초대장을 받았는데 빅토리아 여왕은 조지5세에게 알바니의 앨리스가 아니라 여왕의 증손녀인 바텐베르크의 앨리스-필립공의 어머니-를 들러리로 부르라고 했다고 합니다. 알바니의 앨리스는 초대받았다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고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보다 생일이 같지만 두살많았던 이소녀는 그일에 대해 매우 슬퍼했다고합니다.) 앨리스는 메리 왕비의 동생인 테크의 알렉산더공과 결혼했습니다. 아버지가 혈우병 환자였기에 그녀는 혈우병 보인자였죠. 두아들과 딸이 있는데 일찍죽은 작은 아들과 큰아들 모두 혈우병환자였습니다. 1차 대전중 독일친척들이 성을 바꿀때 그녀의 남편도 독일 왕족 지위를 버리고 영국의 애쓰론 백작이됩니다. 앨리스는 영국 공주였기에 독일식 타이틀만 버렸습니다. 반면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이던 동생 칼 에두와르드는 영국 타이틀을 모두 빼앗겼다고 합니다.
총독직을 수행하는 남편을 따라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캐나다에서 공적임무를 수행했다고 합니다. 2차대전이 끝날무렵 동생이 전범으로 미군에 체포되자 남편을 통해 그를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고 합니다.
영국 왕실에서 태어난 왕족중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알바니의 앨리스, 앨리스 공주, 애쓰론 백작부인
Princess Alice, Countess of Athlone née Princess Alice of Albany
(Alice Mary Victoria Augusta Pauline; 25 February 1883 – 3 January 1981)
테크의 알렉산더, 후에 애쓰론 백작 알렉산더 캠브리지경
Prince Alexander of Teck,
Major General Alexander Cambridge, 1st Earl of Athlone KG GCB GCMG GCVO DSO PC FRS
(Alexander Augustus Frederick William Alfred George; 14 April 1874–16 January 1957)
앨리스와 알렉산더
레오폴드의 큰아들은 칼 에두와르드입니다. 세례명은 레오폴드 찰스 에드워드 조지 앨버트였습니다.그는 유복자로 태어났고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이 됩니다. 그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이 된것에는 빅토리아 여왕과 어머니 헬레나 공작부인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공작령을 왕가에서 계승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합니다. 어머니 헬레나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좋은 사람이되라'라고 끊임없이 강조했다고 합니다.
코부르크에서 그는 빌헤름2세를 지지하던 호엔로에-랑겐부르크공의 영향력하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빅토리아 아델하이트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앙9세의 형의 증손녀였죠.
1차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독일측을 지지했고 영국에 자신의 모든 훈장을 반납합니다. 이에 조지5세는 독일 친척들의 모든 훈장을 삭제해버리고 독일친척들의 영국 왕족 지위를 박탈해버립니다.(..후에 하노버의 공작가에서는 하노버의 소피아 선제후비의 모든 후손들에 대한 영국 시민권 인정의 조례를 들어 영국 시민권을 얻었다고 합니다.--;;)
1차대전후 그의 삶은 어려웠는데 코부르크에서는 공작지위에서 퇴위해야했으며 고향인 영국에서는 배신자로 낙인찍혀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확산에 대한 공포도 있었죠. 결국 이런 요소들 때문에 그는 수많은 독일 왕족들처럼 나치를 지지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가장 열성적인 나치 지지 왕족들중 하나가 되었는데 딸 시빌라가 스웨덴의 왕위계승자인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와 결혼할때 그 예식을 나치식으로 치룰정도였습니다.(이때문에 스웨덴 왕실에서는 참석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구스타프 아돌프와 할아버지 구스타프5세는 친 나치 지지자였습니다.) 2차대전때 그는 독일 적십자사의 대표가 되었는데, 독일 적십자사는 유대인들을 효율적으로 수송하기 위한 기관이라는 평가가 있을정도였습니다. 누나 앨리스의 노력에도 그는 군사재판을 받았으며 막대한 벌금을 물었고 그의 영지였던 코부르크는 소련의 장악으로 그는 모든 재산을 잃고 파산을 했습니다. 그는 남은 삶을 곤궁속에서 살았고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힌채 죽었다고 합니다.(....별로 불쌍하지 않습니다..--;;곤궁하다고 해도 딸이 스웨덴 왕자비였고 손자가 스웨덴 왕위계승자였으며 누나는 영국의 왕족으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으니...-0- 굶기야 했겠습니까..헬레나 공작부인이 하늘에서 슬퍼했겠군요.... 아들에게 늘 아버지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마라라고 했건만..)
칼 에두와르드,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Carl Eduard, Duke of Saxe-Coburg and Gotha
(Leopold Charles Edward George Albert; 19 July 1884 – 6 March 1954)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빅토리아 아델하이트
Prinzessin Viktoria Adelheid von Schleswig-Holstein-Sonderburg-Glücksburg
(Viktoria Adelheid Helena Louise Maria Frederike 31 December 1885 – 3 October 1970)
가족사진
사진&자료출처
위키피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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