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벌써 자식들이 얼마 안남았군요.
넷째딸 루이즈는 자식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셋째아들 아서의 자녀들에 대해서 이야기할까합니다.
코넛공작 아서는 빅토리아 여왕의 사랑을 무척이나 많이 받은 아들이었습니다. 여왕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었죠. 그는 아버지 알버트공을 무척이나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생김새 뿐만아니라 의무를 중요시하고 가정 생활에 충실했던 알버트공의 성격까지 닮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왕이 더욱더 아꼈다고 합니다.아서라는 이름은 웰링턴 공작의 아서 웰즐리의 이름을따서 지었는데 아서는 웰링턴 공작과 생일이 같았다고 합니다.
그는 영국 육군에 관심이 많았고 평생에 걸쳐 군에 복무합니다. 그는 인도,캐나다,남아프리카공화국,아일랜드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후에 아일랜드의 총 사령관, 캐나다의 총독등 요직에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결혼할 나이가 되자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신부감을 물색했다고 합니다. 유력후보가 둘이었는데 덴마크의 티라와 하노버의 마리였다고 합니다. 형수 알렉산드라의 동생이었던 티라는 아서에게 반해있었지만 골치아픈 슐레스비히-홀슈타인문제에 더이상 엮이는것을 원치않았던 여왕이 반대를 합니다. 아서는 마리와 결혼하기를 원했지만 마리측에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또 다른 후보였던 프로이센의 루이제 마르가레테와 결혼합니다.
프로이센의 루이즈의 아버지와 빅키의 남편은 사촌간이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부인이 딸만 낳는다고 아내를 때려서 귀를 멀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처음에 며느리가 미인이 아닌것에 그리 탐탁치 않아 했지만 상냥한 성품에 마음을 바꿨다고 합니다.
둘은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부부로 알려져있습니다.
아서는 매우 장수해서 92살에 사망했죠. 아서의 조카인 헤센의 빅토리아는 어느날 손녀인 그리스의 공주들을 아서에게 데리고 가서 소개시켜줬다고 합니다. 그때 아서는 그 아이들을 보고 "너희들이 나를 먼 조상으로 만드는구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공주들중 한명인 세실의 아들 루드비히가 태어났을때도 아서는 살아있었죠. (사실 아서는 루드비히보다도 더 오래살았습니다.)
코넛공작 아서
The Prince Arthur, Duke of Connaught and Strathearn
(Arthur William Patrick Albert; 1 May 1850 – 16 January 1942)
드 라즐로 그림입니다.
프로이센의 루이제 마르가레테,후에 코넛공작부인
Princess Louise Margareteof Prussia later Duchess of Connaught and Strathearn
(Louise Margaret Alexandra Victoria Agnes 25 July 1860 – 14 July 1917)
코넛 공작 부부와 세 아이들
패트리샤..어릴때는 예뻣네요..ㅠ.ㅠ
아서의 아이들은 1남2녀입니다.
아서의 첫째딸은 마거릿입니다. 세례명은 마거릿 빅토리아 샤를로트 아우구스타 노라이고 애칭은 데이지였습니다. 그녀는 매우 우아한 공주님으로 알려져있죠. 마거릿의 백부인 에드워드7세는 조카들을 외국의 왕위계승자와 결혼시키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의 두 딸은 각각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왕실에 선을 보게 하죠. 이에 코넛공작 부부는 딸들을 데리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궁정을 방문한후 이집트로 떠나는 여행을 합니다. 포르투갈에서 마거릿에 대해서 긍정적 반응이 있었습니다만 마거릿의 운명은 포르투갈에 있지 않았죠. 이집트 여행에서 마거릿은 자신보다 3달 늦게 태어난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를 만납니다. 그는 스웨덴의 왕태자의 큰아들이었죠. 둘은 첫눈에 반했고 코넛공작부부는 둘의 결혼에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마거릿은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왕자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스웨덴으로 갑니다. 그리고 시할아버지 생전에 다음 왕위계승자가 될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를 낳습니다. 시아버지 구스타프5세가 즉위하고 그녀 역시 스웨덴의 왕태자비가 됩니다. 시어머니인 바덴의 빅토리아와는 편한 사이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시어머니는 친 독일 성향이 강했고 반면 마거릿은 영국 공주였죠. 하지만 상냥하고 사랑받는 인물이었던 마거릿은 잘 극복했다고 합니다. 1차대전이 일어났을때는 스웨덴은 중립국이었기에 양진영으로 나뉘어져있던 친척들간의 소식을 서로 전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마거릿과 구스타프 아돌프는 무척이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마거릿이 6번째 아이를 임신한 중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때 나이가 38살이었다고 합니다. 마거릿의 남편인 구스타프 아돌프는 아내가 죽은지 3년후에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과 재혼하죠.
마거릿은 스웨덴 국왕님의 할머니일뿐만 아니라 덴마크 여왕님의 외할머니시기도 합니다. 덴마크의 잉리드 왕비가 마거릿의 고명딸이죠. 잉리드는 사랑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큰딸에게 어머니 이름 마거릿(마르가레테)와 애칭 데이지를 그대로 주었다고합니다.
코넛의 마거릿, 후에 스웨덴의 왕태자비
Princess Margaret of Connaught later Crown Princess of Sweden;
(Margaret Victoria Charlotte Augusta Norah; 15 January 1882 – 1 May 1920)
스웨덴의 구스타프6세 아돌프
Gustav VI Adolf of Sweden
(Oskar Fredrik Wilhelm Olaf Gustaf Adolf) (11 November 1882 – 15 September 1973)
결혼직후던가 약혼직후던가 하여튼 그때의 구스타프와 마거릿
가족사진(넷째인 벨틸이 태어났을때)
구스타프6세 아돌프와 그의 두번째 부인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
(루이즈 왕비는 마거릿의 사촌인 헤센의 빅토리아의 딸이죠.)
아서의 큰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이름의 아서입니다. 세례명은 아서 프레드릭 패트릭 앨버트입니다. 그는 이튼학교에 처음으로 다닌 왕족이었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육군에서 복무했습니다. 그리고 1차대전동안 조지5세의 자녀들이 군임무를 수행하기 어린 나이였기에 대신 그가 여러가지 공적 임무를 수행했다고 합니다.(아마도 전쟁터를 방문하고 부상병들을 위문하고 전선에서 같이 있는등등의 일이었겠죠.)
그는 자신의 사촌인 프린세스 로열 루이즈의 큰딸인 파이프 여공작 알렉산드라와 결혼했습니다. 알렉산드라 역시 남편을 따라 여러곳을 다녔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지역 병원에서 일해서 왕실 훈장을 받았다고 합니다.(앨리스왕자비의 책에 보면 앨리스가 발칸전쟁때 병사들을 위해 일을 해서 로열 레드크로스인가 그걸 받았다고 나올때 다른 한사람이 바로 알렉산드라라고 나오죠.)
그는 암으로 아버지 보다 일찍 사망했습니다. 그가 죽은후 코넛 공작은 그가 언제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고 회상했다고 합니다.
코넛의 아서
Prince Arthur of Connaught
(Arthur Frederick Patrick Albert; 13 January 1883 - 12 September 1938)
가터 훈장의 로브를 입은 모습입니다.
파이프 여공작 알렉산드라, 코넛의 왕자비
Princess Alexandra, Duchess of Fife ,later Princess Arthur of Connaught
(Alexandra Victoria Alberta Edwina Louise; née Duff; ; 17 May 1891 – 26 February 1959)
둘의 결혼사진
알렉산드라는 동생인 모드보다 더 예쁘신듯....
아서의 막내딸을 패트리샤입니다. 세례명은 빅토리아 패트리샤 헬레나 엘리자베스로 애칭은 패시였습니다. 패트리샤는 아버지를 따라 인도와 캐나다를 갔고(언니 마거릿도 인도에는 간듯한데..ㅠ.ㅠ 기억이..) 캐나다에 갔을때는 매우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이름을 딴 연대에 명예연대장이 될정도였습니다. 에드워드7세의 조카들 왕가로 시집보내기..작전에 역시 말려들뻔한 패트리샤였지만 그녀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죠. 일단 포르투갈 왕은 실패했고 스페인왕은 다른 조카를 시집보냈던 에드워드7세는 패트리샤를 자신의 처조카이자 러시아의 니콜라이2세의 동생이던 미하일 대공과의 결혼을 추진하죠. 하지만 패트리샤는 이것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왕족이 아닌 일반 사관이던 알렉산더 램지와 결혼하죠. 이 결혼으로 그녀는 자신의 왕족 지위를 버리고 레이디 패트리샤 램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왕족이 아닌것은 아니었죠. 수많은 왕실 행사에 참석했고 왕족으로써의 임무도 성실히 수행했다고 합니다.
코넛의 패트리샤, 후에 레이디 패트리샤 램지
Princess Patricia of Connaught later Lady Patricia Ramsay
(Victoria Patricia Helena Elizabeth; ; 17 March 1886 – 12 January 1974)
패트리샤는 어머니 코넛공작부인을 빼 닮는 바람에 그리 예쁜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진발 잘받는 옆모습을 많이 찍었죠. 옆모습은 언니보다 예쁩니다.--;;;
알렉산더 램지경
Admiral the Honourable Sir Alexander Robert Maule Ramsay GCVO KCB DSO,
(May 29, 1881 – October 8, 1972)
레이디 패트리샤 램지라고 되어있던데..아마 가족과 함께 가는듯합니다
가운데 여자가 패트리샤이고 왼쪽이 아버지인 코넛공작입니다.
아이와 그 옆의 남자를 잘 모르겠는데 손 꼭 잡고가는것으로봐서는 아들과 남편일듯합니다.
사진&그림출처
위키피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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