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막내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여왕님 자식복은 있으셨던듯해요.
자녀들을 보면 사산하거나 어릴때 죽은 아이가 하나씩은 꼭 있거든요.
그런데 여왕님은 자녀들 모두가 성인으로 성장했고 모두 결혼해서 가정을 가진뒤에 죽었잖아요.
몇몇은 여왕님보다 일찍 죽기는 했지만 병으로 갑자기 죽었던 앨리스 대공비와 혈우병이었던 레오폴드를 제외하고는 전부 오래 살았고 장수한 여왕님보다 일찍 죽은 자녀는 앨리스 대공비와 레오폴드 그리고 앨프러드밖에 없었으니까요.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은 베아트리스입니다. 여왕의 남편 알버트공이 사망했을때 베아트리스의 나이는 겨우 5살이 안되었습니다, 여왕은 이 어린 막내딸을 베이비라고 부르면서 매우 불쌍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였을뿐만 아니라 빅토리아 여왕자신도 아기일때 아버지를 잃었기에 왠지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다고 생각했겠죠.
알버트공의 흉상앞에 모인 빅토리아 여왕의 다섯딸들
제일 어린 소녀가 베아트리스입니다.
왼쪽에서 앨리스,헬레나,베아트리스,빅토리아,루이즈
빅토리아 여왕은 알버트공의 사망이후 딸들을 떠나보내는것을 극히 싫어했는데 특히 베아트리스의 결혼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유는 베아트리스 공주가 막내이기도 했지만 베아트리스의 바로위의 언니인 루이즈가 결혼할때만 해도 여왕곁에는 베아트리스, 레오폴드 그리고 존 브라운이 있었죠. 하지만 베아트리스가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때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레오폴드와 존 브라운이 연이어 사망했었죠.
빅토리아 여왕과 베아트리스 공주
베아트리스의 남편감으로 가장 유력했었던 사람은 나폴레옹3세의 아들인 나폴레옹 외젠이었다고 합니다. 베아트리스는 어머니 곁에 있어야만했고 영국에 망명중인 왕족이었던 그는 베아트리스에게 잘 어울리는 상대였죠. 게다가 빅토리아 여왕과 유제니 황후는 매우 친한 사이였고 베아트리스 역시 유제니 황후와 깊은우정을 나눴다고 합니다. 하지만 외젠은 전쟁중 사망했습니다. 그후 형부인 헤센의 루드비히 대공과의 재혼이야기도 오갔습니다만 법률적인 문제때문에 거부되었다고합니다.이후 베아트리스의 남편감으로는 일관되게 바텐베르크가문의 남자들이 지목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 루드비히가 베아트리스 공주의 남편감으로 여겨졌으나 릴리 랭트리와의 스캔들로 해외로 나가면서 없었던 일이 되죠. (그는 여왕의 손녀인 헤센의 빅토리아와 결혼하죠.) 두번째는 루드비히의 동생인 알렉산더를 고려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정적으로 불가리아의 통차지가 되면서 결혼 한다면 불가리아로 가야했기에 없었던 일이 됩니다. (하지만 여왕은 이 남정네를 놓치기 싫었던지 손녀인 프로이센의 빅토리아와 엮어주려고 힘쓰셨죠.) 이런 상황에서 베아트리스는 조카 빅토리아의 결혼식에서 다시 바텐베르크가문의 남자인 루드비히와 알렉산더의 동생인 하인리히를 만났다고 합니다. 여왕은 그 결혼을 처음에는 내켜하지 않았지만 베아트리스는 하인리히와 사랑에 빠졌죠. 결국 여왕은 하인리히에게 국적과 직업 가족을 모두 버리고 여왕곁에서 산다면 결혼을 허락한다고 했습니다. (언니인 헬레나와 같은 조건이었죠.) 결국 하인리히도 여왕의 곁에서 살았습니다.
형과 달리 프로이센의 육군이었던 헨리(하인리히의 영어식이름)는 헤센 육군에서 복무했습니다. 하지만 베아트리스 공주와의 결혼으로 그의 경력은 사라졌고 여왕과 부인 곁에서 살아가야했죠. 이것은 그에게 매우 지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여러가지 일을 찾았지만 여왕곁을 떠날수는 없었죠. 또 그는 자신의 처형인 루이즈와 우정을 쌓았는데 당시에는 용납될수 없는일로 특히 부인인 베아트리스는 언니와 남편사이를 절대 이해할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헨리에게는 일을 찾을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옵니다. 보어전쟁이 장기화함에 따라 그는 왕족의 임무로 그 전쟁에 참여합니다. 다시 경력을 쌓을 좋은 기회였지만 그 기회를 얻기도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는 배에서 말라리아로 사망합니다. 그의 유해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고 웨이트섬에 묻혔습니다.
헨리가 죽은후 여왕은 헨리의 형인 루이스가 좀더 자신곁에 있길 바랬다고합니다.--;;그래서 여왕의 곁보다는 활발한 해군 활동을 하던 루이스는 매년 봄에 여왕의 휴가에 동행해야만했죠.
헨리가 죽은후 베아트리스는 어머니 곁에서 여전히 생활합니다. 여왕의 개인비서로 일을했죠. 또 남편이 죽은후 웨이트섬의 행정관일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죽은후 그녀는 오빠 에드워드7세와 사이가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개인 기록을 편집해서 출판을 했죠. 웨이트섬과 캔징턴궁을 오가며 살았고 어머니와 그 시대에 대한 책들을 썼다고 합니다.
베아트리스 공주, 한때 바텐베르크 공비
Princess Beatrice of the United Kingdom, later Princess Henry of Battenberg
(Beatrice Mary Victoria Feodore; 14 April 1857 – 26 October 1944)
베아트리스 공주도 어리고 살안쪘을때는 한미모하셨습니다.
여왕의 다른 딸들처럼 나이들면서 뚱뚱해지고 점점 남자같은 얼굴로 바뀌셔서 그렇죠.--;;;
바텐베르크의 하인리히
Colonel Prince Henry of Battenberg
( Heinrich Moritz; 5 October 1858 – 20 January 1896)
둘은 3남1녀를 낳았습니다.
베아트리스와 그녀의 자녀들
앉아있는 두사람이 에나와 알렉산더
왼쪽에서 모리츠,베아트리스,레오폴드
베아트리스의 큰아들은 알렉산더입니다.세례명은 알렉산더 앨버트이고(친할아버지외할아버지 이름이군요) 애칭은 드리노였습니다. 그 역시 1차대전때 성을 바꿀때 백부와 마찬가지로 마운트배튼이라는 성으로 바꾸고 1대 카리브룩의 후작이 됩니다. 그는 이에 대해 매우 분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사촌인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은 그런 그에 대해 재미있게 생각하죠) 그는 영국 해군에서 복무했고 1차대전때도 참전했습니다만 부상을 입고 귀환하죠.
전쟁이 끝난후 은행원, 상점경영등의 일을 했다고 합니다. 늙은 그에 대해서는 외롭고 괴팍한 늙은이..정도로 묘사하더군요.--;; 그는 자신의 왕족지위에 대한 애착이 무척이나 심했다고 알려져있고 가문의 문장 때문에 사촌인 루이스 마운트배튼경과 법적분쟁을 벌일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2대 Londesborough 백작의 딸인 이렌느 데니슨과 결혼해서 딸 이리스가 있습니다.
바텐베르크의 알렉산더, 후에 카리브룩의 후작 알렉산더 마운트배튼경
Prince Alexander of Battenberg
Alexander Mountbatten, 1st Marquess of Carisbrooke, GCB, GCVO
(Alexander Albert Mountbatten; 23 November 1886 – 23 February 1960)
레이디 이렌느 데니슨, 카리브룩의 후작부인
Lady Irene Denison (4 July 1890 – 16 July 1956)
베아트리스의 큰 딸은 에나입니다. 세례명은 빅토리아 유제니 줄리아 에나 이고 애칭은 에나였습니다. 그녀의 이름중 빅토리아와 줄리아는 각각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의 이름을따왔고 유제니는 그녀의 대모인 나폴레옹3세의 황후인 유제니 황후의 이름에서 따왔죠. 그리고 에나라는 이름은 스코틀랜드식 이름으로 따왔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빅토리아 여왕과 보냈습니다. 조카들을 유럽의 왕위계승자와 결혼시키려던 에드워드7세의 계획에 따라 영국을 방문한 스페인의 알폰소13세는 에드워드7세의 조카들중 에나를 보고 반합니다. (원래는 패트리샤를 소개시킬려고했었죠.) 에나의 낮은 신분때문에 반대가 있긴 했지만 에드워드7세는 왕비가 될 조카를 위해 HRH 타이틀을 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나는 알폰소13세와 결혼하죠. 결혼식이 있던 날 폭탄테러가 일어나서 왕과 왕비는 겨우 살아납니다.( 둘의 거의 바로 앞에서 폭탄이 터졌는데 에나가 결혼한 성당을 보기 위해 뒤를 돌아보고 있었고 왕은 그런 그녀를 보느라 무사했다고합니다.)
어수선한 결혼식이었지만 둘의 아이가 태어나기전까지는 행복한 결혼이었습니다.첫째아이가 혈우병환자로 태어나자 알폰소13세는 자신의 왕위계승자가 아내 가계의 병에 걸린것을 절대 받아들일수 없었고 그녀를 용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알면서 결혼해놓고는..-0-;;;) 두번째 아이는 건강하고 아버지 알폰소13세를 많이 닮았지만 4살때 병으로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말도 거의 못하게 되었습니다. 두딸은 건강하게 태어났고 아들한명도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막내아들마저 혈우병인데 알폰소13세는 충격을 받았고 아내와의 사이는 더욱더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많은 사람들과 연애사건을 일으켰고 에나는 사회사업에 전념했다고 합니다.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고 스페인 왕가가 망명해야했을때 에나와 알폰소는 처음에는 같이 지냈습니다. 하지만 Duke of Lecera와 에나가 사랑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알폰소는 매우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고 에나는 공작 부부와 매우 가까운 친구사이였다고합니다. 알폰소가 그와 자신중 택하라고 하자 에나는 "나는 그들을 택하겠어요. 그리고 당신의 지긋지긋한 얼굴을 다시는 보지 않겠어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알폰소에게 이것은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로 에나는 이전에 한번도 그런말을 한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둘은 절대 같이 지낸적이 없다고 합니다.
알폰소13세는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삶과 자신의 왕위를 잃은것이 아내의 탓이라고 비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내가 가까이 오는것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에나는 남편의 임종을 멀리서 지켜봐야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은후 스페인 왕가 중심은 에나가 되었고 자녀와 손자손녀들이 정기적으로 그녀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에나는 자신의 손자인 후안 카를로스가 스페인의 왕위계승자로 지목된것을 알았고 그가 그리스의 소피아 공주와 결혼할때 그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후안 카를로스와 소피아의 아들이 태어났을때 세례식에 에나는 참석하고 싶어했지만 많은 문제가 있었죠. 결국 에나는 스페인의 왕비가 아니라 일반인으로 스페인을 방문하는것을 허락 받았다고 합니다. 에나가 스페인을 떠날때 오만명의 군중이 떠나는 왕비를 환송하기 위해 나왔고 에나는 눈물지으면서 다시는 밟지 못할 나라를 떠났다고 합니다.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제니, 스페인의 왕비
Princess Victoria Eugenie of Battenberg , queen consort of King Alfonso XIII of Spain
(Victoria Eugenie Julia Ena; 24 October 1887 - 15 April 1969)
스페인의 알폰소 13세
Alfonso XIII of Spain
(Alfonso León Fernando Maria Jaime Isidro Pascual Antonio de Borbon y Austria-Lorena)
(May 17, 1886 – February 28, 1941)
유럽의 왕과 왕비들
서있는 세사람은 영국의 에드워드7세,독일의 빌헤름2세,영국의 알렉산드라왕비
앉아있는 사람은 왼쪽에서 에나왕비, 독일의 빅토리아 아우구스타황후, 포르투갈의 왕비(...오를레앙가 사람인데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요..ㅠ.ㅠ). 스페인의 알폰소13세, 노르웨이의 모드 왕비
베아트리스의 둘째 아들은 레오폴드입니다. 세례명은 레오폴드 아서 루이스 입니다. 그는 가계의 병인 혈우병 환자였습니다. 그는 매우 약했기에 특별히 보살펴졌다고 합니다. 그는 어릴때부터 음악에 재능이 있었고 바이올린을 켰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죽어갈때 그는 여왕을 위해 바이올린을 켰다고 합니다. 1차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군에 입대하지만 혈우병 환자였기에 후방에서 있었습니다. 1차대전때 가문의 성을 바꿀때 그도 레오폴드 마운트배튼경이 되었습니다. 그는 교통사고로 인한 상처때문에 사망했습니다.
레오폴드 마운트배튼경
Lord Leopold Mountbatten
(Leopold Arthur Lewis; 21 May 1889 – 23 April 1922)
베아트리스의 막내 아들은 모리스 입니다. 세례명은 모리스 빅토르 도날드입니다. 그는 매우 활기차고 친절한 소년이었습니다. 9살때 사촌인 크리스티안공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망하자 이에 매우 슬퍼했고 그의 동생인 헬레나 빅토리아에게 가서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커즌 토라, 제가 충분히 자라면 60연대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는것을 아시면 훨씬 더 위로가 될꺼예요.'(저기 60연대가 크리스티안공이 복무하던 그 연대입니다.)
그는 매우 의무에 충실한 젊은이로 성장했다. 9살때 했던 약속대로 군에 들어갔고 1차 대전이 일어나자 전방으로 배치되었다. 그리고 벨기에에서 공격하던중 부상을 입고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는 종종 혈우병 환자로 오인 받으나 어릴때 매우 건강했고 전선에 참여한것을 보면 혈우병환자는 아니었다 아마도 그가 전쟁때입은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고 죽은것에 이런 오해가 생긴것일것이다.
당시 관례는 전사한 사람은 그곳에 묻히는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여왕의 손자이자 공주의 아들이었기에 사람들은 그의 유해를 어머니 베아트리스에게 돌려주려했다. 하지만 베아트리스 공주는 이를 거절하고 아들을 전사한곳에 묻었다고 합니다.
바텐베르크의 모리스
Prince Maurice of Battenberg
(Maurice Victor Donald; 3 October 1891 – 27 October 1914)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모리스가 그렇게 죽지만 않았어도 베아트리스공주의 가계도 루드비히의 가계처럼 계속 영국의 정치나 군에 이름을 남겼을텐데라는 생각이 든답니다. 그는 형인 드리노와는 다른 인물인것 같으니까요.)
사진출처
위키피디어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Queen Victoria granmother of Europe
http://www.geocities.com/jesusib/QueenVictori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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