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

캐서린 스윈포드(캐서린 드 로에):랭카스터 공작부인

엘아라 2009. 4. 24. 23:24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캐서린 스윈포드는 중세시대에 매우 이채로운 여성이었습니다.

캐서린 스윈포드의 언니인 필리파는 에드워드3세의 왕비인 에노의 필리파의 시녀였죠. 그리고 그녀는 "캔터베리이야기"로 유명한 초서와 결혼했습니다. 초서는 랭카스터 공작의 부인이자 "White lady"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정도로 유명했던 랭카스터가의 상속녀 블랜치(블랑쉬)의 이야기도 기록하고 있다고 하죠.

 

캐서린 스윈포드가 유명한 이유는 그녀는 랭카스터가의 일족의 할머니일뿐만아니라 딸을 통해서 요크가 사람들의 할머니도 되죠. 그리고 장미전쟁을 종결시킨 헨리7세는 어머니로부터 왕위계승권을 이어받았는데, 그 어머니가 바로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로 캐서린 스윈포드의 증손녀입니다. 뿐만아니라 헨리7세의 부인이 되는 요크의 엘리자베스의 할머니인 요크 공작부인 시슬리는 바로 캐서린 스윈포드의 외손녀입니다.

 

하지만 캐서린 스윈포드는 중세 여성으로 기록이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 하네요.^^*

 

 

캐서린 드 로에

캐서린 스윈포드

후에 랭카스터 공작부인

 Katherine Swynford (also spelled Synford),

née (de) Roet (also spelled (de) Rouet or (de) Roelt

(25 November 1350 – 10 May 1403)

캐서린 스윈포드의 문장입니다.로에는 옛 프랑스어로 작은 바퀴라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캐서린의 문장에는 바퀴가그려져있다고 합니다.

 

캐서린 스윈포드는 원래 에노의 기사인 드 로에 경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에드워드3세의 왕비인 에노의 필리파를 수행해서 영국에 온 기사라고 합니다. 언니인 필리파는 왕비의 시녀로 일했죠.

16살 되던해 캐서린은 랭카스터가문의 가신이자 링컨셔의 지주였던 휴 스윈포드경과 결혼합니다. 둘사이에는 토마스 스윈포드와 마거릿 스윈포드가 태어납니다.( 예전에 읽은 소설에서 토마스 스윈포드는 후에 캐서린의 의붓아들인 헨리4세가 즉위하고 리처드2세가 유폐되었을때 리처드 2세를 감시했다..--;;;라고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캐서린은 랭카스터공작의 첫번째 부인인 블랑쉬가 살아있을때, 랭카스터 공작의 궁정에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랭카스터 공작부인은 자신이 태어났던 링컨셔 근처의 성에서 주로 지냈다고 합니다.)

 

랭카스터 공작부인 블랜치(블랑쉬) 

 

랭카스터 공작인 존오브콘트는 에드워드3세의 셋째아들이긴했지만, 블랑쉬와의 결혼으로 매우 부유하게 됩니다. 블랑쉬는 랭카스터 가문의 유일한 상속녀로 엄청난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랭카스터 공작부부는 매우 행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369년 랭카스터 공작부인은 사망했고, 랭카스터 공작은 큰 슬픔에 빠졌다고 합니다

 

랭카스터 공작 존오브콘트

그는 유럽왕가의 할아버지라고 할수있습니다.

딸인 필리파는 포르투갈의 왕비, 다른딸인 캐서린은 카스틸랴의 왕비가 되었고, 둘은 카스틸랴의 이사벨라 여왕의 조상으로 결국 합스부르크가에 스페인영토를 가져다준 후아나 라 로카의 조상이 되죠.

또 아들인 헨리는 영국의 국왕 헨리4세가 되어 이후 랭카스터 왕가의 조상이되었고, 외손녀인 시슬리 네빌은 요크공작과 결혼해서 요크가 왕들의 어머니가 되죠.^^*

 

랭카스터 공작은 카스틸랴 문제에 연관되었고, 이에 1371년 카스티야의 인판타 콘스탄사와 결혼합니다. 콘스탄사와 그녀의 동생 이사벨은 숙부와 왕위계승문제로 다투고 있었죠. 복잡한 문제들이 걸쳐져있긴 했지만, 단순히 보면 왕의 정식인지 아닌지 의심되는 딸들(부모의 결혼상태가 약간 문제가 있었거든요)과 국왕의 이복동생(역시 사생아)가 서로 왕위계승을 주장하고 있는것이었죠. 콘스탄사와 이사벨은 영국의 도움을 얻기 위해 에드워드3세의 아들들과 결혼했습니다. 이후 랭카스터 공작은 부인의 권리를 통해 카스티야 왕위계승을 주장합니다. (이 일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결국 콘스탄사와의 딸인 캐서린을 카스틸랴의 엔리케3세와 결혼시키는것으로 합의봅니다. 랭카스터가문은 이렇게 카스틸랴 왕위계승에 대해서 끝냈지만, 이사벨의 계승권리를 통해 요크가 역시 카스티야의 왕위계승권을 주장하죠.)

 

캐서린 스윈포드가 랭카스터 공작의 정식 정부가 된것이 언제인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1373년 이전 언젠가로 추정하는데 문제는 캐서린의 남편 휴 스윈포드가 1372년까지는 생존해있었다는것이죠. 그리고 캐서린과 랭카스터 공작의 장남인 존 보퍼트가 1373년에 태어나죠. 아마도 남편이 죽기전 이미 그의 정부가 되었을수도 있는 문제라고 합니다.캐서린의 공식 지위는 랭카스터 공작의 두딸인 필리파와 엘리자베스의 가정교사였습니다. (필리파는 후에 포르투갈의 왕비가 됩니다.)

둘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보퍼트"라는 성을 물려받습니다.(보퍼트 지방은 프랑스에 있던 랭카스터 공작의 영지라고 합니다.) 

 

랭카스터 공작은 두번째 부인인 콘스탄사가 죽은 2년후 1396년 캐서린 스윈포드와 정식으로 결혼합니다.랭카스터 공작이 캐서린 스윈포드와 결혼한 이유가 아마도 아이들을 위해서였을것이라고 합니다.  둘의 네 아이들은 이미 다 자랐지만, 둘의 결혼으로 국왕과 교황의 허락을 받아서 적자로 인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국왕이던 리처드2세는 사촌들은 금방 적자로 인정해주었지만, 의회는 교황의 허락을 받을때까지 적자 인정을 유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보퍼트"라는 성을 썼다고 합니다.

랭카스터공작은 캐서린 스윈포드와 결혼2년후 사망했으며, 캐서린 스윈포드 역시 남편이 죽은 4년후에 사망합니다. 하지만 둘의 아이들을 통해 영국과 유럽 왕가의 조상중 한명이 되죠.

 

 

캐서린 스윈포드와 조안 보퍼트의 묘

(이 묘는 청교도 혁명기간 파괴되었다고합니다.) 

 

랭카스터 공작과 캐서린 스윈포드의 아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존 보퍼트(1373–1410), 1대 서머셋 백작 -마거릿 홀랜드와 결혼

마거릿 홀랜드는 켄트백작의 딸로 그녀의 할머니가 바로 흑태자 에드워드의 부인입니다. 조안은 켄트백작과  결혼했다가 남편이 죽은후 흑태자와 재혼했습니다. 그녀역시 영국 왕가의 후손으로 당시 기준으로 봤을때 존 보퍼트보다 더 우선순위의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고 합니다.-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전기에 보면 레이디 마거릿에게 확실한 왕위계승권을 가져다준것은 할머니인 마거릿 홀랜드라고 이야기하고있습니다. 큰아들인 존 보퍼트는 1대 서머셋 공작으로 헨리7세의 외할아버지입니다. 그리고 딸인 조안 보퍼트는 스코틀랜드의 왕비가 되죠.

2.헨리 보퍼트 (1375-1447) : 추기경

헨리5세를 보면 거기 나오는 주교인 국왕 숙부가 나옵니다. 그분이 바로 헨리 보퍼트로 헨리6세의 섭정단중 한명이었습니다.

3.토마스 보퍼트(c. 1377 – c. 31 December 1426)  엑스터 공작-마거릿 네빌과 결혼(워윅백작가 사람이아님)

이복형인 헨리4세와 사이가 안좋앗던 형 존 보퍼트와 달리 그는 헨리4세와 사이가 좋았다고 합니다. 

4.조안 보퍼트(c. 1379 – 13 November 1440), -웨스트몰랜드의 백작 랄프 네빌과 결혼

조안보퍼트는 랄프 네빌과 결혼하기전 로버트 페레스와 결혼했었습니다. 그녀의 딸인 메리페레스는 두번째 남편이 첫번째 결혼에서 낳은 아들인 랄프 네빌과 결혼했습니다.--;;;

조안과 랄프 네빌의 아이들중 시슬리 네빌은 요크공작과 결혼했으며, 시슬리의 두아들이 에드워드4세와 리처드3세가 됩니다.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The King's mother: Lady Margaret Beaufort-Conuntess Richmond and Duby (캐서린 스윈포드의 증손녀이자 헨리7세의 어머니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전기)

3.The King of Death (영국의 흑사병에 대한 책)

사진출처

위키피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