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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337)표트르 사피에하 : 예카테리나 1세의 정부(?)

엘아라 2022. 5. 1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여제들이 나오네요 -0-;;

여제들의 경우 정부들이 애매한 경우가 많거든요. 일단 남성군주들과 달리 여성군주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총신=애인,정부 등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 (갑자기 예전에 어이없었던 일이 떠오르네요 --;;;; ) 그래서 뭐랄까 하기에 애매한데 안하기도 애매하더라구요. 번외로할려고 하다가 그것도 또 애매해서 그냥 물음표 표시를 할까합니다.

 

애인이나 정부를 두는 경우도 당연히 존재하지만 이들 또한 정치적 파트너인 경우가 많아서 그냥 애인이 아닌 정치적 파트너와 헷갈려서 뭐랄까 왠지 총신이면 애인인것같다..라는 생각이 강해지는듯해요-0-;;;;;

 

정부들과 그 후손들...(337)표트르  사피에하 : 예카테리나 1세의 정부(?) 

 

표트르 파베우 사피에하

Piotr Paweł Sapieha

(1701-1771)

 

표트르 파베우 사피에하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향력 있는 가문이었던 사피에하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사피에하 가문은 16세기부터 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 부와 영향력을 축적했으며, 표트르가 태어났을 때 이 가문은 폴란드에서 무시할수 없는 가문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때문에 표트르 대제의 총신이자 예카테리나 1세 시대에 권력자였던 멘시코프가 이 가문과 연대를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1721년 표트르 사피에하는 러시아로 와서 표트르 대제의 시종으로 일하게 됩니다. 표트르는 러시아에서 멘시코프의 집에서 살았는데 멘시코프는 자신의 딸인 마리아와 표트르 사피에하를 결혼시키려했습니다.

 

멘시코프

 

젊고 잘생겼으며 권력자들과 연결고리가 강했던 표트르 사피에하는 궁정에서 인기있는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카테리나 1세 역시 그를 좋아했었다고 합니다. 특히 그에게 호의적이었기에 외교관등은 그가 여제의 총애를 받는 것에 대해서 특별히 쓰고 있기도 합니다. 

 

예카테리나 1세

 

1726년 멘시코프의 딸인 마리야와 표트르 사피에하는 궁정에서 정식으로 약혼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예카테리나 1세도 참석했었다고 합니다만 이 결혼은 실현되지 않습니다. 멘시코프는 더 많은 권력을 원했으며 예카테리나 1세의 후계자가 될 표트르 대제의 손자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대공과 딸인 마리야를 결혼시키기로 했던 것입니다. 예타테리나 1세는 이 결혼에 동의했으며, 이때문에 표트르에게 자신의 친척이었던 소피야 카를로브나 스카브론스카야와의 결혼을 제안했습니다. 결국 표트르는 여제가 죽은 뒤인 1727년 소피야와 결혼을 했으며 1728년 폴란드로 돌아왔습니다.

 

마리아 멘시코바

 

폴란드로 돌아온 표트르는 매우 인기있는 인물이 되었으며 또 아버지가 죽은뒤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영향력을 갖게된 표트르는 당연히 폴란드 왕위계승문제에 참여하는데 그는 러시아가 지지하는 아우구스트 3세가 아닌 스웨덴의 지지를 얻은 스타니슬라우 레슈친스키를 지지했었습니다. 그는 지속해서 아우구스트 3세를 반대했는데 결국 1740년대에 한동안 정치에서 은퇴해야했었습니다.

 

이후 표트르는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 포니아토프스키가 폴란드 국왕이 될때 그를 지지했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정치에 관여했는데 특히 차리토리스키 가문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했으며, 변호사 연맹을 조직하기도 했었습니다. 

 

표트르 사피에하는 1770년 그의 영지가 프로이센에 점령당하자 현재 슬로바키아 지역에 있는 질리나로 갔고 그곳에서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