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중요한 인물인것은 알겠는데..ㅠ.ㅠ
대북방전쟁은 사실 대충 봐서.....흑...칼 12세가 지는것이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잘 못 읽겠더라구요 -0-;;;;
(사실 그냥 전쟁이야기를 읽기가 싫을 뿐입니다.)
하여튼 덕분에 대북방전쟁 봐야해서 힘드네요..ㅠ.ㅠ
정부들과 그 후손들...(336)엘리즈비에타 시에냐프스카 : 표트르 대제의 정부(?) (두번째)
엘리즈비에타 헬레나 루보미르스카
엘리즈비에타 헬레나 시에냐프스카
Elżbieta Helena Sieniawska, née Lubomirska
(1669 – 21 March 1729),
엘리즈비에타와 엘리즈비에타의 남편인 시에냐프스키는 둘다 폴란드의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아우구스트 2세의 통치시기 복잡한 폴란드 상황에 둘다 개입하는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아우구스트 2세는 대북방전쟁이 일어나자 러시아와 덴마크와 손을 잡고 스웨덴을 공격하게 됩니다. 이것은 스웨덴이 폴란드의 위협적인 존재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웨덴의 국왕 칼 12세는 군사적으로 재능이 있는 인물이었으며 폴란드의 공격을 도리어 물리치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에 대해서 공격을 가하게 됩니다. 특히 칼 12세는 작센 선제후로 외국인이었던 아우구스트 2세에 대항해서 폴란드 출신의 스타니스와프 레슈친스키를 폴란드의 국왕으로 내세우게 됩니다. 이것은 결국 폴란드 내의 내전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결국 폴란드에서는 스웨덴 세력을 등에 업은 레슈친스키와 러시아의 동맹이었던 아우구스트 2세가 왕위를 두고 다투는 상황이 되었으며 결국 1706년 아우구스트 2세는 폴란드 왕위를 포기해야했었습니다.
아우구스트 2세가 왕위를 포기한뒤, 엘리즈비에타는 러시아이 표트르 대제와 스웨덴의 칼 12세 둘 사이에서 협상을 진행합니다. 사실 스웨덴이 지지하는 국왕은 레슈친스키였지만 스웨덴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레슈친스키를 폴란드에서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폴란드에서는 다시 한번 왕위 계승을 주장하는 수많은 후보가 있었으며 그중에서는 엘리즈비에타의 남편인 시에나프스키도 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러시아가 지지하는 중요한 왕위계승후보자였고 아내인 엘리즈비에타 역시 영향력있는 사람이라서 가망이 컸습니다. 하지만 엘리즈비에타는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기에 남편에게 후보자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강요했었으며 옛 연인이기도 했었던 라코치 페렌츠 2세를 폴란드 왕위계승자로 지지하기도 했었습니다. 엘리즈비에타는 끊임없이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여러가지 행동을 했었습니다. 이때문에 스웨덴의 칼 12세는 엘리즈비에타에 대해서 "가장 저주받을 여성"이라고 욕을 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1709년 폴타바 전투에서 러시아가 스웨덴에 승리를 거두면서 레슈친스키는 폴란드 왕위를 포기해야했었습니다. 이때 엘리즈비에타는 얀 3세 소비에스키의 아들을 후보로 생각했으며 또한 외국인이 베틴가문이 폴란드 왕가가 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이미 폴란드 국왕으로 대관했던 아우구스트 2세가 복위하는 것에 대해서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도 여겼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아우구스트 2세가 복위했습니다.
엘리즈비에타의 정치적 영향력을 잘 알수 있는 사건은 1711년 외동딸이었던 마리아 조피아의 세례식때였다고 합니다. 딸의 세례식에 수많은 권력자들을 초대했는데 특히 아우구스트 2세와 표트르 대제 그리고 라코치 프렌치 2세가 조피아의 대부모들이기도 했었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아름답고 지적이었던 엘리즈비에타에 대해서 반했으며 결국 그녀는 표트르 대제의 정부가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특히 조피아의 세례식 무렵에 옐리즈비에타의 집에 있었던 프랑스 대사는 표트르 대제와 엘리즈비에타가 서로 가깝게 있으며 끊임없이 대화했으며 함께 보트를 만들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엘리즈비에타는 이후 정치 생활에서 은퇴한뒤 주로 경제활동에 집중했었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고 늘리는 일에 집중했으며 영지내의 여러 저택들과 궁전들을 짓고 꾸미는데 집중했었습니다. 또한 예술을 후원했는데 화가와 건축가들을 후원했을뿐만 아니라 옛 국왕이었던 얀 3세 소비에스키의 여러 궁전들을 보존하는 일등을 했었습니다.
엘리즈비에타의 외동딸이었던 조피아는 당대 최고의 상속녀로 유럽에 알려지게 됩니다. 특히 1728년 조피아가 과부가 되었을때 그녀의 남편감으로 유럽의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이를테면 프랑스의 루이 15세는 콩데 가문 출신이었던 샤롤레 백작 샤를 드 부르봉을 남편감으로 추천했으며 조피아를 베르사유로 초대했었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에서는 포르투갈의 인판테였던 동 마누엘을 밀었었으며 그외의 폴란드 귀족들 역시 그녀의 남편이 되려했었습니다. 결국 조피아는 1731년 알렉산더 아우구스트 차르토리스키와 결혼했습니다. (헉 ..차르토리스키를 어디서 봤나했더니 조피아의 손녀가 뷔르템베르크의 루드비히와 결혼했던 그 폴란드 귀족 여성이군요. -0-;;;; 동생이 폴란드 독립을 주장하는 폴란드 귀족 여성과 결혼해서 형인 뷔르템베르크의 프리드리히가 러시아에서 엄청나게 난처햇다는 그 스토리에나오던 그 폴란드 여성...)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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