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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번외편 안나 몬스의 남동생 빌렘 몬스와 조카인 나탈리야 로푸키나

엘아라 2022. 2. 2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안나 몬스의 형제 자매들이 러시아 역사에 여러가지로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번외편 숫자가 얼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정부들과 그 후손들...번외편 안나 몬스의 남동생 빌렘 몬스와 조카인 나탈리야 로푸키나

 

안나 몬스의 남동생이었던 빌렘 몬스는 안나가 표트르 대제에게 총애받는 동안 궁정에서 신임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빌렘 몬스는 표트르 대제의 아내였던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의 개인 비서가 됩니다. 특히 예카테리나가 표트르 대제와 공동 통치자로 선포된 1724년 그는 예카테리나의 시종무관으로 임명받게 됩니다. 하지만 1724년 11월 빌렘 몬스는 배임과 횡령의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처형됩니다. 그리고 예카테리나의 시녀이자 친구였으며 빌렘 몬스의 누이였던 마트료나 발크 역시 체포되었으며 채찍질을 당했으며 다른 가족들 역시 벌을 받게 됩니다. 

 

사실 표트르 대제가 빌렘 몬스를 처형한 이유는 빌렘 몬스가 예카테리나와 불륜을 저질렀기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둘의 불륜은 1718년 경에 이루어졌지만 1724년 강력한 증거를 발견한 표트르 대제가 예카테리나에게 불같이 화를 냈으며 불륜 상대였던 빌렘 몬스를 처형했다는 것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중에 하나는 표트르 대제가 빌렘 몬스를 처형한뒤 그의 머리를 알콜에 보관해서 예카테리나에게 보내서 강제로 보게했다는 전설이 전해져오기도 합니다.

 

표트르 대제의 두번째 아내,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 황후,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1세

 

하지만 1725년 2월 표트르 대제는 서거했고 예카테리나가 황제 예카테리나 1세가 되면서 친구였던 마트료나는 사면을 받고 다시 다시 궁정으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

 

안나 몬스의 자매로 표트르 대제에 의해서 마트료나의 딸이었던 나탈리야 로푸키나 역시 정치적 음모에 연관되는 여성이었습니다. 나탈리야 로푸키나는 마트료나의 딸로 표트르 대제의 첫번째 아내의 가문이었던 로푸킨 가문으로 시집가게 됩니다. 나탈리야의 남편이었던 스테판 바실리예프스키 로푸킨은 표트르 대제의 첫번째 아내였던 에우도키아 로푸키나의 친척이었으며 이때문에 표트르 대제와의 관계가 애매했었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그에 대해서 나쁘지 않게 생각했었지만 알렉세이가 죽을때 스테판은 표트르 대제의 눈밖에 났고 나탈리야 역시 남편과 함께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모가 궁정에서 물러나고 외삼촌이 살해당하면서 한동안 궁정에서 힘을 잃게 됩니다만, 표트르 대제가 죽은뒤 다시 좀더 궁정에서 힘을 얻게 됩니다.

 

나탈리야 로푸키나, 안나 몬스의 조카

 

특히 나탈리야 로푸키나가 궁정내에서 힘을 얻는 것은 바로 안나 여제때입니다. 나탈리야는 안나 여제의 언니였던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시녀고 메클렌부르크로 따라갔었기도했었으며 이런 연결고리는 나탈리야가 안나 여제 시절 궁정에서 힘을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탈리야는 안나 여제의 궁정에서 최고의 궁정 여성중 한명이 되었으며 이것은 사촌에 의해서 소외당했던 표트르 대제의 딸인 옐리자베타 표트로브나가 나탈리야에 대해서 앙심을 품게 되는 원인중 하나가 됩니다. 나탈리야와 나탈리야의 남편은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외손자였던 이반 6세가 즉위하고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딸인 안나 레오폴도브나가 섭정이 되면서 권력의 중심에 다가서게 됩니다만, 1741년 옐리자베타 여제가 쿠데타를 통해서 즉위하면서 나탈리야의 처지는 몰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탈리야는 옐리자베타 여제의 신임을 받던 알렉세이 베스튜제프의 제수였던 베스튜제바와 친분이 있었기에 궁정내 지위를 유지할수 있었습니다. 

 

알렉세이 베스튜제프

 

하지만 1743년 나탈리야는 프랑스와 프로이센이 꾸민 음모의 희생양이 됩니다. 목표는 여제의 신임을 받던 알렉세이 베스튜제프의 실각이 목표였고 여기에 나탈리야와 나탈리야의 친구였던 베스튜제바가 연루됩니다. 나탈리야는 자신의 연인에게 편지를 보내서 여제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을뿐만 아니라 나탈리야의 아들은 이반 6세의 복위에 대한 언급을 술집에서 하게 됩니다. 이것은 여제가 자신에 대한 심각한 반란이라고 여기게 되는데 특히 나탈리야에 대해서 앙심을 가지고 있던 여제는 나탈리야와 베스튜제바에 대해서 가혹하게 대하게 됩니다. 여제는 쿠데타가 성공한다면 사람들을 사형시키지 않겠다고 맹세했었기에 나탈리야와 베스튜제바를 사형시키지 않았습니다만, 공개적으로 태형을 가하고 혀를 자른후 시베리아로 유배보냈었다고 합니다. 나탈리야는 20여년동안 있었으며 옐리자베타 여제가 죽고 표트르 3세가 즉위한 뒤에야 돌아올수 있었습니다만 돌아온 얼마뒤 나탈리야도 사망했습니다.

 

옐리자베타 여제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