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진짜 앙주 가문은...ㅠ.ㅠ
프랑스의 왕비들...(69)베르트라드 드 몽포르 : 필리프 1세의 왕비 (첫번째)
베르트라드 드 몽포르
필리프 1세의 왕비
Bertrade de Montfort
(c. 1070 – 14 February 1117)
베르트라드 드 몽포르는 몽포르 영주였던 시몽 드 몽포르와 그의 아내였던 아그네스 데브뢰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시몽 드 몽포르는 몽포르 지역의 영주로 시몽 드 몽포르의 할아버지였던 에노의 기욤(기욤 드 몽포르)가 처음으로 몽포르 성(몽포르 일 아모리)를 지은뒤 그의 후손들은 몽포르라는 성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베르트라드 드 몽포르의 어머니였던 아그네스 데브뢰는 에브뢰 백작 리샤르 데브뢰의 딸이었습니다. 아그네스는 노르망디 공작가문의 일원으로 아그네스의 아버지는 노르망디 공작 리샤르 1세의 손자로, 아그네스의 할아버지는 에브뢰 백작이자 루앙의 대주교였던 로베르였습니다. (잉글랜드의 왕비가 되는 에마의 오빠네요 -0-;;;) 로베르는 교회에서의 자신의 역할과 에브뢰 백작으로써의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는 교회에 대해서 노르망디 공작의 이익을 대변했으며 또 노르망디 공작령에 대한 통치에도 관여했었습니다. 이런 관계로 아그네스는 정복왕 윌리엄의 육촌이었습니다.
시몽 드 몽포르는 두번 결혼했는데 아그네스는 그의 두번째 아내였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첫번째 아내가 죽은뒤 그는 아그네스를 아내로 맞길 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그네스는 그를 원하지 않았고 이에 시몽은 자신의 전우로 아그네스의 이부오빠였던 라울 드 토스니에게 부탁을 했고 그는 여동생을 납치해서 시몽에게 데려다줬고 시몽은 이렇게 아그네스를 두번째 아내로 맞았다는 것입니다. 시몽은 답례로 자신의 첫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딸인 이사벨을 라울에게 시집보냈었다고 합니다.
베르트라드는 이렇게 강력한 노르망디 공작 가문의 친척이었을뿐만 아니라 노르망디 공작 가문의 가신 가문들과도 연결이 되었습니다. (베르트라드의 외삼촌이자 형부인-0-;;; 라울 드 토스니는 정복왕 윌리엄과 함께 잉글랜드로 갔던 노르만 기사중 한면이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시몽 드 몽포르와 아그네스 데브뢰의 후손들은 에브뢰 백작령을 물려받기도 했으며 후에 잉글랜드에서 레스터 백작 지위를 얻기도 했습니다. (헨리 3세의 매제로 헨리 3세에 대해서 압박을 가했었던 시몽 드 몽포르 역시 이들의 후손이었습니다.)
베르트라드의 아버지인 시몽 드 몽포르는 1087년 사망합니다. 이때쯤 베르트라드의 어머니 역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왜냐면 이후에 베르트라드의 외삼촌인 기욤 데브뢰가 베르트라드의 후견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베르트라드는 매우 아름다웠고 이런 아름다움은 베르트라드가 주변의 강력한 영주가 그녀에게 청혼하는 원인이 됩니다. 바로 앙주 백작 풀크 4세였습니다. 앙주 백작 풀크 4세는 프랑스의 강력한 영주중 하나로 노르망디 공작가문만큼이나 강력한 가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베르트라드에게 좋은 남편감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베르트라드보다 30살 가량 많았으며 이전에 네번이나 결혼했던것은 물론 심지어 그가 베르트라드에게 반했을때는 네번째 결혼이 지속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당연히 베르트라드는 이런 결혼을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만 중세 귀족과 왕족 여성들은 자신의 뜻대로 결혼할수 없었습니다. 베르트라드는 에브뢰 백작 가문의 보호를 받고 있었으며 가족들 대부분이 노르망디 공작가문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르망디 공작으로 정복왕 윌리엄의 아들이었던 로베르가 멘 백작령에 대한 분쟁을 겪고 있었고 이 문제에 앙주 백작도 관여되어있었습니다. 결국 노르망디 공작은 앙주 백작에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받길원했고 앙주 백작은 그 댓가로 베르트라드와 결혼을 원했었다고 합니다.
결국 풀크 4세는 네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노르망디 공작은 영지 문제를 정리한뒤 인, 1089년 베르트라드는 풀크 4세의 다섯번째 아내가 됩니다. 그리고 베르트라드는 곧 풀크 4세와의 사이에서 아들인 풀크를 낳았습니다.
베르트라드는 강력한 앙주 백작의 아내가 되었지만 이것은 아마도 그녀의 뜻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녀의 남편은 모든 면에서 이상적인 남편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고 젊은 베르트라드가 늙은 백작과 함께 사는 모습에 안타까웠을수도 있습니다만 프랑스 내에서 강력한 영주중 한명이었던 앙주 백작에게서 감히 그가 미친듯이 사랑하는 아내를 뺏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대담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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