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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곤의 인판타들...(27) 아라곤의 레오노르 : 페드로 4세의 딸

엘아라 2021. 11. 3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페드로 4세가 네번 결혼했네요 --;;;;

아 예전에 이사벨 1세에 대해서 팔때 나왔던 레오노르군요.

그때는 가계를 대충 이해했었는데 요즘 보니까 또 헷갈리네요 ㅠ.ㅠ

 

아라곤의 인판타들...(27) 아라곤의 레오노르 : 페드로 4세의 딸

 

Eleanor of Aragon (20 February 1358 – 13 August 1382

 

 

아라곤의 레오노르는 아라곤의 국왕 페드로 4세와 그의 세번째 아내인 시칠리아의 엘레오노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위로는 두 이복언니들인 콘스탄사와 후아나가 있었고, 동복 오빠들인 후안과 마르틴도 있었습니다. 이때문에 레오노르는 어린시절에는 아라곤의 왕위계승권리와는 그렇게 가까운 인물은 아니었다고 여겨졌을 것입니다.

 

레오노르의 아버지인 페드로 4세는 나바라의 마리아와 첫번째 결혼을 해서 9년동안 두 딸만 살아남았었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아내가 죽은 해인 1347년 포르투갈의 레오노르와 재혼했었습니다. 하지만 레오노르는 자녀없이 결혼 다음해에 흑사병으로 사망해버립니다. 이렇게 두 아내를 잃은 뒤 페드로 4세는 세번째로 시칠리아의 엘레오노르와 1349년 재혼합니다. 사실 그전에 페드로 4세는 자신의 장녀인 콘스탄사를 왕위계승자로 내세우려했지만 동생들의 반발로 성공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레오노르의 어머니인 엘레오노르는 결혼한뒤 바로 두 아들인 후안과 마르틴을 낳았기에 왕위계승자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습니다.

 

레오노르는 1361년 카스티야의 알폰소와 약혼합니다. 레오노르가 약혼했던 카스티야의 알폰소는 카스티야의 국왕 페드로 1세와 그의 정부이자 후에 정식 아내로 선포된 마리아 데 파딜라의 아들이었습니다. 페드로 1세는 마리아 데 파딜라와의 결혼을 승인 받은후 알폰소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포했었으며 페드로 1세는 후계자가 된 아들과 아라곤의 인판타와의 결혼을 진행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1362년 알폰소가 사망하면서 이 혼담은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레오노르와 카스티야와의 관계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레오노르는 1375년 이전에 약혼했었던 알폰소의 사촌이자 이복형인 페드로를 전쟁터에서 물리치고 왕위에 오른 엔리케 2세의 후계자인 후안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1379년 엔리케 2세가 사망한뒤 후안이 카스티야의 국왕 후안 1세로 즉위하면서 레오노르도 카스티야의 왕비가 됩니다.

 

레오노르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세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만 아들들인 엔리케와 페르난도만이 살아남았습니다. 레오노르는 막내아이인 딸 레오노르를 낳다가 사망했으며 아이 역시 태어난직후 사망했습니다.

 

레오노르의 남편인 후안 1세는 포르투갈의 왕위계승 문제에 관여했으며, 포르투갈의 왕위계승권리를 주장했던 베아트리스와 결혼해서 그녀의 남편으로 포르투갈의 왕위를 얻으려했습니다만, 성공하지 못했고 포르투갈의 왕위는 베아트리스의 숙부였던 아비스 기사단장 주앙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레오노르의 두 아들중 장남인 엔리케는 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카스티야의 국왕 엔리케 3세가 됩니다. 그는 랭카스터의 캐서린과 결혼해서 할아버지대인 페드로와 엔리케 2세의 왕위계승분쟁을 완전히 마감했었습니다만, 그는 일찍 죽었으며 그의 아들인 후안 2세는 어려서 즉위했고 이에 숙부였던 페르난도와 그의 아들들이 영향력을 행사했었습니다.

페르난도는 외삼촌들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결국 아라곤의 왕위를 이어받게 되는데 특히 손자인 페르난도는 친척이었던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결혼해서 후에 둘은 "가톨릭 공동 군주"로 에스파냐를 성립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