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

[새해특집] 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3)조부모

엘아라 2021. 1. 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글이 안써져서 미칠것 같아서 고기를 미친듯이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글이 좀 써지는듯하네요 아하하 =-=

 

[새해특집] 원대한 꿈을 위한 여정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3)조부모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는 보퍼트 가문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랭카스터 공작과 캐서린 스윈포드의 장남이었던 서머셋 백작 존 보퍼트였습니다. 존 보퍼트는 부모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황에서 태어났기에 사회적으로 제약이 있었습니다. 존 보퍼트도 중세시대 많은 남성들처럼 기사가 되고 작위를 얻는 것이 목표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사생아라는 그의 신분은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이때문에 아마도 많은 영지 없는 기사들이나 야망을 가진 기사들처럼 영지를 얻거나 안정된 수입을 얻을수 있는 길을 찾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십자군 원정에 동참하거나 튜턴 기사단에 들어가서 일을 하기도 했었죠. 

 

서머셋 백작, 존 보퍼트

 

하지만 존 보퍼트의 삶이 바뀌는 것은 바로 부모인 랭카스터 공작과 캐서린 스윈포드가 정식으로 결혼하는 1397년입니다. 부모가 정식으로 결혼하고나서 국왕 리처드 2세는 사촌들인 보퍼트 가문 사람들을 모두 적자로 인정했으며 존에게도 "서머셋 백작"지위를 부여합니다. 존 보퍼트는 이제 인정받는 왕가의 일원이자 서머셋 백작이라는 영주이기도 했었죠. 아마도 이것은 존이 리처드 2세에게 매우 충성스러웠던 원인중 하나일 것입니다. 존은 후에 이복형인 볼링블룩의 헨리가 잉글랜드에 상륙했고 동생들이 그에게 갔을때조차도 리처드에게 충성을 다 했었다고 합니다.

 

이복형인 헨리 4세가 즉위한뒤 존 보퍼트는 한동안 냉대를 당합니다. 그는 리처드 2세에 의해서 후작 지위를 받았었지만 강등당해서 원래 서머셋 백작이 되었었고, 헨리 4세는 보퍼트 가문의 왕위계승권리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하는 등의 일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존 보퍼트는 결국 이복형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했으며 그는 다시 국왕의 궁정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었다고 합니다. 

 

서머셋 백작 존 보퍼트의 문장, 보퍼트 가문의 문장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할머니는 레이디 마거릿 홀랜드로 켄트 백작의 딸이자 잉글랜드 왕가의 후손중 한명이기도 했었습니다. 마거릿 홀랜드의 할머니는 바로 켄트의 조앤으로 그녀는 에드워드 1세의 손녀이자 켄트 백작령의 상속녀였으며 흑태자의 아내이자 리처드 2세의 어머니이기도 했습니다. 켄트의 조앤은 당대 스캔들 메이커중 하나이기도 했었습니다. 조앤의 결혼은 매우 복잡한 양상으로 흘러갔는데 켄트의 조앤은 토마스 홀랜드라는 기사와 비밀결혼했었는데 이후 토마스 홀랜드가 해외에 전장에 가있는 동안 조앤의 가족들은 조앤을 샐리스버리 백작의 아들인 윌리엄 몬태규와 결혼시킵니다. 그리고 토마스 홀랜드는 전장에서 돌아와서 조앤이 자신과 결혼했다는 것을 밝혔고 결국 조앤은 토마스 홀랜드와 다시 함께 살았습니다. 둘 사이에는 다섯아이가 태어났고, 그중 첫째가 바로 마거릿 홀랜드의 아버지였습니다.

 

켄트의 조앤, 켄트의 여백작, 마거릿 홀랜드의 할머니, 리처드 2세의 어머니

 

재미난 것은 켄트의 조앤이 흑태자와 결혼한것 역시 스캔들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조앤은 남편이 죽은뒤 흑태자 에드워드와 결혼하는데 둘은 교회에서 정한 근친관계였을뿐만 아니라 에드워드는 조앤의 아이들의 대부이기까지 했기에 이것은 복잡한 상황을 낳게 됩니다. 흑태자의 부모는 아들이 조앤과 결혼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결혼을 인정받을수 있게 했으며 교황의 사면을 통해서 둘의 결혼을 완전히 인정받았습니다. 

결국 마거릿 홀랜드는 리처드 2세의 조카이기도 했으며, 아마도 리처드 2세가 존보퍼트를 신뢰했었기에 자신의 조카를 그와 결혼시켰던것일듯합니다.

 

마거릿 홀랜드의 문장

 

마거릿 홀랜드와 존 보퍼트 사이에는 여섯아이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아버지인 서머셋 공작 존 보퍼트는 물론 스코틀랜드의 왕비가 되는 조앤 보퍼트 그리고 형의 뒤를 이어서 서머셋 공작이 되는 에드먼드 보퍼트 등이 있었습니다. 

 

조앤 보퍼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1세의 왕비

 

1410년 존 보퍼트가 죽은뒤 다음해인 1411년 마거릿 홀랜드는 남편의 조카이자 헨리 4세의 아들이었던 클라렌스 공작 랭카스터의 토마스와 결혼합니다. 이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을텐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미성년의 자녀들을 보호해줄만한 남성 보호자가 필요했기 때문일듯합니다. 클라렌스 공작이 마거릿 홀랜드와 결혼한 이유는 아마도 그녀의 재산때문이었을듯합니다. 마거릿 홀랜드가 재혼하던 시기에 마거릿 홀랜드의 남자 형제들은 후계자 없이 사망했었으며 켄트 백작령은 왕가로 귀속됩니다. 하지만 땅의 경우 좀 달랐는데 아마도 마거릿 홀랜드의 자매들이 함께 나누어서 상속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문에 마거릿 홀랜드는 매우 부유했었으며 이런 그녀는 꽤나 괜찮은 신붓감이기도 했었습니다. 클라렌스 공작과 마거릿 홀랜드 사이에는 자녀들이 태어나지 않았었습니다.  클라렌스 공작은 1421년 백년전쟁에 참전했다고 보제 전투에서 전사했었습니다. 두번째 남편이 죽었을때는 이미 자녀들이 성인으로 성장했기에 보호자가 필요없었고 이때문에 마거릿 홀랜드는 재혼할 필요가 없었을듯합니다. 그리고 마거릿 홀랜드는 두번째 남편이 죽은 18년뒤인 1439년 사망했습니다. 재미난 것은 마거릿 홀랜드는 두 남편들과 함께 묻혔는데 두 남편 사이에 마거릿이 묻혔다고 합니다.

 

클라렌스 공작 랭카스터의 토마스, 마거릿 홀랜드의 두번째 남편

 

이렇게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할아버지는 랭카스터 공작의 아들이었으며, 할머니는 에드워드 1세의 후손이자 리처드 2세의 조카이기도 했었습니다. 레이디 마거릿의 조부모 모두는 왕가의 후손이었으며 또 할머니를 통해서 잉글랜드의 여러 대가문들과도 연결됩니다. 이것은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가 궁정에서 스스로의 지위를 인식하는 중요한 요인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