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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왕비들...(52) 웨섹스의 애드기푸 : 샤를 3세의 왕비

엘아라 2020. 12. 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오랫만에 앵글로-색슨식 이름을 보는군요 음냐 -0-;;;

 

프랑스의 왕비들...(52) 웨섹스의 애드기푸 : 샤를 3세의 왕비

 

웨섹스의 애드기푸

서프랑크의 왕비

Eadgifu or Edgifu 

(902 – after 955)

Edgiva or Ogive

(Old English: Ēadgifu) 

 

 

웨섹스의 애드기푸는 웨섹스의 국왕인 에드워드 더 엘더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앨플래드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에드워드 더 엘더는 두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여러 자녀를 얻었는데 특히 여섯딸들이 유명했습니다. 애드기푸는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으며, 자매인 애드칠드는 위그 르 그랑의 두번째 아내였으며 애드기스는 동프랑크의 국왕이자 후에 신성로마제국의 첫 황제가 되는 오토 1세의 왕비이기도 했었습니다. 애드기푸의 할아버지는 바로 잉글랜드의 위대한 국왕인 앨프레드 대왕이었으며 이때문에 그의 아들인 에드워드 더 엘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덜되었고 좀 무시당했었다고 합니다만, 잉글랜드에서 바이킹 세력을 몰아내고 잉글랜드의 세력을 굳힌 인물이라고도 합니다.

 

에드워드 더 엘더, 애드기푸의 아버지

 

애드기푸는 917년에서 919년 사이 서프랑크의 국왕이었던 샤를 3세의 두번째 아내가 됩니다. 아마 자매들의 상태로 봐서 애드기푸의 결혼 역시 정략결혼이었을 것입니다. 바이킹을 견제하기 위해서 잉글랜드는 여러 동맹이 필요했었을 것이며 당대 바이킹에 맞설만한 세력들과 통혼을 했던것으로 보입니다.

 

샤를 3세

 

애드기푸는 920년경 아들인 루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인 샤를 3세는 922년 왕위에서 물러나야했으며 베르망두아 백작의 포로가 되기까지 합니다. 아마 애드기푸는 남편이 붙잡히자 아들도 위험할것이라고 여겼으며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들을 데리고 친정인 잉글랜드로 돌아갔습니다. 이때문에 그녀의 아들인 루이는 오래도록 잉글랜드에 머물다가 서프랑크의 국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애드기푸는 아들인 루이가 서프랑크의 국왕 루이 4세가 되면서 다시 서프랑크로 돌아왔었으며, 아마도 과부가 된 다른 왕비들처럼 수도원으로 은퇴합니다. 물론 전 왕비였으며 국왕의 어머니였기에 수도원의 원장으로 윤택할 생활을 누렸을 것입니다. 

 

대관하는 루이 4세

 

하지만 루이 4세의 치세는 귀족들과의 갈등이 이어졌으며 이런 상황은 애드기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 연대기 기록에 따르면 애드기푸는 951년 오무아의 백작 헤르베르 3세에게 납치당해서 그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헤르베르 3세는 루이 4세와 적대하던 인물이었을뿐만 아니라 애드기푸가 가지고 있던 수도원의 영지를 관할할수 있을 것이라 여겨서 그녀와 결혼했을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소식을 듣고 루이 4세는 매우 화를 냈으며 어머니가 수도원장으로 있던 수도원을 아내에게 줬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