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혼란하지만 자료는 없습니다. -0-;;;
이게 뭐야..
프랑스의 왕비들...(49) 파리의 아델라이드 : 루이 르 베그(루이 2세)의 왕비
파리의 아델라이드
Adélaïde of Paris (or Aélis)
(c. 850/853 – 10 November 901)
파리의 아델라이드 또는 프리울의 아델라이드는 파리 백작 아달라드(아달하르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달라드는 외삼촌으로부터 파리백작 지위를 이어받았는데, 아달라드의 외할머니는 아마도 샤를마뉴의 손녀이자 루이 르 피우스(황제 루도비쿠스 1세 피우스)의 딸이거나 샤를마뉴의 첩들중에서 태어난 딸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아마도 아델라이드는 나름 강력한 배경을 가진 집안 출신으로 정치적으로 중요한 집안 출신이거나 적어도 왕권에 도움을 줄수 있는 가문 출신이었을 것입니다. 이때문에 루이 2세의 아버지였던 샤를 2세가 아델라이드를 며느리감으로 선택한 것일듯합니다. 하지만 루이는 이미 862년 부르고뉴의 안스가르드와 결혼해서 아들이 둘이나 있는 상황이었죠.
이에 대해서 샤를 2세는 아들의 결혼을 무효화 하려고 노력했으며 결국 루이는 결혼을 무효화하고 875년 아델라이드와 결혼합니다. 하지만 이 결혼에 대해서도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바로 루이와 아델라이드가 교회법에서 허용하지 않는 근친관계라는 이유였습니다. 이때문에 877년 루이가 왕위에 오른뒤에 아델라이드도 왕비로 대관해야했지만 교황은 그녀에게 대관을 하는 것을 거절하기도 했었습니다.
879년 4월 루이 르 베그가 사망했을때, 아델라이드는 임신중이었으며 그해 9월에 아들인 샤를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아델라이드와 그녀의 아들은 복잡한 정치 상황에 휘말리게 되죠. 왜냐면 루이의 전처였던 안스가르드와 그녀의 두 아들들은 결혼 무효를 무효화하고 왕위계승권리를 인정받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델라이드와 샤를의 존재는 안스가르드와 그녀의 아들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이었으며 결국 이들이 인정받으려면 둘을 몰아내야했었습니다. 아델라이드는 간통죄로 고소당하고 그녀의 아들인 샤를은 적자로 인정받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상황은 아델라이드와 샤를의 승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 여파로 루이의 두 아들들인 루이 3세와 카를로만이 후계자 없이 사망했을때 왕위는 샤를이 아니라 친척으로 동프랑크 왕국의 국왕이자 황제였던 카롤루스 3세나 아니면 서프랑크의 강력한 귀족이었던 파리 백작 오도(로베르 르 포르의 아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아델라이드의 아들인 샤를은 893년부터 오도에게 반기를 들고 자신의 계승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음 결국 898년 오도가 사망한뒤 서프랑크의 왕위를 이어받게 됩니다. 그리고 아델라이드는 아들이 대관식을 하는 것을 지켜봤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녀는 아들이 왕위에 오른뒤 평화롭게 사망했을 것입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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