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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왕비들...(48) 프로방스의 리칠드 : 카롤루스 2세의 왕비

엘아라 2020. 10. 1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초반부터 이거 뭐지? 이런 느낌이라..아하하..

하지만 곧 카페 가문 가는걸로 버팁니다. -0-;;

 

프랑스의 왕비들...(48) 프로방스의 리칠드 : 카롤루스 2세의 왕비

 

 

프로방스의 리칠드

Richilde of the Ardennes (or Richilde of Provence)

(ca. 845 – 2 June 910) 

의붓아들인 루이 르 베그와 함께 있는 모습

 

프로방스의 리칠드는 그로즈의 비빙의 딸로 그녀의 어머니는 투린과 발루아의 백작으로 로타링기아 지역에서 영향력이 컸던 보소의 딸이었습니다. 이런 관계로 리칠드의 이모는 바로 로타링기아의 왕비로 남편 로타르 2세와 사이가 나빴던 테우베르가였습니다. 

 

카롤루스 2세(샤를 2세)는 이미 결혼해서 20년 이상 함께 살았던 아내 에르멩가르드가 있었습니다만, 그녀는 866년 수녀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은 샤를 2세가 더 많은 아들을 원해서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아내를 수녀원으로 보내고 샤를은 이제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며 더 많은 아들을 낳아줄수 있는 젊은 여성을 찾았을 것이며, 아마도 리칠드는 그런 대상중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869년 샤를 3세의 아내인 에르멩가르드가 죽었으며 이제 샤를 2세는 다른 여성과 마음대로 결혼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870년 리칠드와 재혼하게 됩니다. 리칠드는 샤를23세와의 사이에서 다섯명의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만, 첫째인 딸을 빼고 영유아기를 넘기지 못해서 더 많은 아들들을 바랬다는 샤를 2세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했었습니다.

 

황제 카롤루스 2세, 샤를 2세

 

리칠드는 왕비로 남편의 부재시 섭정역할을 했었으며, 심지어 남편이 죽고 난뒤에도 이런 역할을 담당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녀가 왕비로 있던 시기 그녀의 친정 역시 더 높은 지위와 권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리칠드가 친정에 힘을 실어줄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리칠드는 의붓아들이었던 루이 2세가 갑작스럽게 죽고 후계자 문제가 발생했을때 루이 2세의 아들들이 아니라 자신의 오빠인 프로방스의 보소를 왕위에 올릴려고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공하지 못했었죠. 하지만 그녀는 보소가 프로방스를 독립적 지역으로 통치하는데 힘을 보태줬다고 합니다.

 

루이 2세, 리칠드의 의붓아들

 

리칠드는 의붓손자들인 루이 3세와 카를로만 2세가 죽었을때도 권력을 잡으려했지만 정치적 상황이 너무 혼란했기에 권력을 잡지는 못했었습니다. 대신에 그녀는 조카였던 프로방스의 루이(루도비쿠스)가 이탈리아 원정을 통해서 이탈리아의 국왕이 되고 황제가 되는 것을 봤다고 합니다.

 

리칠드는 샤를 3세와의 사이에서 여러 아이를 낳았지만 딸 로칠드만이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멘의 백작이었던 로게르와 결혼했었으며, 로칠드와 멘의 백작 로게르의 딸은 위그 르 그랑(위그 카페의 아버지)의 첫번째 아내가 되었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