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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왕비들...(47)오를레앙의 에르멩트루드 : 카롤루스 2세의 왕비

엘아라 2020. 10. 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흠...일단 위그 카페 전까지는 그냥 쭈욱 따라서 하구요.

(어차피 위그 카페 이후는 그냥 한가문이니..-0-;;;)

위그 카페 들어가기 전에 위그 카페 가문에 대해서 번외로 한번 보고 시작해야겠습니다.

 

드디어 좀 익숙한 상황이 나옵니다. 엉엉엉..ㅠ.ㅠ

 

프랑스의 왕비들...(47)오를레앙의 에르멩트루드 : 카롤루스 2세의 왕비

 

 

오를레앙의 에르멩트루드

Ermentrude of Orléans 

(27 September 823 – 6 October 869) 

 

오를레앙의 에르멩트루드는 오를레앙 백작이었던 오도 1세와 그의 아내인 엥겔트루드 드 페젠삭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샤를마뉴에 의해서 지위가 상승했던 가문 출신이었는데 특히 아버지인 오도 1세는 샤를마뉴의 아내인 힐데가르트의 조카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에르멩트루드는 842년 황제 루도비쿠스 1세의 막내아들이자 이제 서프랑크 왕국을 분할받았던 샤를(카롤루스 2세)와 결혼합니다. 이 결혼은 정치적 목적이 강했던 것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물론 에르멩트루드는 왕비로써의 국왕의 아내로써 여러가지 일을 수행했지만 그녀의 남편인 카롤루스 2세(샤를 2세)는 아내의 의무가 자녀들을 낳는 것이라 여겼었다고 합니다. 

 

카롤루스 2세, 샤를 2세, 대머리왕 샤를, the bald라는 별명으로 알려져서 대머리라고 불리는데 사실 대머리가 아니라고 하네요 -0-;;;

 

아마도 이것은 복잡한 정치적 문제등과 더해져 에르멩트루드가 866년 수녀원으로 가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에르멩트루드는 왕비로 20여년간을 살았으며 심지어 10명 이상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인 샤를은 더많은 아들을 원한다는 이유로 에르멩트루드를 수녀원으로 보내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에 자녀가 없던 사라가 자신의 하녀를 아브라함에 줘서 아들을 낳은 이야기를 근거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게 뭐야 -0-;;;)

 

아마 이에 대해서는 카롤루스 3세에게 에르멩트루드는 더이상 정치적으로 중요하지 않았으며, 그녀보다 더 중요한 정치적 연결고리가 될수 있는 여성을 왕비로 올리고 싶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하지만 에르멩트루드는 20년 이상 왕비였으며 그에게 아들들도 왕창 낳아준 사람이었기에 쉽게 쫓아낼수 없었고 아마 이런식으로 그녀가 궁정에서 물러나도록 만들었던듯합니다.

 

어쨌든 에르멩트루드는 수녀원에 들어간지 몇년 되지 않아서 사망했으며 그녀가 죽은뒤 카롤루스 3세는 리칠드와 재혼한다고 합니다.

 

에르멩트루드는 카롤루스 3세와의 사이에서 10명 이상의 자녀를 낳았었으며 그녀의 장남인 루이는 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서프랑크 왕국을 이어받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