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그냥 할려니 여기 복잡한 상황을 해야해서 말입니다.
게다가 왕비들은 자료도 없고 말입니다. -0-;;;;
이거 말고 로베르티안 가문도 해야하는것 아닌가 싶네요 -0-;;;
요즘 글 읽기 싫어서 미치겠는데 읽어야할 것들이 너무 많군요 -0-;;;
프랑스의 왕비들...번외편 13. 루이 르 베그 사후 서프랑크 왕국 상황
루이 르 베그는 정치적 역략이 크지 않다고 여겨졌었습니다. 그는 점차 강성해지던 귀족세력을 억누르지 못했으며 게다가 왕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망하면서 후계자 문제마저도 발생하게 만듭니다.
루이가 죽었을때 그의 두 아들인 루이와 카를로만이 있었으며 아내였던 파리의 아델라이드는 임신중이었습니다.
궁정에서는 루이의 새어머니였던 프로방스의 리칠드가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은 리칠드가 자신의 형제인 프로방스 백작을 왕위에 올릴려고 계획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리칠드의 세력은 그만큼 되지 않았었죠.
귀족들이 지지하던 인물은 루이의 전 곃혼으로 태어난 두 아들들인 루이와 카를로만이었습니다. 사실 귀족들은 루이를 국왕으로 선출했지만 결국 형제가 공동국왕으로 즉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파리의 아델라이드가 낳은 유복자인 샤를은 사실 상황이 더 애매했는데 루이와 카를로만이 적자로 인정되었긴 하지만 사실 파리의 아델라이드와 루이 르 베그가 결혼하면서 둘의 어머니와 헤어졌기에 둘의 적자 상황이 불안정했었습니다. 이때문에 결국 이것은 아마도 정치적 문제로 발전했을 듯하며, 루이와 카를로만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아델라이드의 결혼과 샤를의 적자 지위에 의문을 제기했었습니다.
아마 이런 상황은 왕권이 더욱더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바이킹들이 북유럽을 떠나서 이제 다른 지역으로 옮겨왔으며 이것은 나라를 더욱더 혼란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루이와 카를로만 모두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서프랑크의 귀족들이 루이와 카를로만의 이복동생인 샤를을 국왕으로 선택한것이 아니라 더 강력한 인물이었던 동프랑크의 국왕이자 황제였던 카롤루스 3세(샤를3세)를 국왕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카롤루스 3세의 통치에 대해서 제국 전반으로 반란이 일어났으며 결국 카롤루스 3세는 퇴위하게 됩니다. 그가 퇴위한 뒤 이탈리아, 동프랑크,서프랑크는 각각 다른 인물들이 왕위에 오르는데, 서프랑크는 당대 강력한 귀족이었던 외드Eudes(오도)가 서프랑크의 국왕으로 선출됩니다. 외드는 파리 백작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바이킹이 파리를 공격했을때 이를 막아낸 인물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외드가 왕위에 올랐을때 여전히 바이킹들이 프랑스를 침공하고 있었으며, 뿐만 아니라 귀족들의 반발에도 부딪혔는데 왜냐면 루이 르 베그의 적자아들이었던 샤를이 왕위에 올라야한다고 주장했으며 이에 대해서 동조하는 귀족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외드의 시기는 매우 혼란했었으며 왕권 역시 이전보다 더 많이 약했었습니다. 계속해서 여러지역의 분열을 막지 못했으며 또 샤를의 세력이 점차 커지는 것 역시 억누를수 없었습니다. 결국 외드는 죽기전 자신의 후계자로 샤를을 인정했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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