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사실 이걸 글을 하나로 썼었는데 너무 길어서 두개로 나눕니다만 왠지 나누는 분량에서 실패한것 같습니다. =-=
유럽의 통치 가문들...번외편7. 1차 스코틀랜드 독립전쟁(두번째)
1303년 5월부터 시작된 전투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 군에 의해서 거의 점령당했으며 주요 지도자들 대부분이 잉글랜드에 항복하게 됩니다. 항복을 거부하던 이들도 결국에는 잉글랜드 측의 회유등을 통해서 모두 항복하게 되죠. 남은 이는 스코틀랜드의 가디언중 한명이었던 존 드 술리스와 윌리엄 월리스 둘밖에 없었으며 존 드 술리스는 해외에 머물고 있었기에 스코틀랜드에 남은 유일한 인물은 윌리엄 월리스 밖에 없게 됩니다. 윌리엄 월리스는 여전히 잉글랜드 국왕에게 충성맹세를 거부하고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통합되는 것을 거부한 인물로 남았습니다. 이것은 에드워드 1세가 그를 반란의 수괴로 규정하고 어떻게든 처형하려고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와중에 스코틀랜드 핵심귀족이었던 로버트 더 부르스는 다른 핵심귀족과 몰래 협약을 맺습니다. 비록 그들은 지금은 잉글랜드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늙은 국왕이 죽고 난뒤를 도모하겠다는 것이었죠. 이들의 협약과는 별도로 에드워드 1세는 기어이 윌리엄 월리스를 사로잡았으며 그를 처형합니다.
윌리엄 월리스의 상
윌리엄 월리스가 죽은뒤, 스코틀랜드는 거의 다 잉글랜드의 수중에 들어간듯했으며 에드워드 1세는 더 강하게 이들을 옥죄게 됩니다. 특히 가장 강력한 인물중 하나였던 로버트 더 부르스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게 되죠. 사실 이런 상황에서 로버트 더 부르스는 스코틀랜드 왕위계승권리를 주장하기 힘들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영지 상당수가 잉글랜드에 있었으며 또 그에게는 보호해야할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로버트 더 부르스가 이전에 맺었던 비밀 협약이 드러나기에 이르게 됩니다.
1306년 로버트 더 부르스는 잉글랜드 궁정에서 도망쳐서 스코틀랜드로 갔으며 자신의 라이벌인 존 코민을 만났으며 그를 교회에서 살해합니다. 교회 안에서 살인을 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범죄이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서 스코틀랜드 측과 잉글랜드 측의 반응이 다르다고 합니다. 스코틀랜드 측의 기록에서는 존 코민을 비난하면서 그가 배신했기에 로버트 더 부르스가 그를 살해했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잉글랜드 측 기록에는 로버트 더 부르스가 존 코민을 악의를 가지고 살해했다고 주장합니다.
로버트 더 부르스가 존 코민을 죽인것에 대해서 존 코민이 로버트 더 부르스를 배반하고 잉글랜드에 밀고해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고 자신의 정적이었던 존 코민에 대해서 악감정을 가지고 있던 로버트 더 부르스가 자신의 왕위게승에 위협이 되자 그를 죽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코민을 살해하는 로버트 더 부르스
코민을 죽인 뒤 로버트 더 부르스는 글래스고로 가서 글래스고 주교를 만납니다. 교회에서 사람을 죽인 로버트 더 부르스에 대해서 글래스고 주교는 그를 파문하지 않고 도리어 그를 지지하게 됩니다. 이것은 로버트 더 부르스가 교회의 지지를 얻는 계기가 됩니다. 교회의 지지를 얻게 된 로버트 더 부르스는 결국 1306년 3월 25일 귀족들과 성직자들에 의해서 스코틀랜드의 국왕으로 대관하게 됩니다.
로버트 더 부르스는 스코틀랜드의 국왕으로 대관한뒤 잉글랜드와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순조롭지 않았고 그는 전투에서 패배해서 간신히 목숨만 건지게 되죠. 그리고 그의 아내와 딸들, 그리고 형제 자매들은 모두 잉글랜드의 포로가 됩니다. 그의 세 남동생들은 본보기로 교수형 당하게 되죠.
하지만 로버트 더 부르스는 숨어서 자신의 세력을 다시 모았으며 1307년부터 다시 잉글랜드와의 전투를 시작해서 조금씩 승리를 얻게 됩니다. 결정적으로 1307년 7월 에드워드 1세가 사망하자 그는 더욱더 큰 기회를 얻게 되었으며 1314년 배넉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사실상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 전투이후 그는 인질로 잡혀있던 아내와 누이동생 딸들을 모두 데려올수 있었습니다.
로버트 더 부르스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1세
그리고 1320년 교황으로부터 스코틀랜드의 국왕임을 승인받았던 로버트 더 부르스는 잉글랜드에서 내전이 일어나 에드워드 2세가 죽고 에드워드 3세가 즉위할때쯤 잉글랜드로 향했으며 결국 나라의 안정이 필요했던 에드워드 3세(사실은 이자벨과 로저 모티머)는 로버트 더 부르스와 협정을 체결해서 그를 스코틀랜드의 국왕으로 인정했고 드디어 스코틀랜드는 완전한 독립국으로 인정받았으며 부르스 가문이 스코틀랜드를 통치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쓰고있는글들 > 금요일 : 유럽의 통치 가문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럽의 통치 가문들...번외편8. 데이비드 2세 이후의 부르스 가문 (0) | 2020.04.24 |
---|---|
유럽의 통치 가문들...(16) 부르스 가문 : 스코틀랜드의 왕가 (0) | 2020.04.17 |
유럽의 통치 가문들...번외편6. 1차 스코틀랜드 독립전쟁 (첫번째) (0) | 2020.04.03 |
유럽의 통치 가문들...(15) 발리올 가문 : 스코틀랜드의 국왕 존 발리올의 가문 (0) | 2020.03.27 |
유럽의 통치 가문들..번외편5. 알렉산더 3세 이후의 계승문제 (0) | 2020.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