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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258) 알렉산더 스튜어트와 캐서린 스튜어트 : 제임스 4세의 자녀들

엘아라 2020. 2. 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0-;원래 쓰던 글을 안쓴지가 두달 정도밖에 안되었거든요.

그런데 왜이리 생소한것일까요. 흑...머리가 텅텅비었나봐요..ㅠ.ㅠ


정부들과 그 후손들...(258) 알렉산더 스튜어트와 캐서린 스튜어트 : 제임스 4세의 자녀들


제임스 4세는 마리온 보이드와의 사이에서 세명정도의 아이를 낳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중 아이 한명은 영유아기를 넘기지 못했다고 알려져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스튜어트

세인트 앤드류스의 대주교

Alexander Stewart 

(c. 1493 – 9 September 1513) 


알렉산더 스튜어트는 제임스 4세의 첫아이였습니다. 그가 태어났을때 제임스 4세는 마리온에게 매우 빠져든 상황이었으며 그녀를 위해서 뭐든 다 해줄듯했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제임스 4세는 알렉산더를 자신의 아들로 인정했을뿐만 아니라 궁정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고 합니다.



제임스 4세


아마도 제임스 4세는 자신의 장남에게 안정적 지위를 부여해주길 바랬었던듯합니다. 그래서 알렉산더 스튜어트는 어린시절부터 교회에 들어가게 됩니다. 특히 제임스 4세는 동생이자 세인트 앤드류스의 대주교였던 제임스 스튜어트가 사망하자 그의 지위를 아들에게 잇게 하죠. 이때 알렉산더의 나이는 고작 11살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마 세인트 앤드류스의 대주교가 가진 수입을 아들에게 주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입니다.


알렉산더는 어려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았음은 물론 1507년에는 유럽대륙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프랑스로 갔으며 이후 저지주들과 이탈리아로 갔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의 파두아에서는 에라스무스에게서 수사학과 그리스어를 배웠습니다. 이때문에 후에 에라스무스는 알렉산더가 사망한후 그에 대한 회고록을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1510년 알렉산더는 스코틀랜드로 돌아왔으며 스코틀랜드 의회의원이 되기도 합니다. 또 알렉산더는 1511년 세인트 앤드류스에 세인트 레널드스 칼리지를 세우기도 했었습니다.



세인트 레널드스 칼리지의 문장


알렉산더는 1513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간의 전투였던 플로든 전투에서 아버지인 제임스 4세와 함께 전사했습니다.



캐서린 스튜어트

모튼 백작부인

Catherine Stewart. 

(d. after 1554) 


제임스 4세와 마리온 보이드의 딸이었던 캐서린 스튜어트는 아마도 아버지의 장녀로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많이 없지만 아마 오빠의 예에서 보듯이 그녀 역시 훌륭한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캐서린은 3대 모튼 백작이었던 제임스 더글라스와 결혼했었고 그와의 사이에서 세명의 딸인 마거릿,베아트리스,엘리자베스를 낳았다고 합니다.



모튼 백작의 문장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