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프랑스

마자리네트와 그 후손들...(25) 콜론나 가문

엘아라 2019. 7. 1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ㅠ.ㅠ 마리의 둘째아들은 어째 자료가 없네요. 흑.


그래서 그냥 적당히 건너뛰기로 했습니다. -0-;;;



마자리네트와 그 후손들...(25) 콜론나 가문


이탈리아의 콜론나 가문은 이탈리아의 오래된 귀족 가문중 하나로 교회에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가문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콜로나 가문은 11세기경 인물이었던 투스쿨룸의 백작 그레고리우스 3세의 아들이었던 "페드로 데 콜룸나"로 부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투스쿨룸의 백작은 로마 인근의 영지를 가지고 있던 강력한 귀족 가문이었으며 이때문에 콜론나 가문은 후에 자신들의 선조가 율리우스-클라디우스 가문과 연결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콜론나 가문의 문장


주로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 가문에서 처음으로 교회에 고위층 지위를 얻은 인물은 13세기 인물이었던 지오바니 콜론나로 가문에서 처음으로 추기경이 된 인물이었습니다. 이후 콜론나 가문 사람들은 교회에서 여러 고위직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가문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연관되는데 이를테면 역시 콜론나 가문 출신의 수녀였던 마르게리타 콜론나는 수녀로써 수많은 선행을 했으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헌신했기에 추종자들이 많았으며 결국 19세기에 시성되기까지 했습니다.



지오바니 콜론나

콜론나 가문의 첫 추기경



교황과 황권이 대립할때 콜론나 가문은 역시 분열됩니다. 시작은 1297년 추기경이었던 지아코모 콜론나와그의 형제들이 영지를 두고 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추에 시아라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추기경은 자신의 영지를 모두 독차지하려했고 이때문에 다른 형제들은 교황 보니파시오 8세에게 이를 제소합니다. 교황은 추기경에게 영지를 분배하라고 요구했으며 이를 응하지 않는 추기경과 그 추종자들을 파문하기에 이르게 되고 결국 전쟁으로 이를 해결했었고 교황측에 선 사람들이 승리를 거두게 되었으며 결국 교황에게 쫓겨나게 되죠. 이에 추기경은 교황의 적이었던 프랑스의 필리프 4세와 손을 잡았고 결국 교황은 필리프 4세와 대립하다가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죠. 이후 교황의 세력은 약해졌으며 특히 교황들이 한동안 아비뇽에서 지냈었기에 이탈리아내 교황의 세력을 많이 약해집니다. 하지만 이때 콜론나 가문은 이탈리아에 남아서 교황이 없는 교황령에서 세력을 확장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5세기에 이르러서는 콜론나 가문에서는 교황이 나오게 되죠. 바로 마르티노 5세가 콜론나 가문 출신의 교황이었습니다.


교황 마르티노 5세

콜론나 가문 출신의 교황



이런 콜론나 가문은 여러 분가들이 있었는데 마리 만치니가 결혼한 가문은 팔리아노를 중심으로 영지를 상속받던 가문이었습니다. 이 가문은 시칠리 왕국과 연결고리가 깊은 가문이었는데 시칠리 왕국이 아라곤 국왕이 통치하던 지역이었으며, 아라곤 왕국이 에스파냐를 구성하면서 결국 에스파냐와 연결고리가 깊은 가문이 됩니다. 이 가문은 시칠리에서 고위 귀족가문이자 관리로 일했었기에 자연히 에스파냐 국왕의 신하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를테면 마리의 남편인 8대 공작이었던 로렌초 콜론나 역시 황금양모기사단의 훈장을 수여받은 고위 귀족중 하나이기도 했었죠. 가문은 18세기까지 통치 영주의 지위를 유지합니다만 나폴레옹 전쟁이후 가문의 통치 군주 지위는 상실했으며 이후 이 가문은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으로 남게 됩니다. 



마리 만치니의 남편인 로렌초 콜론나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