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프랑스

마자리네트와 그 후손들...(15) 수아송 백작가문

엘아라 2019. 5. 1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참 자료가 없네요 -0-;;;;


마자리네트와 그 후손들...(15) 수아송 백작가문


수아송 백작령은 아주 오래된 프랑스의 백작령중 하나였습니다. 첫번째 수아송 백작이었던 베르망두아 백작 에르베르 1세는 샤를마뉴의 현손이기도 했었습니다. 이후 수아송 백작령은 오래도록 프랑스를 구성하는 영지중 하나로 이어지게됩니다.


수아송 백작령 자체는 상속 관계를 통해서 이가문 저가문등이 상속하는데, 16세기 수아송 백작령의 상속녀였던 마리 드 룩셈보리가 프랑스 왕가의 방계 가문이었던 부르봉 가문출신인 방돔 백작 프랑수아 드 부르봉과 결혼하면서 수아송 백작령은 부르봉 가문의 영지가 됩니다. 이 마리 드 룩셈보리의 증손자인 앙리가 부르봉 가문 출신의 국왕인 앙리 4세가 되면서 부르봉 가문이 프랑스 왕가가 되죠.



방돔 백작 프랑수아 드 부르봉

프랑스의 앙리 4세의 증조 할아버지

수아송 백작령의 상속녀였던 마리 드 룩셈보리와 결혼한 인물


수아송 백작령은 앙리 4세의 숙부였던 콩데 공 루이 드 부르봉이 상속받게 됩니다. 그리고 콩티 공의 아들중 한명이었던 샤를 드 부르봉이 이 수아송 백작령을 상속받았죠. 이렇게 되면서 수아송 백작은 프랑스 왕가의 방계 가문으로 인정받으면서 프랑스 궁정에서는 "무슈 르 콤트"라는 칭호로 불리게 됩니다. 이름없이 불리는 이런 칭호는 왕가의 방계 가문을 의미하는데 이를테면 국왕의 동생은 궁정에서 그냥 "무슈"라고 불렸고, 국왕의 제수는 "마담"이라고만 불렸다고 합니다.



콩데 공 루이 드 부르봉

앙리 4세의 숙부, 수아송 백작


이 수아송 백작 지위가 사보이아 가문으로 가게 된것은 샤를 드 부르봉의 아들인 루이 드 부르봉이 적자 없이 사망하면서 그 지위를 샤를의 딸이자 루이의 여동생인 마리 드 부르봉이 상속받게 되면서입니다. 마리 드 부르봉은 이탈리아의 사보이아 공작 가문 출신이었던 카르냐노 공 토마소 프란체스코 디 사보이아와 결혼했었고 둘의 둘째아들인 외젠 모리스가 어머니의 수아송 백작령을 물려받아서 수아송 백작이 됩니다.



남편인 카리냐노 공 사보이의 토마스 프란체스코의 초상화 앞에 있는 마리 드 부르봉

수아송 백작령의 상속녀


그리고 이 외젠 모리스가 마자리네트 중 한명이었던 올림피아 만치니와 결혼했었습니다.


올림피아 만치니는 외젠 모리스와의 사이에서 여러 아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올림피아 만치니는 루이 14세의 미움을 받았으며 그녀의 자녀들 역시 프랑스 왕가의 방계 가문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궁정에서 무엇인가 할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결국 올림피아 만치니의 아들중 한명이었던 외젠은 프랑스에서 일할수 없는 것을 깨닫고 프랑스의 적이었던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가서 일을 하는데 그는 매우 뛰어난 군인이자 장군으로 "오이겐 폰 사보이엔"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알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외젠의 형이자 수아송 백작이었던 루이 토마스 역시 동생을 따라 오스트리아 군으로 복무했으며 이후 가문 사람들은 오스트리아 궁정에서 일하게 되죠. 



수아송 백작 엠마누엘 토마스 드 사부아

올림피아의 손자이자 외젠의 조카



올림피아 만치니의 증손자이자 루이 토마스의 손자였던 외젠 장은 마지막 수아송 백작이 됩니다. 그는 대리결혼을 치룬지 13일 만에 사망하게 됩니다. 그의 아내이자 마사 공작령과 카르라라 공령의 상속녀였던 마리아 테레사 키보-말라스피나는 이 결혼을 무효화하고 난뒤 모데나 공작이었던 에콜레 3세와 결혼했으며 둘의 외동딸인 베아트리체 데스테는 후에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인 페르디난트 대공과 결혼해서 오스트리아-에스테 분가를 형성하게 됩니다.


외젠 장이 사망한후 수아송 백작령은 다시 프랑스 왕가로 돌아가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