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프랑스

마자리네트와 그 후손들...(13) 올림피아 만치니 : 수아송 백작부인(두번째)

엘아라 2019. 4. 2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마자리네트와 그 후손들...(13) 올림피아 만치니 : 수아송 백작부인(두번째)



올림피아 만치니

수아송 백작부인

Olympia Mancini, Countess of Soissons 

French: Olympe Mancini 

(11 July 1638 – 9 October 1708)



올림피아는 당대 기준으로 그다지 아름다운 여성은 아니라고 알려져있었습니다만 위트있고 매력적인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루이 14세는 이런 여성들을 좋아했기에 당연히 올림피아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었죠. 하지만 그녀가 국왕의 정부라는 소문이 돈데는 어쩌면 이후 계속해서 음모에 연루되는 올림피아에게 원인이 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만치니 자매들

왼쪽에서 부터 올림피아, 오르탕스,마리



결혼후에 올림피아는 루이 14세의 사촌이자 제수였던 "마담" 앙리에트 안과 매우 친한 사이가 됩니다. 앙리에트 안은 어린시절부터 프랑스 궁정에서 지냈었으며 루이 14세와 남편인 오를레앙 공작과도 잘 아는 사이였었습니다. 루이 14세는 어린시절에는 사촌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지만 결혼후 점차 아름다워지는 앙리에트 안에 대해서 호의적 감정을 가지게 되었죠. 앙리에트 안의 입장에서도 "동성연애자"로 여자같이 꾸미고 다녔다는 남편 오를레앙 공작보다 시아주버니인 루이 14세에게 좀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오빠인 찰흐 2세와 루이 14세의 외교적 관계를 연결해주는 연결고리이기도 했었기에 국왕과 마담의 사이는 좀더 가까워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모후인 안 도트리슈는 걱정했었죠. 


앙리에트 안

오를레앙 공작부인


올림피아는 루이 14세와 앙리에트 안에게 둘의 관계를 감추게 하기 위해서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를 소개시켜줬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루이 14세는 이 조용하고 성실했던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에게 반해버리게 되고 결국 그녀가 국왕의 정부가 됩니다. 올림피아는 아마도 루이즈가 국왕의 총애를 받는것에 대해 화가 났을것이며 이에 대해서 결국 공식적으로 밝혀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왕비인 마리 테레즈는 힘이 없었으며 루이즈는 루이 14세의 공식 정부가 되었습니다.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

루이 14세의 첫번째 공식 정부

그녀는 루이 14세의 사랑을 잃은후 수녀원에서 죄악속에서 살았던 삶을 속죄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이후 올림피아는 자질구레한 궁정 음모에 가담하면서 살아갔었습니다. 아마도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가 몰락하고 마담 드 몽테스팡이 득세하는 것을 보면서도 여전히 루이 14세가 자신에게 다시 관심을 갖길 바랬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그녀가 큰 사건에 연루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1677년부터 프랑스 궁정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독살사건"이라고 알려진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한 부인이 상속을 위해 가족을 독살했다는 사건에서 시작합니다. 이후 독약을 만들었다는 사람이 체포되면서 그녀가 독약과 흑마술을 사용했으며 여기에 수많은 프랑스 귀족여성들이 관여되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여러명이 있었는데 마지막에는 국왕의 정부였던 마담 드 몽테스팡까지 연루되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1679영 올림피아 역시 이 사건에 연루되는데 그녀는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를 독살하려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루이 14세는 그녀가 그에 대해서 "내게 돌아오거나 아니면 당신은 나에게 미안해해야할것이다"라고 말했다는데 경악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남편과 왕가 사람들을 독살하려랬다는 혐의까지 추가되었으며 결국 올림피아는 프랑스 궁정을 떠나라는 명을 받게 됩니다.


마담 드 몽테스팡

루이 14세의 오랜 정부였지만 그녀 역시 독살사건에 연루되면서 루이 14세에게서 버림받게 됩니다.



올림피아는 프랑스 궁정을 떠나서 에스파냐로 갑니다. 에스파냐에는 루이 14세의 조카이자 앙리에트 안의 딸인 마리 루이즈 도를레앙이 왕비로 있었으며 아마도 마리 루이즈는 어머니의 친구였던 올림피아를 받아들였을 듯합니다. 하지만 1689년 마리 루이즈 도를레앙이 사망한 뒤에 올림피아는 에스파냐에서도 추방당하게 됩니다. 프랑스에서 독살사건과 연루되었었기에 올림피아는 마리 루이즈 도를레앙이 갑자기 사망하자 그녀를 독살했다는 의심을 받게 된것이죠. 그 이유는 카를로스 2세의 모후였던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마리 루이즈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고 손자를 낳아줄 며느리를 얻게 하기 위해서 독살하려했고 올림피아가 여기 관여했다는 소문이 돌게 된 것이었죠.


마리 루이즈 도를레앙

에스파냐의 왕비

앙리에트 안의 딸


올림피아는 에스파냐를 떠나 브뤼셀로 가게 됩니다만 그녀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이후 올림피아는 동생들인 오르탕스와 마리와 함께 자주 잉글랜드로 가고는 했다고 합니다. 올림피아는 평생 프랑스로 돌아갈수 없었으며 1708년 브뤼셀에서 사망합니다.


올림피아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여덟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중 그녀의 아들인 외젠은 신성로마제국의 제국군 원수가 되는 인물이었죠. 외젠은 사실 군인이 되고 싶어했지만 루이 14세는 올림피아를 용서하지 않았고 그녀의 자녀들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지 않았기에 결국 프랑스에서 군인으로 출세할 가능성이 없었기에 오스트리아로 갔던 것입니다. 


올림피아의 아들 외젠 드 사부아

오스트리아의 총사령관으로 독일식인 "오이겐 폰 사보이엔"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알려진 인물입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