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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자리네트와 그 후손들...(17) 외젠 드 사부아 : 올림피아 만치니의 아들(두번째)
외젠 드 사부아
오이겐 폰 사보이엔
에우제니오 디 사보이아
Prince Eugene of Savoy
Eugène, Eugen von Savoyen, Eugenio;
(18 October 1663 – 21 April 1736)
제국의 궁정으로 간 외젠은 황제 레오폴트 1세에게 환대를 받게 됩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은 오스만제국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었고, 후에는 빈이 함락당하기 직전에 이를정도로 위협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프랑스는 이교도에 위협을 당하고 있던 제국에 대해서 그리 적극적인 협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전통적으로 프랑스와 합스부르크가문의 경쟁관계였던것과 또 하나 전통적으로 프랑스가 오스만제국과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했던 것이 이유일듯합니다.
황제 레오폴트 1세
아마 이런 상황은 황제 레오폴트 1세가 프랑스를 극히 싫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황제는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할줄 알았지만 프랑스를 싫어해서 프랑스어로 말하지 않았고 외젠도 황제와 만났을때 이탈리아어로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레오폴트 1세가 외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것은 외젠의 증조할머니가 펠리페 2세의 딸이었던 점과 사보이 공작이 그와 친척관계였던 것에 있습니다. 레오폴트 1세는 늘 프랑스와 합스부르크가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사보이 공작 가문에 대해서 적어도 프랑스와 좀더 가까워지길 원치 않았고, 사보이 가문의 방계 가문 출신인 외젠이 이 중재 역할을 하길 바랫다고 합니다.
사보이의 공작 비토리오 아메데오
후에 사르데냐의 국왕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
외젠과 비토리오 아메데오는 모두 사보이의 공작 카를로 엠마누엘레 1세의 후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황제의 환대를 받으면서 외젠은 오스만 제국과의 전투에 참가할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전투를 경험하면서 군인으로 점차 성장해가게 됩니다. 1685년 말 22살의 외젠은 장군의 지위를 얻게 됩니다. 이때쯤에 대해서 알려진 자료는 별로 없지만 그의 친척이었던 사보이 공작이나 아니면 고종 사촌이었던 바덴 공은 외젠에 대해서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그리고 외젠은 더욱더 군인으로써의 명성을 쌓아가게 됩니다. 빈 포위 공격을 막아낸 인물중 하나였던 로렌 공작은 이후 오스만제국이 점령하고 있던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부다페스트)를 탈환했고 이후 오스만 제국은 트랜실바니아와 세르비아까지 물러나야했습니다. 이 전투와중에 외젠은 당연히 공을 세웠으며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황금양모기사단 훈장을 수여받을 정도가 됩니다.
부다를 다시 탈환한 로렌 공작
이렇게 오스만제국의 침략을 저지한 합스부르크 가문은 이제 다시 숙적이었던 프랑스와의 전쟁을 재개하게 됩니다. 이것은 루이 14세의 확장 정책과 맞물리는 것으로 유럽에서 세력을 넓혀가려던 프랑스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동맹을 맺었으며 결국 전쟁이 일어나게 되죠. 이것이 바로 9년 전쟁입니다.
9년전쟁동안 외젠은 점차 지위가 올라가게 됩니다. 그는 초반에 이탈리아 전선으로 가게 됩니다. 그의 친척이었던 사보이 공작과 협력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사보이 공작은 그를 그리 중요시하지 않았죠. 결국 외젠은 다시 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를 눈여겨 보고 있던 황제는 1693년 그를 육군사령관으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오스만제국이 다시 전투를 시작하면서 제국은 프랑스와의 전쟁이 아니라 오스만 제국과의 전투에 집중해야했으며 결국 9년 전쟁은 애매한 상황으로끝나게 됩니다. 제국은 오스만제국과의 전쟁에 집중했으며, 외젠은 1697년에는 제국군 총사령관으로 드디어 독립적 작전권을 행사할수 있는 지위에 이르게 되죠. 그리고 1697년 9월 11일 젠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외젠은 이교도로부터 유럽을 구한 영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 전투는 외젠에게 명성뿐만 아니라 부를 가져다 줬는데 황제는 그에게 많은 수입을 얻을수 있는 영지를 부여했었죠.
젠타 전투를 묘사한 역사화
19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을 몰아낸 합스부르크 가문은 다시 유럽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바로 에스파냐 계승전쟁이었죠. 에스파냐는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국왕이 통치하고 있었지만 카를로스 2세는 후손이 없었으며 에스파냐의 상속문제가 대두됩니다. 카를로스 2세의 조카이자 레오폴트 1세의 외손자가 왕위를 잇기로 되어있었지만 그가 일찍 사망하면서 상속문제가 대두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쪽에서는 레오폴트 1세의 둘째아들인 카를이 왕위계승을 주장했었고 프랑스쪽에서는 루이 14세의 손자였던 앙주 공작 필리프가 왕위계승을 주장합니다. 이 전쟁은 재미난 것은 처음에는 프랑스가 에스파냐까지 합병할 것을 걱정해서 여러 나라들이 합스부르크 가문을 지지했지만, 레오폴트 1세의 아들인 요제프 1세가 아들없이 사망하면서 에스파냐 왕위를 주장하던 카를이 황위를 잇게 되자 합스부르크를 지지하던 나라들이 이번에는 합스부르크가문이 거대해질것을 우려해서 편을 바꾸게 되는 양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외젠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에서 외젠은 매우 큰 성과를 보여줍니다. 적어도 루이 14세가 그를 거절했던 것을 후회할만한 성과를 보여주죠. 하지만 앞에서도 말한대로 중간에 카를 6세가 황제로 즉위하자 동맹들이 이탈했으며 이것은 결국 합스부르크 가문이 더이상 전쟁을 지속할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외젠은 황제에게 더이상 전쟁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이야기했으며 평화협정을 받아들여야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또 이 전쟁의 후속 처리과정에서 외젠은 군인으로써의 능력은 물론 외교관,협상가로써의 능력도 보여줍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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