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귀천상혼한 사람들은 자료가 쬐금밖에 없어서 더 찾으려니 힘드네요 흑
여기는 진짜 계보도를 다 훑어야하는데 그럴려니 너무 힘드네요 아하하..
그래서 대충 생각해둔 이야기 하나를 써볼까합니다. 바로 마자랭 추기경의 조카들인 마라리네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 일곱여성들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사실 그중에 두명인가 세명은 했어요.아하하 -0-;;
쉽게 말하면 일단 좀 날로 먹겠다는 생각인것이죠. 음..귀천상혼 자료를 더 찾던가 아니면 하던 시리즈를 다시 하던가(그래봤자 프랑스 혁명전쟁이나 상속녀정도인데 상속녀도 자료가 바닥이고 프랑스혁명전쟁은 읽기 싫고..ㅠ.ㅠ그렇습니다.) 아니면 새로운 시리즈를 고민해보던가 해야겠습니다. -0-;;;;;;;이참에 이탈리아쪽을 좀 볼까요? 이자보때문에 비스콘티 가문 하나만 봤는데도 머리 깨지겠던데 말입니다 ㅠ.ㅠ
마자리네트와 후손들...(1) 들어가면서
마자리네트Mazarinettes라고 불리는 일곱여성들은 프랑스의 추기경이자 루이 14세의 어린시절 수상이기도 했던 마자랭의 일곱조카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 일곱 조카들은 마자랭의 두 여동생들인 라우라 마르게리타 마자리니와 지롤라마 마자리니의 딸들이었습니다. 라우라 마리티니치와 안 마리 마리티니치는 라우라 마르게리타 마자리니의 딸들이었으며,라우라 만치니,마리 만치니,올림피아 만치니,오르탕스 만치니, 마리 안 만치니는 지롤라마 마자리니의 딸들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왕족과 귀족들과 결혼햇던 여성들입니다.
마자랭은 루이 13세시기의 관리가 되었으며 특히 루이 13세 시기의 유명한 수상이었던 리슐리외 추기경의 뒤를 잇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섭정이었던 루이 14세의 모후 안 도트리슈를 섭정으로 일할수 있도록 뒷받침 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안 도트리슈가 모후로 아들의 섭정으로 지위를 확고히 할수 있었던것은 모두 마자랭의 도움덕분이었죠. 그리고 마자랭 역시 이런 관계를 통해 프랑스의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마자랭은 루이 14세를 직접가르치기도 했었으며 아마 이런 상황은 루이 14세가 그에게 호의적이 되었으며 그가 죽을때까지 권력을 누릴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자랭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람으로 그는 루이 14세가 자신의 조카인 마리 만치니와 사랑에 빠졌을때 모후인 안 도트리슈가 둘의 관계를 정리하라고 한것을 지지했으며 조카를 서둘러 멀리 이탈리아로 시집보내버리기까지합니다.
마자랭 추기경
마자랭이 프랑스에서 자리를 잡게 되자 마자랭은 누이동생들과 그 가족들을 프랑스로 오게 하고 자신의 조카들을 프랑스 궁정에 들어오게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권력자였던 마자랭 스스로가 프랑스 귀족들을 믿지 못했기에 자신과 가까운 조카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하면서 편안함을 얻게 하려 했을 것입니다. 또 그는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가족들에게 좀 더 사회적 지위를 주려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권력자중 한명이 된 마자랭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조카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유력 가문으로 시집보냅니다. 마자랭은 공적으로 왕가로부터 수많은 지위와 재산을 부여받아서 매우 부유했으며 성직자인 그는 후손이 없었기에 이 부는 당연히 조카들에게 물려질것이기에, 마자랭이 살아있을때는 권력자 친척이, 죽은뒤에는 막대한 부가 손에들어올것이기에 마자랭의 조카들은 많은 가문에서 관심을 갖게 되었죠.
두아들인 루이 14세와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와 함께 있는 안 도트리슈
마자랭의 조카들은 왕가와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국왕의 모후였던 안 도트리슈는 마자랭의 조카들중 일부는 국왕인 루이 14세와 그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와 함께 공부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당대에는 보통의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었으며 결국 국왕의 어린시절 친구로써 국왕이 자라서도 엄청나게 이익을 얻을수 있는 상황이었죠. 또 안 도트리슈는 마자랭의 조카들을 왕가의 방계 가문 사람들과 동등하게 대우해줬다고 합니다. 이것은 안 도트리슈가 그만큼 마자랭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반증이 될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특별대우는 다른 사람들의 질투를 사게 마련이었죠. 마자랭의 조카들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당대 프랑스에서 미인으로 생각했던 모습과는 달랐는데 이에 대해서 비꼬는 시가 남아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라우라 마르타니치
마자랭의 조카
후에 모데나의 공작부인
그녀의 딸이었던 마리는 후에 잉글랜드의 국왕 제임스 2세(스코틀랜드의 제임스7세)와 결혼했었습니다.
마자랭의 조카들은 오래도록 외삼촌인 마자랭의 삶과 깊은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프롱드의 난 당시 마자랭의 조카들은 당연히 파리에서 쫓겨나야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왕당파의 승리로 마자랭의 권력은 확고해졌으며 이것은 마자랭의 조카들인 마자리네트들에게 높은 신분의 사람들과 결혼해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이를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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