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자료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뭐 써보니 파팍 줄일수 있는 내용이군요.=-=
스코틀랜드의 왕비들...번외편9. 단리경 헨리 스튜어트 : 메리 여왕의 남편(첫번째)
헨리 스튜어트
단리경
알바니 공작
Henry Stuart (or Stewart),
Duke of Albany
Lord Darnley
(7 December 1545 – 10 February 1567)
10대 시절
일반적으로 단리경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헨리 스튜어트는 4대 레녹스 백작인 매튜 스튜어트와 그의 아내인 레이디 마거릿 더글라스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부계로는 스코틀랜드 왕가와 모계로는 잉글랜드 왕가와 연결이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스튜어트 가문의 레녹스 백작 가문은 단리경으로 알려진 존 스튜어트가 제임스 3세로부터 백작 지위를 받아서 시작된 가문이었습니다. 존 스튜어트는 단리쪽의 스튜어트 가문의 분가로 4대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였던 알렉산더 스튜어트의 후손으로 알렉사더 스튜어트의 장남의 후손이 스코틀랜드 왕가를 형성했으며 차남의 후손이 바로 이 레녹스 백작 가문을 이루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단리경의 아버지인 매튜 스튜어트는 제임스 5세가 죽은뒤 애런 백작과 불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잉글랜드로 가서 잉글랜드에 머물게 됩니다.
헨리 스튜어트의 어머니인 레이디 마거릿 더글라스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5세의 왕비이자 잉글랜드의 헨리 7세의 딸이었던 마거릿 튜더가 남편이 죽은후 재혼했던 앵거스 백작 아치볼드 더글라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었습니다. 비록 레이디 마거릿 더글라스는 부계는 스코틀랜드 귀족이었지만 어머니가 잉글랜드 공주였기에 잉글랜드에서 지내게 됩니다. 그녀는 대부였던 울지 추기경이 돌봐주었고 추기경이 죽은 뒤에는 사촌이었던 메리 공주(블러디 메리)와 함께 성정했다고 합니다.
레녹스 백작 부부와 두 아들 그리고 손자인 제임스 6세
헨리 스튜어트는 이렇게 부모가 잉글랜드에서 살았기에 그 역시 잉글랜드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는 매우 재능있는 인물로 라틴어와 스코틀랜드에서 쓰는 게일어, 영어와 프랑스어를 잘했으며, 두 왕가의 친척이었기에 교육도 매우 잘 받아서 노래를 하고 류트를 켰으며 춤을 잘췄다고 합니다. 또 뛰어난 학자들이 그의 가정교사로 있었다고 합니다. 또 그는 매우 강인했고 운동을 좋아했으며 승마기술이 뛰어났으며 사냥을 매우 즐겼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잘 생긴데다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인물정도랄까요..)
헨리 스튜어트는 매우 매력적인 청년이었을 것이며 이런 그는 한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게 됩니다. 바로 과부가 되어서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였습니다. 하지만 그와 메리 스튜어트가 이루어 지는 것은 매우 복잡한 정치적 문제가 연관되어있기도 했었습니다.
메리 스튜어트
스코틀랜드의 여왕
레녹스 백작과 그의 아내는 각각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강력한 왕위계승 후보자들중 한명이었습니다. 레녹스 백작의 경우 할머니를 통해서 스코틀랜드 왕위계승권을 물려받았으며 애런 백작 다음으로 계승권을 주장할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메리 스튜어트가 후손없이 사망할경우 애런 백작이 추정왕위계승자가 될수 있었으며 그 다음이 바로 레녹스 백작이었습니다. 게다가 레녹스 백작의 경우 왕가와 같은 스튜어트 가문인점도 유리한 것이 될수 있었습니다. 레녹스 백작부인은 어머니인 마거릿 튜더를 통해서 잉글랜드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순위는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다음 순위였었죠. 결국 이런 상황은 부모로부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위계승권을 물려받은 단리경 헨리 스튜어트에게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계기가 됩니다. 게다가 레녹스 백작 가문 사람들은 점차더 야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여전히 메리 스튜어트에게는 후손이 없었고, 엘리자베스 여왕 역시나 결혼할 가능성이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결국 이런 상황에서 매력적인 단리경은 스코틀랜드로 가서 여왕 메리 스튜어트를 만났고 결국 가문의 야심을 이루는 계기를 만들게 됩니다.
헨리 스튜어트는 1561년 스코틀랜드에서 여왕 메리 스튜어트를 잠시 만나게 됩니다. 이때 메리는 남편인 프랑수아 2세의 상중이었죠. 아마도 매력적인 청년이었던 헨리 스튜어트는 메리 여왕의 눈길을 끌었던듯합니다. 그리고 그의 야심 가득한 부모는 아들을 스코틀랜드 여왕과 결혼시킬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여왕이자 메리 스튜어트가 잉글랜드 왕위계승을 주장한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스튜어트와 메리 스튜어트가 결혼하는 것은 명백하게 잉글랜드 왕위계승권을 노린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단리경과 메리 여왕은 모두 마거릿 튜더의 후손으로 엘리자베스가 후손없이 사망할경우 가장 왕위계승권리에 가까운 인물들이었는데 이 둘이 결혼해서 태어난 후손은 더욱더 확고한 계승권을 가질것이었습니다. 또 이것은 이전에 메리 스튜어트가 엘리자베스를 대신해서 왕위에 올라야한다고 주장했었던것과 맞물려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었죠.
동생인 찰스와 함께 있는 단리경 헨리 스튜어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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