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63) 포르투갈의 마리아 테레자 : 주앙 6세의 딸 (첫번째

엘아라 2018. 10. 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이때쯤 포르투갈이랑 에스파냐랑 혼인관계로 얽혀서 원래 복잡한 족보가 더 복잡해집니다. =-=


포르투갈의 인판타들...(63) 포르투갈의 마리아 테레자 : 주앙 6세의 딸  (첫번째)



인판타 마리아 테레자

에스파냐의 인판타

베이라 여공

Infanta Maria Teresa 

(29 April 1793 – 17 January 1874) 


포르투갈의 인판타 마리아 테레자Maria Teresa Francisca de Assis Antónia Carlota Joana Josefa Xavier de Paula Micaela Rafaela Isabel Gonzaga는 1793년 리스본에서 당시 왕위계승자였던 브라질공 주앙과 그의 부인인 에스파냐의 카를로타 호아키나의 첫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주앙은 마리아 1세의 아들이었으며 카를로타 호아키나는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4세와 그의 아내인 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의 딸이었습니다. 



마리아 테레자의 부모

포르투갈의 주앙 6세와 에스파냐의 인판타 카를로타 호아키나


왕위계승자의 첫번째 자녀로 마리아 테레자는 베이라 여공 칭호를 부여받습니다만 곧이어서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베이라 공 지위는 동생이 이어받게 됩니다. 1807년 포르투갈 왕가가 모두 브라질로 옮겨갈때 마리아 테레사 역시 왕실 가족들과 함께 브라질로 가게 됩니다.


마리아 테레자는 1810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사촌인 에스파냐의 인판테 페드로 카를로스와 결혼합니다. 인판테 페드로 카를로스는 마리아 1세의 외손자로 마리아 테레자의 고모인 마리아 빅토리아와 마리아 테레자의 어머니인 카를로타 호아키나의 사촌이었던 에스파냐의 인판테 가브리엘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려서 부모가 죽은뒤 외가인 포르투갈에서 성장했었으며 브라질에도 함께 왔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서로를 잘 알게 했을 것었기에 결혼을 선택했을듯합니다. 



아마도 마리아 테레자의 첫번째 남편인 인판타 페드로 카를로스로 추정되는 초상화



마리아 테레자와 인판테 페드로 카를로스는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었고 둘사이에 아들인 세바스티안 가브리엘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인판테 페드로 카를로스는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으며 1812년 사망했습니다.이때 마리아 테레자는 겨우 19살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부가 된 마리아 테레자는 다시 포르투갈 왕가가 에스파냐로 돌아갈때 함께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포르투갈의 왕위계승문제가 생겼을때 막내 동생인 미겔을 지지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미겔의 쫓겨가면서 그녀 역시 포르투갈에 남아있기 애매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며 그녀는 자신의 시집이자 외가이며 여동생이 시집간 에스파냐로 아들과 함께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여기서도 에스파냐 왕위계승문제에 휘말리게 욉니다.



아들 세바스티안 가브리엘과 함께 있는 마리아 테레자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