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포르투갈

포르투갈의 인판타들...(61)인판타 마리아 베네디타 : 주제 1세의 딸 (두번째)

엘아라 2018. 9. 2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요즘 허덕이면서 글을 쓰니까 힘드네요..ㅠ.ㅠ

놀면 이렇게 됩니다. -0-;;;


포르투갈의 인판타들...(61)인판타 마리아 베네디타 : 주제 1세의 딸 (두번째)




인판타 마리아 베네디타 

브라질 공비

Maria Benedita of Braganza 

(Maria Francisca Benedita Ana Isabel Antónia Lourença Inácia Teresa Gertrudes Rita Rosa; )

(25 July 1746 – 18 August 1829) 



마리아 베네디타는 남편인 주제와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후계자를 낳지는 못했습니다. 그녀는 두번 유산만을 했었죠. 그리고 1788년 27살이었던 마리아 베네디타의 남편인 주제가 천연두로 사망하게 됩니다.주제의 죽음은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가장 큰 영향을 마리아 베네디타의 언니이자 주제의 어머니였던 마리아 1세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킨것이었습니다. 남편이 죽은후 마리아 베네디타는 사회사업에 전념하는데 교회와 수도원을 건설했으며 또 군인들을 위한  병원과 요양시설을 만드는 등의 일을 했다고 합니다.



주제, 브라질 공, 브라간사 공작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이후 유럽에 프랑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이 이어지면서 포르투갈 역시 휩쓸리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려했으며 영국의 동맹이었던 포르투갈은 결국 전장이 됩니다. 포르투갈 본국이 위험에 처하자 포르투갈 왕가는 포르투갈을 떠나 바다 건너에 있던 식민지인 브라질로 이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807년 왕실 가족들 모두가 떠날때 마리아 베네디타 역시 함께 떠났었습니다.



포르투갈을 떠나는 포르투갈 왕사 사람들과 정부 요인들



마리아 베네디타는 다른 왕실 가족들과 함께 오래도록 브라질에 머물렀었는데 이동안 그녀의 재산에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녀는 다른 포르투갈 왕실 가족들처럼 프랑스의 점령기간동안 수입이 급격하게 줄었고 이런 문제는 그녀의 사회사업에 영향을 줬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런 문제는 왕실의 다른 가족들이 그녀의 수입을 보충해줘야했었다고 합니다.


포르투갈 왕실은 브라질에서 오래 머물렀는데 심지어 프랑스가 물러간 뒤에도 브라질에 남아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포르투갈 본국의 혼란을 초래했고 잘못하면 왕위를 잃을 가능성마저 있었기에 주앙 6세는 1821년 포르투갈로 돌아갔고 마리아 베네디타  한참뒤인 1827년 역시 결국 브라질에서 포르투갈로 돌아오게 됩니다. 



마리아 베네디타


마리아 베네디타는 포르투갈로 돌아온 2년뒤인 1829년 83살의 나이로 리스본에서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