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벌써 9월이군요..ㅠ.ㅠ
스코틀랜드의 왕비들...(34) 마리 드 기즈 : 제임스 5세의 왕비(두번째)
마리 드 기즈
Mary of Guise
(22 November 1515 – 11 June 1560)
제임스 5세와 마리 드 기즈
마리 드 기즈가 과부가 된 이후 마리는 주목받게 됩니다. 바로 아내인 마들렌을 잃은 제임스 5세가 역시나 프랑스 출신의 신부를 찾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5세는 마리 드 기즈와의 결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후대의 이야기에서 제임스 5세가 특히 마리 드 기즈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그녀를 이전에 이미 봤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져온다고 합니다. 또 제임스 5세가 프랑스 출신의 신부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스코틀랜드가 여전히 잉글랜드에 대항해서 프랑스와의 동맹을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임스 5세
이 상황에서 잉글랜드 역시 마리 드 기즈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스코틀랜드-프랑스간의 동맹을 방해하기 위해서였습니다만 헨리 8세는 세번째 아내인 제인 시모어를 잃은 직후였기에 역시나 마리 드 기즈와의 혼담을 고려합니다. 이에 마리 드 기즈는 헨리 8세는 거절했는데 앤 불린을 참수형에 처했었기에 마리 드 기즈 역시 이를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목은 얇다면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앤불린이 죽기전 자신은 목이 얇아서 자신을 처형할 사람을 찾는것은 쉬울것이라고 농담했던것을 빗대서 이야기한것이라고 합니다. (목이 얇아서 참수형을 처할때 쉽게 목을 자를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잉글랜드의 헨리 8세
사실 마리는 남편와 막내아들을 잃은 직후라 새로운 혼담이 오가는 것에 매우 당황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의 집안인 기즈 가문은 정치적 야심이 많은것으로 알려져있었기에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리가 없었습니다. 특히 마리의 아버지인 기즈 공작은 딸을 강력한 잉글랜드의 왕비로 보내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왕 프랑수아 1세는 잉글랜드를 견제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와의 동맹을 지속하고 싶어했고 결국 마리를 제임스 5세에게 시집보내기로 합니다. 그리고 제임스 5세와 마리가 결혼한다면 마리의 혼수는 공주만큼 해주기로 햇었다고 합니다.
1538년 1월 제임스 5세와 마리 드 기즈의 결혼협상이 성사되었고 혼수와 왕비의 재산등이 구체적으로 결정됩니다. 이후 마리 역시 결혼을 승락해서 1539년 5월에 마리는 제임스 5세와 대리 결혼을 치루게 됩니다. 제임스 5세는 이 대리결혼을 위해 수많은 귀족들을 보냈고 대리결혼을 치룬 마리는 바로 스코틀랜드로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출발은 마리 드 기즈에게는 슬픈일이기도 했는데 그녀의 아들인 프랑수아는 3세살이었지만 프랑스에 남아있어야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죽은후 롱그빌 공작이 되었기에 프랑스를 떠날수 없었던 것이죠.
마리는 어린 아들을 떼어두고 스코틀랜드로 갔고 1538년 6월 스코틀랜드에 도착했고 정식으로 제임스 5세와 결혼을 합니다. 제임스 5세의 어머니인 마거릿 튜더는 새며느리에 대해서 매우 호의적이었다고 합니다.
제임스 5세와 마리 드 기즈
마리 드 기즈는 결혼후 곧 아이를 낳습니다. 1540년에는 아들인 제임스를 1541년에는 아들인 로버트를 낳습니다만 두 아들을 1541년 같은날 잃게 됩니다. 이 상황은 아마도 마리와 제임스 5세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마리의 어머니인 앙투아네트는 딸에게 둘은 젊으니 아직 아이를 더 낳을수 있다고 위로해주게 됩니다.
그리고 마리는 곧 다시 임심을 합니다. 그리고 1542년 딸인 메리를 낳게 됩니다. 그녀의 남편인 제임스 5세는 잉글랜드와 전쟁중이었는데 전투에서 패배한후 매우 낙담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아내가 딸을 낳았다는 소리에 "it came wi a lass, it'll gang wi a lass" 라는 말을 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대충 여성에게서 시작해서 여성으로 끝난다라는 뜻으로 스튜어트 가문이 여성계승자의 권리를 통해서 왕위계승권리를 얻었기에 여성에게서 시작했지만 결국 자신의 유일한 자녀가 딸인 메리가 될것이고 결국 아들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아마도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었던듯합니다.
제임스 5세는 메리가 태어난 6일후에 사망합니다. 그리고 태어난지 6일만에 메리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되죠. 마리 드 기즈는 두번째 과부가 되었지만 이런것 프랑스에서의 상황과는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치적인 삶을 살아야하는 계기가 됩니다.
메리 스튜어트, 스코틀랜드의 여왕
마리 드 기즈의 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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