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주앙 1세는 아들들이 많아서 손녀들이나 증손녀들이 많을까 걱정했는데 음 두세대만 지나도 후손들이 없군요 -0-;; 뭐랄까 전부 성직으로 빠지거나 아니면 어디 상속녀와 결혼하는데 후손이 없고 그렇네요 훔...
포르투갈의 인판타들...(29) 코임브라의 이사벨 : 주앙 1세의 손녀
코임브라의 이사벨
포르투갈의 인판타
포르투갈의 왕비
Infanta Isabel of Coimbra
(Isabella of Portugal)
(1 March 1432 – 2 December 1455)
이사벨의 문장
코임브라의 이사벨은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1세의 손녀이자, 코임브라 공작 인판테 페드루와 그의 아내인 우르젤의 이사벨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이사벨의 아버지인 인판테 페드루는 주앙 1세의 둘째아들로 아버지인 주앙 1세가 제일 사랑한 아들이었으며, 형인 두아르트나 동생인 요한과도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는 세계 여러곳을 여행했으며 여행자로 잘 알려진 왕자이기도 했습니다.(그러고보니 동생이 항해왕 엔리케 -0-;;) 후에 형인 두아르트가 죽은뒤 조카인 아폰수 5세의 섭정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이사벨의 아버지
코임브라 공작 인판테 동 페드루
이사벨의 어머니인 우르젤의 이사벨은 우르젤 백작인 하이메 2세와 그의 아내인 아라곤의 이사벨의 딸이었습니다. 우르젤 백작 가문은 아라곤 왕가의 방계 가문으로 이사벨의 아버지인 하이메 2세는 아라곤의 알폰소 4세의 증손자였으며, 이사벨의 어머니는 아라곤의 국왕 페드로 4세의 딸이기도 했습니다. 하이메 2세는 후에 아라곤 왕가의 왕위계승자가 바닥나자 카스티야 왕가의 페르난도가 왕으로 즉위했을때 그를 국왕으로 인정하기 거부했고 결국 그의 백작령은 없어지게 됩니다.
이사벨이 어린시절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사촌이었던 포르투갈의 국왕 아폰수 5세의 섭정이 됩니다. 두아르트가 일찍 죽으면서 아들인 아폰수 5세가 미성년으로 즉위했는데 그의 어머니였던 아라곤의 레오노르는 포르투갈 내에서 매우 인기가 없었고 결국 섭정이 되지 못하고 대신에 이사벨의 아버지인 인판테 페드루가 섭정이 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섭정이 되면서 이사벨은 사촌이자 국왕이었던 아폰수 5세와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아마도 둘은 어린시절을 함께 지냈거나 자주 만나는 사이였을 것입니다.
아폰수 5세
아폰수 5세가 자라나면서, 아폰수 5세는 점차 섭정이자 숙부였던 인판테 페드루 보다는 또다른 숙부였던 브라간사 공작 아폰수와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브라간사 공작 아폰수는 주앙 1세와 그의 정부였던 이녜스 페레스의 아들로 인판테 페드루와는 정적관계였고 아폰수 5세의 어머니 레오노르와 정치적으로 같은 편이었습니다. 이런 그의 부상은 인판테 페드루에게 불안을 가져오게 했으며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딸인 이사벨과 조카인 아폰수 5세와의 결혼을 추진합니다. 브라간사 공작은 이에 반대했지만 1445년 둘은 약혼했으며 1447년 이사벨은 아폰수 5세와 결혼해서 포르투갈의 왕비가 됩니다.
하지만 1448년 아폰수 5세가 성년으로 친정을 시작하면서 인판테 페드루의 권력을 약해지고 대신 브라간사 공작의 권력은 점차 강해집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가족내 불화를 일으켰는데 결국 인판테 페드루와 아폰수 5세의 사이는 틀어질대로 틀어져서 결국 아폰수 5세는 숙부인 인판테 페드루를 반역자로 선포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1449년 인판테 페두르는 살해당했습니다.
브라간사 공작 아폰수
비록 아버지가 반역자로 죽음을 맞이했지만 아폰수 5세의 이사벨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었으며 부부는 서로를 절대적으로 신뢰했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이사벨은 오빠들이 없는 동안 아버지의 공작령을 관리했었으며 후에 오빠의 사생아 아들에게 공작령이 상속될수 있게 힘을 썼습니다. 이사벨은 남편의 사랑을 바탕으로 조금씩 자신의 가문을 일으키는데 집중하게 됩니다. 그녀는 조금씩 자신의 가문을 다시 일으키려는 노력을 했는데 이를테면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편집한다던가 아니면 살해당했던 아버지를 이장하는데 힘쓰는 등의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사벨은 23살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합니다. 이사벨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마도 사람들이 그녀가 독살당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여전히 궁정에서는 그녀의 아버지의 정적이었던 브라간사 공작이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이사벨의 아버지인 인판테 페드루의 섭정시절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브라간사 공작과 그 주변 인물들이 이사벨의 행동을 위험하게 여기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왕비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많은 이들이 인판테 페드루의 정적들을 의심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폰수 5세와 이사벨 사이에서는 세명의 아이들이 태어나는데 그중 막내아들인 주앙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포르투갈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이사벨로 추정했던 그림
이 그림은 세인트 빈센트 판넬에서 나온것인데 이 세인트 빈센트 판넬은 포르투갈의 왕가 사람들을 묘사한 판넬입니다. 그런데 원래는 이 여성의 맞은 편의 사람은 이사벨의 남편인 아폰수 5세로 여겼기에 이 여성을 이사벨로 추정했었는데 최근 연구 결과 그 맞은 편 사람이 이사벨의 남편이 아니라 이사벨의 시아버지인 두아르트라고 추정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초상화는 이사벨이 아니라 그녀의 시어머니인 아라곤의 레오노르가 아닐까합니다. -0-;;;
세인트 빈센트 판넬
....그런데 최근 연구결과는 그렇다고 한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올리긴 합니다만 뭐랄까 왠지 적어줘야할듯...ㅎㅎ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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