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잉글랜드의 왕비들 이야기 끝까지 다왔네요.
진짜 다 할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앨프레드 대왕부터 그 시기의 왕비들 이야기도 하긴해야할것같지만 일단 그거야 자료가 별로 없을테니...라고 우겨볼렵니다. 뭐 스코틀랜드 다 하고 나서 하던가하죠.
(이러다 칠왕국 다할지도...-0-;;;; 웨일즈도 봐야하는데..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124) 마무리하며
잉글랜드라는 나라가 성립된 것은 사실 앨프러드 대왕때 쯤이었다. 이들은 앵글로족의 나라라는 의미로 잉글랜드라는 이름을 썼지만, 현 영국 왕가의 직접적 조상이 되는 인물은 잉글랜드를 무력으로 점령했던 정복왕 윌리엄이었습니다.
정복왕 윌리엄이후 잉글랜드의 왕비들은 중요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윌리엄의 아내였던 플랑드르의 마틸다는 남편인 윌리엄에게 정치적인 뒷받침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편을 적극적으로 돕는 여성으로 알려져있었습니다. 이것은 중세 시대에 매우 드문 경우였죠. 하지만 잉글랜드 왕비들은 자주 이런 경향을 보였는데 이것은 복잡한 잉글랜드 왕위계승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스티븐 국왕의 아내였던 볼로뉴의 마틸다 역시 내전중의 남편을 적극적으로 돕는 여성이었습니다.
플랑드르의 마틸다
정복왕 윌리엄의 아내
19세기 상상화
잉글랜드 왕비들로 중세시대 여성중 가장 유명했던 인물은 아마 엘레오노르 다키텐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아키텐 공작령의 상속녀였을 뿐만 아니라 한때 프랑스의 왕비이기까지 했었습니다. 프랑스 국왕과 이혼하고 앙주 백작 앙리와 결혼했을때 모두들 그녀가 잉글랜드 왕비가 될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엘레오노르의 남편인 앙주 백작은 잉글랜드의 헨리 2세가 되었으며 엘레오노르는 잉글랜드의 왕비가 되죠. 그녀는 통치 여공작이자 왕비로써의 경험이 있었기에 헨리 2세와 나라를 함께 통치하길 원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런 그녀의 성향은 남편인 헨리 2세와 불화를 빚게 되었고 결국 남편과 사이가 최악의 상황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녀의 아들들 역시 영지를 얻기 위해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었는데 이런 상황은 부부 사이를 더 악화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남편이 죽은뒤 아들들의 섭정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일을 감독 중인 엘레오노르 다키텐
헨리 2세의 왕비
정복왕 윌리엄 이후 오래도록 잉글랜드 국왕은 프랑스 국왕의 봉신인 기묘한 관계가 이어졌습니다. 이때문에 프랑스와의 경쟁 관계 때문에 프랑스쪽 여성들이 잉글랜드의 왕비가 됩니다.이것은 프랑스 국왕을 견제하거나 또는 프랑스 국왕과 평화를 맺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프랑스 공주로 "프랑스의 암늑대"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프랑스의 이자벨은 가장 유명한 경우일 것입니다. 그녀는 에드워드 2세의 아내로 자신을 핍박하는 남편 에드워드 2세에 대항해서 친정으로 가서 군대를 일으켜서 남편에게서 왕위를 뺏아 아들에게 넘겨줬으며 오래도록 잉글랜드를 통치하기도 했었습니다. 또 이자벨의 아들인 에드워드 3세는 어머니를 통해서 프랑스 왕위 게승을 주장하면서 100년 전쟁을 시작하기도 했었습니다.
남편 에드워드 2세를 사로 잡은 이자벨 왕비
또 프랑스 출신이었던 카트린 드 발루아는 헨리 5세와 결혼하면서 프랑스 왕위를 그에게 가져다 주는 역할을 했었습니다만, 헨리 5세의 때이른 죽음과 카트린의 오빠인 샤를 7세가 왕위를 얻으면서 잉글랜드 국왕에게 프랑스 왕위를 주는 역할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카트린 드 발루아는 잉글랜드와 현 영국의 여왕의 직계 조상중 한명이 되죠. 물론 헨리 5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헨리 6세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또다른 아들인 에드먼드 튜더를 통해서 직계 조상이 됩니다.
헨리 5세와 카트린 드 발루아의 결혼
하지만 잉글랜드가 내전인 장미전쟁을 치루면서 잉글랜드의 왕비들 역시 복잡한 내전에 연결되어 여러가지 역할을 합니다. 군사적 능력이 없었던 남편 헨리 6세를 대신해서 군대를 이끌었던 마거릿 왕비가 대표적이었습니다. 또 브리튼섬 최고의 미녀로 온갖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에드워드 4세와 결혼한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경우 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헨리 튜더와의 결혼을 승인해주면서 결국 잉글랜드 왕위를 튜더 가문이 차지하는데 명분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
에드워드 4세의 왕비
아마 잉글랜드 왕비들중 가장 유명한 사람들은 바로 헨리 8세의 여섯 왕비들일 것입니다. 헨리 8세는 첫번째 아내인 캐서린 왕비는 이혼을 했는데 이혼하기 위해 수장령까지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두번째 왕비가 되는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서였지만 결국 앤 불린은 참수형에 처해지죠. 세번째 아내인 제인 시모어에게서 원하던 아들을 얻었지만, 제인 시모어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고 네번째 아내인 앤과는 외교적 문제때문에 결혼했지만 결혼 하자마자 이혼했으며, 다섯번째 아내이자 앤 불린의 사촌이었던 캐서린 하워드와는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결국 캐서린 하워드의 부정을 이유로 역시 참수형에 처하죠. 결국 마지막 아내인 캐서린 파와의 결혼으로 어느정도 안정된 가정을 누리긴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여섯 아내의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것으로 특히 앤 불린의 이야기는 정말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앤 불린
헨리 8세의 두번째 부인
물론 에드워드 1세의 왕비였던 카스티야의 레오노르나 에드워드 3세의 아내였던 에노의 필리파는 남편과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고 중세시대 순종적 아내의 모범적 모습을 보입니다.
잉글랜드의 왕비들은 많은 여성들의 삶처럼 그녀들의 남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습니다. 남편을 돕기도 하고 남편과 싸우기도 하고 남편에게 버림받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군주의 삶이 나라의 운명과 직결되던 때, 이런 그녀들의 삶 역시 잉글랜드 역사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녀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잉글랜드 더 나아가서 영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작은 부분일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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