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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인판타들...(32) 인판타 마리아 크리스티나 : 카를로스 4세의 손녀

엘아라 2016. 8. 2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이쪽도 족보가 너무 복잡해서 남편 가족관계 설명하니 글이 엄청 길어지네요..ㅠ.ㅠ


에스파냐의 인판타들...(32) 인판타 마리아 크리스티나 : 카를로스 4세의 손녀




인판타 마리아 크리스티나

Maria Cristina, Infanta of Portugal and Spain 

(5 June 1833 – 19 January 1902) 


인판타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1833년 카를로스 4세의 아들인 인판테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와 그의 부인인 양시칠리의 루이사 카를로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이름은 이모이자 섭정모후였던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이름을 딴 것일 것입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어린시절 정치적문제때문에 에스파냐를 떠나 프랑스로 가서 살았던 부모를 따라 프랑스에서 살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뒤 그녀의 부모는 에스파냐로 돌아왔으며 마리아 크리스티나 역시 에스파냐로 돌아오게 됩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오빠인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는 이사벨 2세의 남편이 되었으며 아마도 가족들은 모두 이사벨 2세와 다시 친하게 지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복잡한 에스파냐 왕가 출신에 언니들은 모두 귀천상혼하는등의 상황때문에 오래도록 결혼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녀의 여동생인 아말리아 필리피나가 먼저 시집갈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아말리아 필리피나와 결혼했던 바이에른의 아달베르트는 적당한 에스파냐 인판타를 신부감으로 찾고 있었으며, 여기에는 아말리아 필리피나는 물론 마리아 크리스티나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여동생인 아말리아 필리피나를 선택했습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동생

아말리아 필리피나


이후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결구 1860년 남편감을 찾게 됩니다. 그녀는 머나먼 친척이었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인판테 세바스티안 가브리엘과 결혼합니다. 그는 마리아 크리스티나보다 22살이나 나이가 많았으며, 게다가 그의 첫번째 아내는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이모였던 양시칠리의 마리아 아말리아였습니다. 


인판테 세바스티안 가브리엘은 카를로스 3세의 증손자로,그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모두 포르투갈의 공주였습니다. 어머니는 포르투갈의 주앙 6세의 딸이자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4세의 외손녀였던 마리아 테레사였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포르투갈의 마리아2세와 페드루 3세의 딸인 마리아나 빅토리아로 주앙 6세의 여동생이었습니다. 포르투갈쪽으로 보면 세바스티안 가브리엘의 부모는 사촌관계였습니다. 

또 에스파냐쪽으로 보면 어머니가 카를로스 4세의 외손녀였지만, 할아버지는 카를로스 4세의 동생이었습니다.래서 에스파냐쪽으로 보면 부모는 오촌관계였습니다.

이런 복잡한 관계 때문에 세바스티안 가브리엘은 에스파냐 왕위계승권은 물론 포르투갈 왕위계승권 역시 가지고 있었기에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인판테"라는 칭호를 썼었습니다.

하지만 에스파냐의 이사벨 2세가 즉위하고, 포르투갈에서는 미구엘 1세가 즉위하면서 세바스티안 가브리엘의 가문은 두 나라의 왕위계승문제와 연결됩니다. 그의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사는 주앙 6세의 큰딸로, 세바스티안 가브리엘의 아버지인 인판테 카를로스 페드로가 사망한뒤, 외삼촌중 한명이었던 카를로스 4세의 아들인 몰리나 백작 카를로스와 재혼했습니다. 이 상황은 이사벨 2세가 즉위했을때 세바스티안 가브리엘이 새아버지였던 몰리나 백작을 지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세바스티안 가브리엘은 섭정이었던 마리아 크리스티나에 의해서 왕위계승권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그의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사는 동생인 미구엘 1세가 즉위한것에 반발해서 포르투갈 내전에서 그의 반대측에 섰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포르투갈 측에서도 세바스티안 가브리엘의 왕위계승권을 박탈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인판테 세바스티안 가브리엘


인판테 세바스티안 가브리엘은 카를리스트 전쟁이후 처가였던 나폴리에 정착했었습니다. 하지만 1859년경 그의 지위가 변하면서 에스파냐로 돌아오게 되죠. 아마도 이때쯤 이사벨 2세와 측근들은 카를리스트들과의 평화를 고려했었던듯합니다. 그래서 1857년 아내를 잃었던 세바스티안 가브리엘을 이사벨 2세를 지지하는 가문 출신이었던 인판타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결혼시킬 계획을 세웠으며, 이에 따라 세바스티안 가브리엘은 1859년 에스파냐의 왕위계승권을 다시 인정받았고. 망명 생활을 청산한 뒤 스파냐로 돌아올수 있었습니다.


1860년 인판타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인판테 세바스티안 가브리엘과 결혼했습니다. 따지자면 이모부였던 남자와 결혼하게 된 것이었죠. 이것은 에스파냐 왕가의 내부 분열을 어느정도 해결하는 결혼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둘사이에서는 다섯명의 자녀가 태어났는데, 자녀들 모두는 자식 없이 사망하거나 아니면 "귀천상혼"으로 왕가의 여성이 아닌 귀족 출신의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왕가에서는 귀족출신의 여성과 결혼한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자녀들에게 모두 공작 지위를 부여했었습니다.


인판타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인판테 세바스티안 가브리엘은 조용히 살았으며, 이사벨 2세가 퇴위한뒤에는 인판타의 가족들 역시 에스파냐를 떠나 프랑스로 갔었습니다. 인판테는 세바스티안은 프랑스에서 사망했지만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다시 에스파냐로 돌아와서 사망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