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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인판타들...(33) 인판타 아말리아 필리피나 :카를로스 4세의 손녀

엘아라 2016. 8. 3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의 딸들중 드디어 막내딸입니다.

재미난것은 아말리아 필리피나는 바이에른 가문으로 시집가는데 그녀의 아들과 손자 모두 에스파냐의 인판타들과 결혼했다는 점입니다. 아들은 이사벨 2세의 딸과 결혼했고, 손자는 알폰소 12세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에스파냐의 인판타들...(33) 인판타 아말리아 필리피나 : 카를로스 4세의 손녀



인판타 아말리아 필리피나

바이에른의 왕자비

Infanta Amalia of Spain 

(Amalia Filipina del Pilar Blasa Bonisa Vita Rita Lutgarda Romana Judas Tadea Alberta Josefa Ana Joaquina Los Doce Apostólicos Bonifacia Domenica Bibiana Verónica de Borbón y Borbón-Dos Sicilias) 

(12 October 1834 – 27 August 1905)


인판타 아말리아 필리피나는 1834년 마드리드의 왕궁에서 인판테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과 그의 부인인 양시칠리의 루이사 카를로타의 막내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언니들과 달리 마드리드에서 태어난것은 아마도 이사벨 2세가 즉위한 직후였기에 부모는 정치적 문제로 마드리드에 와있었기 때문일듯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녀의 어머니인 루이사 카를로타와 이모이자 섭정이었던 마리아 크리스티나 사이에 불화가 생기면서 결국 가족들은 모두 프랑스로 가야만 했습니다. 이후 섭정이었던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실각한뒤 가족들은 다시 에스파냐로 돌아왔었습니다. 인판타 아말리아가 9살때 아말리아의 어머니인 루이사 카를로타가 사망했으며, 어린 아말리아는 한살 많은 바로위의 언니인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함께 에스파냐 궁정에서 교육을 받았었습니다.



인판타 아말리아의 언니 인판타 마리아 크리스티나


인판타 아말리아는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때,모두들 그녀가 대가문의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는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에스파냐 방계 왕가 사람으로 주요 왕위계승권을 가진 인물도 아니었으며 또 언니들 셋이 귀천상혼했으며 결혼하지 않은 바로 위의 언니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통치 왕가 출신의 남자와 결혼하게 됩니다.


바이에른의 국왕 루드비히 1세의 아홉자녀중 막내이자 넷째아들이었던 아달베르트 왕자가 신부감을 구하기 위해 에스파냐로 온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와 비슷한 나이대의 신부감으로 인판타 아말리아가 선택되었고 둘의 결혼이 결정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인판타 아말리아의 언니인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있었지만, 당시에 허약한 모습이었던 언니 마리아 크리스티나 보다는 인판타 아말리아가 신부감이 되었을 듯합니다. 결혼때 사촌이자 올케였던 이사벨 2세는 시누이를 위해서 많은 혼수를 해줬다고 합니다.



바이에른의 아달베르트



결혼후 아말리아는 남편과 함께 바이에른으로 갑니다. 아말리아의 시아버지인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1세는 "미인갤러리"를 만들정도로 미녀들에게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는데 아름다웠던 뚱뚱하고 평범한 외모의 막내며느리에 대해 실망감을 표했다고 합니다.게다가 아말리아는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것은 바이에른 궁정에서 매우 충격적인 습관이었다고 합니다. 당대 많은 여성왕족들이 담배를 피우는것을 허락받지 못했고 특히 대중앞에서는 여성들이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것을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었던듯합니다.


아달베르트는 술을 많이 마셨고, 여러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기도 했지만, 둘의 결혼생활은 그럭저럭 참을 만했었던듯합니다. 


아달베르트와 아말리아




아말리아는 아달베르트와의 사이에서 다섯아이를 낳았으며, 장남인 루드비히 페르디난트는 이사벨 2세의 딸인 마리아 데 라 파스와 결혼했었습니다.


자룣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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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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