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잉글랜드의 왕비들...(81) 엘리자베스 우드빌 : 에드워드 4세의 왕비(여덟번째)

엘아라 2016. 8. 2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결국 9월까지 넘어갈듯합니다.

자녀들이 많아서 자녀들 이야기는 따로 다뤄야하거든요.-0-;;;


잉글랜드의 왕비들...(81) 엘리자베스 우드빌 : 에드워드 4세의 왕비(여덟번째)




엘리자베스 우드빌

데임 엘리자베스 그레이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4세의 왕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왕비

Elizabeth Woodville 

(also spelled WydvilleWydeville, or Widvile; c. 1437 – 8 June 1492) 

©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NPG D23802



딸인 요크의 엘리자베스가 왕비가 되면서, 헨리 7세는 아내의 계승권에 대한 정당성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때문에 장모인 엘리자베스 우드빌에 대한 지위를 다시 복권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에드워드 4세의 결혼은 정당한 결혼으로 다시 인정받았으며,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전 국왕의 왕비 지위를 다시 인정받게 됩니다.


왕비 지위를 다시 인정받게 된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궁정에서 여러가지 의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그중 하나는 헨리 7세의 장남인 아서가 태어났을때 아서의 대부모중 한명이 된것이었습니다. 헨리 7세는 자신의 후계자가 될 장남의 대모로 어머니인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가 아닌 엘리자베스 우드빌을 선택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정치적 이유가 컸을듯한데, 아이의 대모로 "백작부인"이었던 친할머니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보다는 "Queen"의 지위를 가지고 있던 외할머니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었던듯합니다.

하지만 국왕의 어머니인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는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그녀의 친인척들이 어떻게 요크 가문의 몰락에 기여했는지 잘 알았기에 아마도 그녀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자신을 왕위에 올린 어머니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던 헨리 7세에게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헨리 7세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1487년 궁정에서 은퇴해서 수녀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재미난 것은 국왕의 어머니였던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가 기혼 여성이었지만 서원수녀와 같은 생활을 했으며 남편인 더비백작이 사망한 뒤에 수녀가 되었지만 아들의 궁정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것과 반대로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궁정에서 완전히 떠나서 수도원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궁정에서 떠나게 된것에 대해서 많은 역사학자들은 국왕의 어머니인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영향력때문이었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매우 종교적이었을뿐만아니라 정치적인 감각도 뛰어났던 레이디 마거릿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이전 행동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자신보다 높은 지위를 누리는것에 대해서 못마땅해했을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공식적으로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Queen"이었지만 레이디 마거릿은 공식적으로는 겨우 "countess"였을 뿐이었으니까요. 훗날 레이디 마거릿이 자신이 잉글랜드의 정당한 "여왕"이라고 주장한것은 아들의 계승권을 확고하게 하기 위한것이었을뿐만 아니라 어쩌면 궁정내에서 자신이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이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었을수도 있을 것입니다.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궁정을 떠나게 된 이유에 대해서 헨리 7세가 떠나게 했다는 이야기 외에도, 종교적 이유로 궁정을 떠나 은퇴하려 했다는 것과 또 반란에 연관되었다는 의혹을 받았기에 떠나야만 했다는 이야기등이 있는데 사실상 궁정을 떠난 정확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는듯합니다.


궁정을 떠났어도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왕비"였으며 이에 걸맞는 대우를 받게 됩니다. 그녀가 지냈던 수녀원에서도 늘 왕비의 지위에 걸맞는 대우를 받았으며, 딸인 엘리자베스 왕비나 아니면 요크의 시슬리가 어머니를 방문하기도 했었습니다. 또 손자손녀들이 태어날때 역시 궁정으로 돌아오기도 했었습니다. 

또 헨리 7세는 장모인 엘리자베스 우드빌을 스코틀랜드의 국왕 제임스 3세와 결혼시킬 계획을 세우기도 했었습니다. 제임스 3세의 왕비는 1486년 사망했었으며 이때문에 제임스 3세는 홀아비였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실행되지 않는데 1488년 제임스 3세가 사망하기 때문입니다.(제임스 3세의 뒤를 이은 제임스 4세는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외손녀인 마거릿 튜더와 결혼해서 제임스 5세를 낳았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3세


1492년 6월 8일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사망합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임종은 장녀인 엘리자베스 왕비를 제외한 다른 자녀들 모두가 지켰다고 합니다. 이때 엘리자베스 왕비는 넷째아이를 낳으려하고 있었기에 어머니의 임종을 볼수 없었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간소한 장례식을 유언으로 남겼지만 헨리 7세는 전왕비의 장례식을 간소하게 치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었으며, 왕비의 예에 걸맞게 장례를 치뤘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윈저성의 세인트 조지 채플에 있는 남편 에드워드 4세 곁에 묻혔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영국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http://www.npg.org.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