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글들을 미리 써놓고 예약하기로 올리거든요.
그러면 시간이 남을것같지만 사실 이렇게 한달 미리 써놔도 정신차리고 보면 다음달 글들이 밀려있다죠.
글을 하나 쓰려면 진짜 읽어야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한글 자료보다는 주로 영문자료를 참조하다보니 (....그게 한글자료 없는것이 더 많아서 그냥 영문자료 찾는것이 습관이 됐드랩니다.) 뭐랄까 읽는 속도가 참 더디다죠=-= 특히 요즘처럼 컨디션 나쁘면 진짜 영어가 안 읽혀요..ㅠ.ㅠ
ㅠ.ㅠ 이러니까 사실 따로 더쓸려고 계획한 글들을 하나도 못쓰고 있다죠.
프랑스 혁명전쟁이야기 1794년도로 넘어가고 싶은데 말입니다. 방데 내전만 보면 넘어갈수 있는데 참 그 방데 내전이 안 읽히네요 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80) 엘리자베스 우드빌 : 에드워드 4세의 왕비(일곱번째)
엘리자베스 우드빌
데임 엘리자베스 그레이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4세의 왕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왕비
Elizabeth Woodville
(also spelled Wydville, Wydeville, or Widvile; c. 1437 – 8 June 1492)
©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NPG D16278
곤궁한 처지로 성역권에 머물고 있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한 사람이 접근합니다. 바로 스탠리 경의 아내였던 레이디 마거릿 스탠리로, 일반적으로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라고 알려진 인물입니다. 랭카스터 가문의 방계 가문인 보퍼트 가문 출신으로 랭카스터와 보퍼트 가문 남성 직계가 모두 단절된 상황에서 레이디 마거릿의 아들인 헨리 튜더가 랭카스터 가문의 계승권을 주장할수 있는 인물이었죠. 레이디 마거릿은 아들을 브르타뉴로 망명시켰으며 자신은 요크 가문의 신하였던 스탠리경과 결혼해서 자신의 지위와 재산을 지켰던 여성이었죠. 레이디 마거릿은 에드워드 4세 시절에 궁정에 있었으며 왕비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을 잘 알고 있었는데 레이디 마거릿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딸들중 한명의 대모이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리치몬드 백작부인 후에 리치몬드와 더비의 백작부인
헨리 7세의 어머니
레이디 마거릿은 리처드 3세가 즉위한뒤 여러 신하들이 동요하는 것을 알아챘으며, 아들인 헨리 튜더를 왕위에 올리기 위한 여러가지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리처드 3세에게 원한이 있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접근한 것이었죠. 그리고 레이디 마거릿과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헨리 튜더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장녀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의 결혼을 약속합니다. 이것은 둘에게 모두 이익이었는데 레이디 마거릿에게는 아들이 동생들이 사라진뒤 다음 계승권을 가진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므로써 요크 가문의 지지도 얻을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 계승권에 대한 갈등요소를 사라지게 만드는 계기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쪽에서는 리처드 3세의 반대되는 세력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므로써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으며 아들들을 죽였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리처드에게 복수할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헨리 튜더
이 만남은 처음에는 실패로 보였습니다. 헨리 튜더는 잉글랜드에 상륙하지 못했고 반란을 일으켰던 버킹엄 공작은 체포되어서 처형당했기 때문입니다. 레이디 마거릿 역시 음모에 가담한것이 들통났기에 가택연금당했었죠. 이 사건은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도 타격을 주게 됩니다. 리처드 3세는 공식적으로 조카인 요크의 엘리자베스의 영지를 뺏았는데, 이것은 조카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였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조카보다는 그 어머니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에 대한 위협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남아있는 자녀들의 지위를 생각하라는 의미였었던 것이죠. 결국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리처드 3세의 압박에 굴복해서 아이들과 성역권을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위의 두 딸들인 엘리자베스와 시슬리를 궁정으로 보냈으며, 그녀는 가택연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때 리처드 3세는 엘리자베스와 시슬리가 런던탑에 감금되는 것이 아니라 궁정에 있을 것이며 좋은 혼처를 찾아주겠다고 약속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리처드 3세는 조카들을 자신의 동맹에 이용하려했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만 당시 궁정에는 다른 소문이 돌게 되죠.
"페어리 베스"라고 불렸던 요크의 엘리자베스는 어머니를 닮아서 매우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라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궁정에서 높은 대우를 받게 됩니다. 이때 리처드 3세의 아내였던 앤 네빌은 병이 깊었었는데 궁정에서는 리처드 3세가 아내가 죽은뒤에 조카와 재혼하려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게 됩니다. 그리고 앤 네빌이 죽게 되자, 소문은 더 커져서 리처드 3세가 아름다운 조카와 재혼하기 위해 아내를 죽였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죠. 이것은 사실상 헨리 튜더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상황으로, 리처드 3세가 조카와 결혼하려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소문은 헨리 튜더와 그 측근들을 자극했으며, 헨리 튜더가 서둘러 잉글랜드에 다시 돌아오려한 계기가 됩니다.
요크의 엘리자베스
헨리 7세의 왕비
1485년 헨리 튜더는 잉글랜드에 상륙에 성공했고, 보스워스 전투의 승리를 통해서 결국 잉글랜드 왕위를 얻게 됩니다. 잉글랜드의 정복자로 헨리 튜더는 왕위에 올랐으며, 요크 가문의 계승권을 가진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가 이전에 계획한대로 였었죠.
의붓아들인 헨리 튜더에게 리처드 3세의 왕관을 바치는 스탠리 경
(스탠리 경은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세번째 남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삶은 이전의 화려했던 삶과는 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영국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http://www.npg.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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