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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왕비들...(78) 엘리자베스 우드빌 : 에드워드 4세의 왕비(다섯번째)
엘리자베스 우드빌
데임 엘리자베스 그레이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4세의 왕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왕비
Elizabeth Woodville
(also spelled Wydville, Wydeville, or Widvile; c. 1437 – 8 June 1492)
에드워드 4세와 장남 에드워드와 함께 있는 엘리자베스 왕비
에드워드 4세는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후 후계자를 바라게 됩니다. 그리고 결혼 다음해인 1465년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임신을 합니다. 아마 에드워드 4세는 아들일것을 잔득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1466년 2월에 태어난 아이는 아들이 아니라 딸인 엘리자베스였습니다. 아마도 에드워드 4세는 아들이 아니라 실망했을것이지만, 첫 아이가 태어났으니 아이들은 더 많이 태어날 가능성이 있었기에 어느정도는 실망감을 극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이어서 두명의 딸이 더 태어나면서, 에드워드 4세는 후계자가 될 아들이 태어나지 않는 것에 실망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어쩌면 워릭 백작과의 관계가 더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들이 태어나지 않는 것에 조바심을 냈을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네번째 아이를 가졌을때 다시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잡해진 정치상황은 결국 워릭 백작이 반란을 일으켜 에드워드 4세를 몰아내고 랭카스터측 국왕이었던 헨리 6세를 복위시키게 됩니다. 에드워드 4세와 그의 측근들은 잉글랜드를 떠나 부르고뉴로 갔습니다. 또 워릭 백작의 반란 초기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인 리버스 백작과 아들인 존 우드빌이 워릭 백작에게 붙잡힌후 참수형을 당하게 됩니다. 아마 임신중이었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남편을 따라가지 못했던듯합니다.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웨스트민스터의 성역권으로 도망갔으며 그곳에서 후계자가 될 아들인 에드워드를 낳았습니다.
(성역권이란 죄인이 도망가더라도 강제로 그 죄인을 잡아올수 없던 일정한 공간을 의미합니다. 유럽 중세에서는 주로 성당등이 이런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음해 봄 에드워드 4세는 부르고뉴에서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로 왔으며 워릭백작을 물리치고 다시 왕위를 찾았고, 후에는 앙주의 마거릿과 그녀의 지지세력까지 물리치게 됩니다. 이때 헨리 6세를 비롯한 랭카스터 가문의 남성직계가 단절되었기에 에드워드 4세와 요크 가문 사람들이 확고한 왕위계승자로 남게 됩니다. 우드빌 가문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워릭 백작가문이 몰락했기에 아마도 엘리자베스의 남동생이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리버스 백작이 된 앤서니 우드빌이 권력자로 부상했을 것입니다. 또 엘리자베스는 후계자가 될 아들은 물론 그 뒤로도 아들을 낳았기에 역시 왕비로써 확고한 지위를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왕비, 둘의 장남인 에드워드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중 문장으로 표시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엘리자베스의 동생인 앤서니 우드빌입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성역권으로 도망가서 보호를 받았었기에, 그녀는 이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던듯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교회에 매우 충실하고 여러가지 사업을 했는데, 매일 삼종기도를 철저하게 지켰으며 성당을 짓는등의 일을 했습니다.
강력한 군주인 남편과 권신인 동생,그리고 후계자가 될 아들들이 있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왕비로써의 앞날이 탄탄해보였습니다.물론 그녀의 남편인 에드워드 4세는 바람둥이었으며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지만 다른 여성들에게 눈을 돌리기도 해습니다. 특히 제인 쇼어는 에드워드 4세가 마음에 둔 또 다른 여인이었습니다. 제인 쇼어과의 관계는 오래도록 지속되었는데 아마도 이런 상황은 왕비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신경쓰이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제인 쇼어는 엘리자베스의 아들인 토마스 그레이와 그의 의붓장인이었던 윌리엄 해스팅스와도 연애관계였고 이런 상황은 엘리자베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지위에는 전혀 손상이 안되는 사소한 문제였습니다.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속죄를 행하는 제인 쇼어
19세기 그림
제인 쇼어는 리처드 3세 시절에 이전의 행동에 대해서 비난받았으며 국왕의 명으로 저렇게 대중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속죄를 해야했다고 합니다.
왕비로써의 화려한 날들은 1483년 에드워드 4세가 갑작스럽게 병으로 사망하면서 끝나게 됩니다. 남편의 죽음으로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고난은 시작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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