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ㅎㅎㅎ 글이 막 필이 받아서 잘 써지는데 잠이 옵니다.-0-;;;
날이 새면 잠이 오는데 딱 날이 새네요-0-;;;
..밤낮이 뒤바뀌면 안 좋습니다.ㅠ.ㅠ
잉글랜드의 왕비들...(76) 엘리자베스 우드빌 : 에드워드 4세의 왕비(세번째)
엘리자베스 우드빌
데임 엘리자베스 그레이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4세의 왕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왕비
Elizabeth Woodville
(also spelled Wydville, Wydeville, or Widvile; c. 1437 – 8 June 1492)
장미전쟁이 시작되면서 우드빌 가문은 처음에는 랭카스터 가문측에 섰을 것입니다. 자퀘타는 마거릿 왕비의 인척이었으며 국왕의 숙모이기도 했엇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런 관계로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남편인 존 그레이 역시 랭카스터측에 섰을 것입니다.
장미전쟁이 격화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합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남편인 존 그레이도 포함되었습니다. 제 2차 세인트 알반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두 아들과 함께 아마 친정으로 돌아가서 살았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남편이 죽은 제 2차 세인트 알반 전투가 일어난 한달이 좀 지나서 타우튼 전투가 벌어집니다. 이 전투는 요크 가문의 대승으로 끝나는 전투로, 에드워드 4세가 헨리 6세를 물리치고 처음으로 왕위를 얻은 전투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귀족들이 이 전투 이후에 요크가문을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우드빌 가문 역시 이 전투 이후 요크 가문을 지지했으며,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아버지인 리처드 우드빌은 요크가문측에서 꽤 공을 많이 세웠습니다.
타운튼 전투
19세기 상상화
에드워드 4세는 이전에 랭카스터를 지지했던 귀족들 역시 궁정에 받아들였으며, 우드빌 가문 사람들 역시 이에 궁정출입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에드워드 4세는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국왕을 만나야할 필요성 때문에 처음 만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아들들이 물려받아야하는 남편의 재산에 대해서 국왕과 이야기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우드빌이 살고 있던 친정 근처로 에드워드 4세가 오자 그에게 직접적으로 청원을 하기로 결심했었습니다. 당대 "용과 같은 진한 눈거풀"을 가진 "브리튼섬 최고의 미녀"라는 평가를 듣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에드워드 4세의 마음을 사로잡게 됩니다. 에드워드 4세는 미혼이긴 했지만 이미 많은 정부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바람둥이 국왕에게 아름답기로 이름 높았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당연히 눈에 띄었을 것입니다. 아마 에드워드 4세는 아름답지만 과부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을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이런 그를 거절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녀는 국왕에게 "저는 왕비가 되기에는 모자라지만, 당신의 정부로 남기에는 너무 훌륭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에드워드 4세를 알현하는 엘리자베스 우드빌
아마도 이런 엘리자베스의 당당함에 에드워드 4세는 반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그리고 그는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사실상 정확한 결혼 날짜를 알수 있는 기록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둘은 1464년 5월 1일 비밀리에 결혼했다고 합니다. 둘의 결혼에 참석한 사람은 엘리자베스의 어머니인 자퀘타와 자퀘타의 시녀 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사실 에드워드 4세가 엘리자베스 우드빌과의 결혼을 이렇게 비밀리에 급하게 치뤄야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정치적 문제 때문이었죠. 당시 에드워드 4세의 사촌이자 그를 국왕으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던 워릭백작은 에드워드 4세가 프랑스 공주와 결혼해서 프랑스와 동맹을 맺길 바랬습니다. 그는 남아있는 랭카스터 가문의 지지세력들이 왕비인 앙주의 마거릿을 중심으로 뭉치는 것을 걱정했고, 이에 프랑스가 지원할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공주의와 혼담을 진행했고 꽤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정작 국왕은 외교적 관계나 랭카스터가문에 대한 경계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결혼해버린것이었죠. 이것은 국왕의 측근들이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에드워드 4세의 결혼을 반대할만한 가장 큰 요인이었습니다. 게다가 우드빌 가문이나 엘리자베스의 죽은 남편 모두 원래 랭카스터 가문을 지지했던 사람들이었다는것 역시 측근들의 결혼을 반대할만한 요인이었으며, 결정적으로 궁정의 수많은 귀족들이 어느정도 잉글랜드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던 반면,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진짜 잉글랜드 왕위계승권과 전혀 관계가 없는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는 것 역시 반대요인이었던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에드워드 4세의 결혼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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