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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101) 마리아 안나 디 리치 :나폴레옹 3세의 정부
마리아 안나 디 리치
마리-안 발레프스카
Maria Anna di Ricci
Marie-Anne Walewska
(1823 - 1912)
나폴레옹과 그의 정부였던 발레프스카야 백작부인의 아들이었던 콜로나-발레프스키 백작 알렉상드르는 두번 결혼했었습니다. 첫번째 부인은 영국 출신으로 샌드위치 백작의 딸이었던 레이디 캐서린 몬태규였습니다. 아내가 죽고 난뒤에 그는 재혼하는데 두번째 부인이 바로 마리아 안나 디 리치였습니다.
마리아 안나 디 리치는 1823년 자노비 디 리치 백작과 그의 부인인 이사벨라 포니아토프스키 공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출신이었지만, 어머니인 이사벨라는 폴란드의 유명한 가문인 포니아토프스키 가문출신이었습니다. 그리고 1846년 자신보다 13살 많았던 콜로나-발레프스키 백작인 알렉상드르와 결혼하게 됩니다.
콜로나-발레프스키 백작 알렉상드르
나폴레옹과 발레프스카야 백작부인의 아들
나폴레옹의 아들이었던 알렉상드르는 나폴레옹 3세의 궁정에서 일을 했으며 이때문에 마리아 안나 역시 프랑스로 가게 됩니다. 프랑스에서 마리-안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그녀는 지적이고 위트있는 여성이었으며, 금발머리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마리-안은 파리 사교계를 이끌어가는 여성중 한명이 됩니다.
1857년경 마리-안은 나폴레옹 3세의 정부가 됩니다. 그녀 자신은 황후쪽 사람이었기에 황제와 관계가 있는것을 인정하기를 꺼렸다고 합니다만, 나폴레옹 3세의 정부였던 카스틸리오네 백작부인과 황제가 관계를 끝내게된 원인중 하나가 바로 마리-안이었으며, 카스틸리오네 백작부인은 이탈리아쪽에서 보낸 사람이었기에 마리-안의 이야기는 외교문서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아마 황후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만, 남편의 연애질은 흔한 일이었기에 황후가 적당히 눈감아줬을 것입니다.
나폴레옹 3세는 마리-안과 관계를 맺고 있던 당시에도 다른 많은 여성들과도 연애질을 했었습니다만, 둘의 관계가 끝나는 1861년까지 가장 심각하게 만난 사람이 마리-안이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3세
마리-안은 이후 여전히 궁정에 있었으며 황후측근으로 남았습니다.마리-안은 1868년부터 1870년까지 외제니 황후의 시녀장으로 이랗기도 했었습니다. 또 마리-안의 두 딸들은 외제니 황후의 아들인 프린스 임페리얼의 놀이친구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1879년 프린스 임페리얼이 사망했을때, 마리-안은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었습니다.
마리-안은 남편인 알렉상드르와의 사이에서 네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이중 세명의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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