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누굴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이 사람하기로 했습니다.
자료가 많이 없어요..ㅠ.ㅠ
누가 정부였는지만 알면 열심히 자료 검색을 할텐데 정부였던 사람들을 잘 몰라서 말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ㅠ.ㅠ
(오랫만에 책 읽어서 영어실력이 더 줄었는지 아니면 책이 원래 그모양인지...어찌나 주절주절 말이 많은지..ㅠ.ㅠ 사람 이름을 원하는데 그게 안나오니 짜증이..-0-;;;)
정부들과 그 후손들...(100) 아르투르 위겐슈미트: 나폴레옹 3세의 아들(??)
아르투르 위겐슈미트
Arthur Hugenschmidt
1862-1929
후에 나폴레옹 3세와 카스틸리오네 백작부인의 아들이라고 소문이 퍼지게 되는 아르투르 위겐슈미트는 기록상 1862년 황실 고용인이었던 크리스토프 위겐슈미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출생연도가 1862년이었는데 사실상 이때는 카스틸리오네 백작부인과 나폴레옹 3세와의 관계가 끝난 뒤였고, 이때문에 그가 과연 나폴레옹 3세의 아들인지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부모가 황실 고용인이었기에,위겐슈미트 역시 어린나이에 황실 가족들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특히 그는 자신보다 여섯살 많은 나폴레옹 3세의 아들인 프린스 임페리얼의 놀이친구로 성장했고 이때문에 아마도 황실가족들과의 친분이 더 했을 것입니다.
아르투르 위겐슈미트의 장래는 나폴레옹 3세에 의해서 결정되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1870년 영국으로 망명한후, 나폴레옹 3세는 자신의 치과 의사였던 미국 출신의 토마스 에반스에게 아르투르 위겐슈미트의 장래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토마스 에반스는 위겐슈미트를 맡았으며, 이후 위겐슈미트는 치과의사로 교육받게 됩니다.
토마스 에반스
1879년 나폴레옹 3세와 외제니 황후의 아들이었던 프린스 임페리얼이 전사한 뒤, 외제니 황후는 아들의 놀이친구였던 아르투르 위겐슈미트를 불렀다고 합니다. 황후는 위겐슈미트를 보고 위안을 얻었으며, 이후 외제니 황후와 위겐슈미트의 친분은 황후가 죽을때까지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위겐슈미트는 파리대학과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치과의사로 교육받았으며, 1887년에는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지도한 토마스 에반스와 함께 여러 연구를 했으며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다고 합니다.
위겐슈미트는 나폴레옹 3세의 정부였던 카스틸리오네 백작부인과 평생 친분을 유지했습니다. 카스틸리오네 백작부인은 위겐슈미트를 아들이라고 인정한적은 없습니다만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많은 이들이 카스틸리오네 백작부인의 아들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했었던듯합니다. 또 재미난 것은 위겐슈미트가 외제니 황후와도 오래도록 친분이 있었기에 황후의 아들이라는 소문도 돌았다고 합니다.
비르지니아 올도이니, 카스틸리오네 백작부인
위겐슈미트는 작가나 정치가등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으며 이들에게 조언을 하는 등의 일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위겐슈미트는 1차대전이후 클레망소 대통령에게 외제니 황후가 가지고 있던 알사스-로렌 지방에 대한 문서를 전달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위겐슈미트는 1929년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프랑스어 위키(구글 영어번역 포함)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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