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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70) 마이 백작부인 루이즈 쥘리 드 마이 : 루이 15세의 정부(첫번째)

엘아라 2015. 10. 2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대충 루이 14세 정부들 끝내고 이제 루이 15세 정부들 합니다.

그런데 이거 다하고 프랑스 왕가 방계가문으로 가야하는건지 아니면 잉글랜드로 가야하는지 고민이군요.

개인적으로는 잉글랜드가 좋지만 쓸때 같이 써야 기억도 잘나고 그래서 고민입니다.-0-;;;


음냐 그나저나 이 경악스러운 자매들 이야기를 하는군요.

진자 처음에 자매들 다섯명중 넷이 차례로 정부가 되었다기에 "이건 뭔 집안이 이런가"라고 생각했드랬죠.


정부들과 그 후손들...(70) 마이 백작부인 루이즈 쥘리 드 마이 : 루이 15세의 정부(첫번째)




루이즈 쥘리 드 마이-닐

마이 백작부인

Louise Julie de Mailly-Nesle, 

comtesse de Mailly 

(1710–1751)


마이 가문에서 첫번째로 루이 15세가 되는 루이즈 쥘리 드 마이-닐은 1710년 마이의 닐 후작이었던 루이 드 마이와 그의 부인인 아르망드 펠리스 드 라 포르트 마자랭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이 가문의 가계는 매우 재미납니다.


마이 가문은 피카르디 지방의 오랜 귀족가문으로, 특히 루이즈의 아버지였던 닐 후작 루이 3세 드 마이-닐은 루이 14세로부터 "오라녜공"칭호를 수여받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오라녜공 칭호를 쓰던 가문은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으로 영국의 윌리엄 3세가 이 칭호를 쓰고 있었죠. 아마 윌리엄 3세가 프랑스와 마찰을 빚게 되자 이에 대해 루이 14세가 마이 가문에게 이 칭호를 부여했던듯합니다.



마이 가문의 문장


루이즈의 어머니였던 아르망드 펠리스 드 라 포르트 마자랭은 폴 쥘스 드 라 포르트의 딸이었는데 그는 마자랭의 조카들중 하나였던 오르탕스 만치니의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오르탕스는 부유했었던 아르망 샤를 드 라 포르트 드 라 메이예레와 결혼했었죠. 그리고 루이즈의 어머니는 이 둘의 손녀이기도 했습니다.



오르탕스 만치니, 마이 자매들의 어머니의 할머니



루이즈의 어린시절은 그다지 평안하지 않았는데 루이즈의 어머니는 할머니인 오르탕스 만치니처럼 다른 남자들과 자주 연애질을 했으며 아마도 이것은 부부간의 불화를 일으켰었던듯합니다. 특히 그녀의 어머니는 부르봉 공작이자 콩데 공이었던 루이 앙리와의 사이에서 딸인 앙리에트 드 부르봉을 낳았는데 루이 앙리는 그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인지했었다고 합니다.


루이즈는 열여섯살이었던 1726년 친척인 마이 백작 루이 알렉상드르 드 마이와 결혼합니다. 그는 루이즈보다 열여섯살이나 더 많았었죠. 둘의 결혼은 행복하지 않았는데 부부는 서로를 존경하지 않았으며 이런 상황은 결혼 생활을 무미건조하게 했다고 합니다.1729년 루이즈의 어머니가 죽은뒤 루이즈는 어머니의 지위를 이어받아 왕비인 마리 레슈친스카의 시녀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그녀가 루이 15세의 정부가 되게 만들었죠.


루이 15세


루이 15세의 왕비였던 마리 레슈친스카는 자신이 왕비가 될수 있었던 이유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보다 여섯살 많았는데 후계자가 될 아이를 낳을수 있는 나이였기 때문이죠. 그리고 결혼직후부터 아이를 낳기 시작해서 1729년 후계자가 될 아들인 루이를 낳았었죠. 루이 15세는 1730년대 초반까지는 아내에게 충실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732년경 그는 마이 백작부인인 루이즈에게 반해버리죠. 결국 마이 백작부인은 1733년경 국왕의 정부가 됩니다만 그녀와 국왕과의 관계는 1737년까지 비밀에 붙여지게 됩니다.

마리 레슈친스카는 이후 남편의 많은 애인들을 견뎌야했는데 그중 그녀가 제일 싫어했던 인물이 바로 마이 백작부인이었다고 합니다. 개인적 성격도 맞지 않았을뿐만아니라 남편이 처음으로 맞이한 정부였기 때문이었죠.


임신과 출산을 계속 반복하던 마리 레슈친스카는 1737년 막내 아이를 낳은뒤 더이상 아이를 낳지 말라는 충고를 받게 됩니다. 더이상 아이를 갖는것은 건강에 치명적이었기 때문이죠. 이것은 결국 국왕이 왕비와 더이상 잠자리를 함께 할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에 루이 15세는 비밀로 붙여져있던 애인이었던 마이 백작부인을 자신의 공식 정부로 만들었습니다.



마리 레슈친스카


1738년 마이 백작부인은 루이 15세의 공식 정부가 됩니다. 이때 루이즈는 동생인 폴린 펠리치테를 궁정으로 초대합니다. 폴린은 그동안 궁정에 오고 싶어했었는데 루이즈는 자신이 궁정에서 지위를 얻게 되자 여동생을 불러들인것이었죠. 하지만 이것은 실수로, 루이 15세는 곧 루이즈의 여동생과 연애질을 시작하게 되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