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어려서 죽은 두딸 제외하고 자료없는 여섯째딸과 여덟째딸은 건너뛰기로 했습니다.--;;
아마 여섯째딸인 가브리엘레 마리아 테레지아는 미혼으로 사망한것같고, 막내딸인 마리아 알리스는 어디 남작이랑 결혼했다고 나오는것이 귀천상혼 분위기라 자료가 없는듯합니다.
결국 공작 프리드리히의 딸들은 끝이고 이제 프리드리히 조카들만 하면 테센도 끝입니다.-0-;;;;;;
그러고 나면 헝가리 분가만 하면 이제 합스부르크 여대공들 끝이군요.
(올해내로 끝날듯..-0-;;;도대체 몇년을 한건지..ㅎㅎㅎㅎ)
그런데 참 스캔들 나는 사람이 자료는 많군요.-0-;;;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26)오스트리아-테센의 이자벨라 : 공작 프리드리히의 딸
오스트리아-테센의 이자벨라
Archduchess Isabella Maria Theresia Christine Eugenie of Austria-Teschen
(17 November 1887 – 6 December 1973)
오스트리아-테센의 이자벨라 마리아 테레지아 크리스티네 에우게니는 1887년 테센 공작의 손자였던 프리드리히와 그의 부인인 크루이의 이자벨의 일곱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테센 공작령을 이어받도록 내정되어있었으며 아마도 이때문에 후계자가 될 아들이 절실히 필요했을듯합니다.
후에 이자벨라의 여동생인 마리아 알리스가 태어난뒤 드디어 막내동생이자 후계자가 될 아들인 프란츠가 태어나게 됩니다.
테센 공작 프리드리히의 일곱 자녀들
이자벨라 여대공은 친척관계였던 바이에른의 게오르그 왕자와 혼담이 오가게 됩니다. 바이에른의 게오르그는 바이에른의 레오폴트 왕자와 그의 부인인 오스트리아의 기젤라 여대공의 아들로 그는 바이에른의 섭정이자 후에 국왕이 되는 루드비히 3세의 조카였을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외손자이기도 했었죠. 1911년 둘의 약혼이 발표되었으며 1912년 2월 10일 빈에서 둘의 결혼식이 열리게 됩니다. 여기에는 신랑의 외할아버지였던 황제 프란츠 요제프가 참석하기도 했었죠.
이자벨라의 남편
바이에른의 게오르그
그런데 결혼식 전에 약간의 사고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자벨라 여대공은 다른 많은 여대공들처럼 결혼전 자신의 상속권을 포기했는데 이런 절차가 그녀에게 결혼으로 무엇인가를 잃게 되는듯한 느낌을 줬었던듯합니다. 그리고 결혼 전 어느날 불이나서 그녀의 웨딩드레스등이 몽땅 타버리는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죠. 이 상황에서 이사벨라는 이것을 나쁜 징조로 받아들였으며 그녀는 결혼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었던듯합니다. 하지만 왕가의 결혼은 함부로 취소할수 없었죠.
이자벨라와 게오르그
하지만 이사벨라와 게오르그는 신혼여행내내 싸웠으며 바이에른으로 돌아와서 3일째 되던날 이사벨라는 짐을 꾸려서 친정으로 돌아가버렸다고 합니다. 가족들은 둘이 서로를 잘 알지 못해서 그랬다고 생각하고 다시 합치길 바랬지만 결국 상황은 가족들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게 됩니다. 게오르그의 아버지이자 황제의 사위였던 레오폴트 왕자가 며느리를 만나러 와서 설득했지만 결국 이자벨라는 돌아가지 않았죠. 이자벨라는 바이에른 왕가 사람들이 자신을 경멸했기에 살수 없었다고 주장했다고도 합니다.
결국 1913년 1월 바이에른 법정은 둘의 결혼을 무효화했으며 그해 5월에는 종교적으로도 둘의 결혼이 무효로 선포됩니다. (몇몇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에서는 게오르그가 원래 사랑하던 여성이 따로 있었는데 신분이 낮았던 그녀와 결혼할수 없었으며 이런 그가 이자벨라와 결혼하면서 서로 싸우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이자벨라의 남편이었던 게오르그는 1차대전에 참전했지만 후에 신학대학에서 교회법을 공부했으며 가톨릭 사제가 되었습니다.
부모의 금혼식이던가에서 함께 있는 게오르그
앞쪽에 있는 사제들중 가운데 사제가 게오르그입니다.
이자벨라는 결혼이 무효화된뒤 여대공으로써의 자신의 권리를 회복합니다. 모두들 이자벨라가 조용히 살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자벨라의 생각은 달랐다고 합니다. 1차대전이 일어나면서 많은 왕족들이 간호사로써 일을 했으며 이자벨라 역시 적십자사에서 운영하는 간호사 양성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간호사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자벨라는 야전병원으로 가서 "이름가르트(또는 힐데가르트) 수녀"라는 이름으로 간호사로써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병사들을 치료하고 돌보는데 힘을 썼으며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자벨라는 야전병원에서 만난 외과 의사인 파울 알브레히트와 1915년 약혼했다고 알려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는 이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죠.(신분이 낮은 남자와 결혼하는것을 용납할수 없었을것입니다.) 이후 이자벨라는 더이상 결혼이야기가 나오지않았으며 1973년 스위스에서 사망했었습니다.
이자벨라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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